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이 만든 세상, 물건이 만들어 갈 세상
타이틀이 매우 싸구려 같지만 원제인 “Crap: A history of cheap stuff in America”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 ‘싸구려’만큼이나 직설적으로 이 책을 대변하는 수식어는 없을 듯하다. 문제라면 독자들이 이 책을 한낱 싸구려 책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만, 그것은 매우 단단히 잘못된 오해이다. 싸구려 타이틀을 단 책을 단순히 저급하게 취급한다면 이는 곧, 지금 자신의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불필요한 물건들에 둘러싸인 스스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방증이 될 것이니까.
나는 ‘크랩’을 생각하며 어느 집에나 한 장 정도 있을법한 돌잔치나, 칠순잔치 수건을 떠올렸다. 동시에 어느 병원의 이름이 적힌 볼펜을, 매장이름이 궁서체로 새겨진 라이터를, 회사로고가 정중앙에 박힌 보조배터리를 나는 곰곰이 지켜보았다. 그들은 누군가의 넓은 아량으로 제공된 선물이었는데, 내 손에 쥐어져 개인 영역에 들어온 순간, 그들은 무차별적으로 사유공간을 차지하려는 과잉생산된 한낱 물건으로 변모하고는 그들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물건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그들의 회사로고에 있음을 여러 차례 과시하며 끊임없는 반복된 커뮤니케이션을 강요했다. 이러한 현상은 무료로 제공받는 재화에 한정된 것만도 아니었다. 분명 아름답게 필요한 물건이었을 매장 속의 상품들은 구매를 이유로 개인 공간에 발을 들인 순간 식상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목적으로 온갖 먼지를 뒤집어쓴 채 한자리를 차지하고 방치되기 마련이다. 반복된 학습과 오랜 경험이 무색하리라 만큼 새로운 물건에 대한 쓸데없는 인간의 욕심을 끝이 없다. 판매자도 이 알 수 없는 대중의 욕심에 대처하기 위해 온갖 크랩을 생산하고 반복해서 사람들이 소비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일상에서 흘려보내버린 작지만 불필요한 크랩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들의 존재가 염가이며, 무료로 제공되었다는 혹은 기호에 의해 수집되었다는 의도로 존재감의 시작이 미약하기에 사람들이 일상에서 지나쳐버린 물건의 가치에 대해 묵인하고 아무런 불평을 두지 않았던 현실에 대해 자각하기를 원하고, 현실에 스며들어간 크랩의 존재를 부각하려 한다. 작가가 속한 미국이라는 나라에 한정하여 크랩의 역사가 어떠한지 그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을 설득하고 부드럽게 괴롭히면서 크랩이 자리 잡게 된 이유부터 차근차근 살펴가지만 그것은 곧 어떤 한 지역의 한정된 범위가 아닌 우리 모두의 그러니까 전지구화된 세계가운데에서 결의 차이만 조금 있을 뿐 동등하다고 볼 수 있다. 생산한 재화를 홍보하기 위한 도구로 시작하던 홍보용 물건들이 역할을 뒤바꾸어 물건을 팔기 위한 미끼로 전락하거나 크랩화된 가치가 호평을 받으며 수집이 대상이 되거나 투자 혹은 또 다른 재판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기념을 위한 기념품은 그 가치로 크랩이 되었으며 누군가의 의도에 의한 가짜 상품은 새로운 가치를 얻으며 안 그래도 넘쳐나는 물건 속에 새로운 물건이 되었다.
사람이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정도에 이르면 물건이 사람의 사고를 좌지우지하게 된 것은 아닐까. 개개인이 미디어화된 시대에 서로를 간편하고 쉽게 버리고 사용해 버리는 기저에는 어쩌면 물건(인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화상이 담겨있지 않음에 마음이 껄끄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