하나로 뭉치기 어렵다
실리콘 원자들이 만드는 구조 가운데 가장 안정한 구조는 다이아몬드 구조이다. 그렇다면 실리콘 원자들을 잔뜩 뭉쳐놓으면 알아서 다이아몬드 구조의 실리콘이 될까? 정답은 “그렇지 않다”. 그 과정에서 넘어야 할 장벽이 많기 때문이다.
바둑판 안에 교차점들마다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 교차점에 있는 사람은 줏대가 없어서 청기 또는 백기를 들 수 있고 주변 네 사람 가운데 다수가 들고 있는 깃발을 든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모두가 청기를 들고 있다면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고 계속 청기만 들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무작위로 들고 있는데 청기가 더 많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청기가 더 많아져 결국 청기로 뒤덮일 것이다.
만약 서쪽에 있는 절반은 청기를 들고, 동쪽에 있는 절반은 백기를 든다면? 이 경우는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게 된다. 경계에서 먼 사람들은 깃발을 바꾸지 않을 것이고, 경계에 있는 사람들도 그 주변 사람들이 절반씩 청기와 백기를 들고 있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모두가 청기만 들게 하고 싶다면 청기를 조금 더 유리하게 바꿔줘야 한다.
다시 단결정 문제로 돌아오자. 단결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모래알같이 작은 단결정들을 한 데 모아두더라도 커다란 단결정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각 원자들은 이미 조그만 단결정에 맞게 원자들의 위치가 배열되어 있어서, 인접한 단결정에 맞게 위치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좀 더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원자의 위치가 바뀌려면 커다란 장벽(barrier)을 넘어야 히는 것이다. 커다란 단결정을 만들려면 온도를 올려서 불안정한 위치로 움직일 수 있게 해 주고, 천천히 온도를 내려야 한다.
이런 현상이 물리학에서도 꽤나 흔한데, 자석도 그중 하나이다. 깃발을 스핀으로 바꾸고, 사람을 스핀을 가진 원자로 바꾸면 동일한 상황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