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추천하는 책은 주의 깊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사내 공지에 올라온 추천 도서목록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과거의 나를 탓해보았자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가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유명 기업의 마케팅 직원이었는지는 책 말미에 본인 스스로가 언급한 문장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때문에 그가 이런 책을 출판할 자격이 있었고, 다른 저서들과 더불어 흔히 들어봄직한 유명세에 근래 신간이 나왔다는 이유로 주변에 추천도서로 조명을 받을 수 있었구나 하며, 그 알 수 없는 수익구조에 수긍이 갔다.
한 권의 책은 저자의 손을 떠난 순간 작품을 넘어 좋은 상품이며 거래의 대상이 되는 재화가 된다. 브랜딩을 했다는 저자의 특출 난 재능 때문인지 확실히 책은 멋들어진 타이틀과 함께 마치 대단한 영감으로 가득해 보이는 '인상'을 준다. 콘텐츠가 어찌 되었든 겉으로 드러난 표면은 사람들에게 흥미를 주며, 매력적인 관심의 소비대상으로 보였다.
반면 산문집이라 똑똑하게 적혀있는 분류에도, 자기 개발서를 엿보는 듯한 가르침의 뉘앙스에 나는 다소 의문이 들었다. 다시 한번 프롤로그로 돌아가 '기교로 장식한 어려운 문장을 지양하고 가벼운 술자리에서의 글을 추구한다'라고 언급한 작가의 기획을 곱씹지 않으면 오해할 뻔 한 진위를 나는 재확인했다. 하마터면 작가의 이야기를 깊게 받아들일 뻔한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의 의도는 어쩌면 정확했다. 챕터에 늘어놓은 글들은 유심하게 읽어 내려가며 사려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으며, 더 나아가서는 책장을 열어볼 조차 없는 잡다한 생각들이다. 이건 단지 생각이 잠시 지면에 앉았다가 강제로 인쇄되어 정지되어 있을 뿐인 상태이었다.
나는 사회적으로 특혜를 받아온 어떤 위치에서 한 사람의 입장이 도드라진 누군가의 얘기로 작가의 글을 마주했다. 저자는 책에서 자신의 특출 나고 독특한 일들을 열거했지만, 오히려 나는 그 모습에서 우리 사회가 지정한 혹은 그래야만 하는 스테레오타입을 오히려 구체화하는 듯한 거부감을 읽었다. (아마 크리에이티브한 영역에서는 이렇게 소비되는 것을 지향하겠거니 하고 남짓이 추측하는 것을 실현에 옮기는 듯한)
또한 작가는 '누군가에게 배달 앱이고 그저 엑싯한 스타트업'이라는 수식어로 자신이 속했던 커리어를 언급하며, 짧고 단초로운 문장 속에 대중의 평가절하하는 태도에 압축된 불만을 내비치고는 그 이유와 원인에 대해서 어떠한 사려 깊은 배려도 훑지 않았다.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래서 그가 추천한 도서들 가운데 인상 깊지 못한 인상을 받는 이유는 어쩌면 리스트들 사이에서 발현된 작가의 사고에 동의할 수 없는 어긋남 때문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시간을 할애해서 책을 읽었다. 때문에 시간이 있어서 가치 있는 일로서 책을 완성했다는 유머 아닌 진심인듯한 작가 스스로가 내뱉은 말이 시니컬한 이명처럼 내 귀에 거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