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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말로

by 존치즈버거


“믿을만한 남자를 만나야 될 때 아닌가?”


여자의 친구가 툭 내뱉은 말에 여자는 기분이 상했다. 믿을만한 남자는 무엇이고 그런 남자를 만나야 할 때라는 건 또 뭔가. 여자는 대꾸하려다 씁쓸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지가 뭘 알아?’


여자는 친구와 20년 지기였다. 그 자신만큼은 아니어도 나름 친구를 잘 알았다. 들뢰즈나 아감벤을 들어 영화를 설명하는 유명 평론가를 허세에 쩐 인간이라 불렀고 미감이나 식감보다 그때의 최신 유행에 편승하는 맛집들만 기웃거렸고 나잇값을 해야 한다면 명품을 소비하면서도 나잇값을 잊은 채 논란 많은 걸그룹을 호위하는 트위터리안이기도 했다. 미운 정 고운 정 볼 꼴 못 볼 꼴 서로 다 보여주며 이어 온 우정이라 해도 친구가 ‘믿을 만한’이라는 소리를 할 때에는 여자는 절로 친구를 경멸할 수밖에 없었다.


“얘, 그 사람은 고도를 안다니까.”


그렇다. 고도. 여자의 베스트 식당 중 하나. SNS의 마케팅이나 홍보도 없이 제대로 된 미식가가 아니고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식당. 주인은 무심했고 요리는 셰프의 마음대로 그날그날 메뉴가 달라졌다. 여자는 그런 고고한 오만함이 좋았다. 남자가 두 번째 데이트에서 자신이 잘 아는 식당이 있다며 여자를 고도로 데리고 갔고, 여자는 그가 자신을 위해 태어난 피조물이라 생각했다.


“그뿐이야? 드라이브를 할 땐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를 듣고 안드레아스 롬베르크가 청년 시절 베토벤을 만난 일화로 농담을 하면서도 레드 핫 칠리 페퍼스와 펄잼에 열광하던 젊은 날을 가진 사람이기도 해. 버드 리치와 찰스 밍기스의 음악에 춤을 추면서 클림트의 키스만큼이나 산드로 키아의 키스에도 흥분하는 사람이지. 그 사람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보면서 러시아어를 공부했다는 말을 했던가? 그이랑 있으면 우주를 유영하는 기분이야. 우주만큼 넓은 취향의 스펙트럼.”


여자가 만난 좋은 사람들은 다 자기의 취향 덕이었다. 취향이 모든 걸 설명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취향을 통해 상대의 지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각국의 식기류 매너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만큼 다양한 음식의 역사를 섭취한 사람이었다. 좋은 술을 아는 사람은 그만큼 자신의 몸을 아꼈다. 생소한 언어의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는 생경한 문화를 흡수할 열린 마음이 있었다. 맵시는 입어보는 것에서 출발하며 입어볼 수 있다는 것에는 생활의 여유도 포함되었다.


구구절절 읊어대는 한 개인의 역사를 가늠하는 일은 얼마나 고되던가. 여자는 빠르고 신속하게 인간을 파악하는 것에 취향만큼 적절한 기준은 없었다. 여자는 그것이 자신의 통찰이라 굳게 믿었다.


어차피 사람들은 자신의 주관대로 산다. 여자는 이것이 자기 주관의 중심이라 생각했다. 취향을 이야기할 때면 사람들은 넌 운명 같은 걸 기다리느냐 빈정댔다. 자신만의 미감을 가진 것이 미신적인 운명과 무슨 연관이라도 있던가? 여자는 그런 사람들에게 수긍하지도 않았지만 응대하지도 않았다. 그게 운명이라면 내가 만들어 가지 뭐, 자신이 자기 안의 취향을 발굴했듯이.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네 말대로 믿을 만한 남자라는 거지.”


“겨우 두 달 만났을 뿐이잖아.”


“취향은 거짓말 못 해.”


“아주 푹 빠졌구나? 조만간 살림 차리겠는데?”


“안 그래도 진지하게 생각 중이야. 이런 사람이라면 평생 미래를 함께해도 좋지 않을까…….”


“꿈같은 소리 한다. 네가 아무리 그렇게 취향이 맞는 인간을 만난들 살 비비고 애 낳고 살다 보면 반드시 궁디를 확 주차고 싶은 순간이 온다 이 말이야. 그래도 차마 찰 수 없는 어떤 연민, 정, 동지애. 그건 그냥 취향, 외모, 재력 다 무시하고 그냥 그 인간 본질을 봤을 때 호불호야.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이 환장할 것 같은 지리멸렬을 함께 견뎌보겠다고 꾸역꾸역 일터를 비비는 궁둥이. 그래서 차마 걷어 찰 수 없는 궁둥이. 결국 그 궁둥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까지 내 몫인듯 관장하는 삶. 사랑의 본질이지.”


그게 과연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친구는 이런저런 지리멸렬함 속에서도 ‘나름의 행복’을 길어 올리는 재주가 있었다. 여자의 생각은 달랐다.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이라면 ‘굳이’ 좋은 점을 관찰하고 살피며 살고 싶지 않다고. 친구가 말하는 행복에는 그 어떤 취향도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생활만이 있었다. 입으로는 이게 내 취향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그저 자기가 가진 분수 안에서, 남들에게 눈치 받지 않을 정도로만, 다분히 적당히 자기 삶을 운용한다는 일종의 자기 위안적 자부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인간적 호불호도 결국 네 기준의 무언가를 근거로 하는 거잖아. 나한테 그게 취향이야. 난 내 취향을 믿어.”


친구가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네가 이겼다고 말해줬다. 여자는 썩 개운치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자신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친구도 알 것이라 믿었다.


“그래. 하긴 사람들은 각자만의 생각이 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 마흔이 넘도록 왜 혼자야? 결혼한 적도 없다며.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니야? 집은 어딘데? 직업이 뭐랬지?”


친구의 물음이 선을 넘었다 생각했을 때 여자는 자기가 운영하는 샵을 핑계로 자리를 떴다. 친구는 언제 한 번 그이를 보고 싶다고 말했지만 여자는 친구에게만큼은 남자를 보여 줄 생각이 없었다. 그들의 오랜 우정에는 수많은 사연과 감정들이 자리했지만, 속사정을 알 수 없는 남자에게는 지금 친구의 모습이 친구의 결과물일 뿐이니까. 친구를 보며 남자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까 두렵기도 했지만, 속된 말들이 그의 예민한 기호에 누를 끼칠까 걱정이 되기도 했으니까.







남자와 연락이 되지 않은 것이 꼬박 한 달이 넘어갔다. 6개월의 동안의 만남. 내년이면 여자는 마흔이었다. 성급한 결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합의에 더불어 두 사람은 구체적인 결혼 계획에 막 돌입한 참이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5천만 원의 채무를 진 채 홀연히 사라진 남자의 행방에 호들갑을 떨었겠지만, 여자는 그런 사람이라면 5천을 빌려갔으니 반드시 연락이 올 거라 믿었다. 그 남자는 달랐으니까. 사물의 본질을 꿰뚫고 미학적 견해가 뚜렷했으며 그에 상응하는 브랜드를 걸치고 다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남자의 경제적 상황과 살아온 이력이 모든 걸 말해주었으니까. 여자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전화 한 통을 받았을 때, 남자는 이미 반 년이상 연락이 끊긴 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XX경찰서 지능범죄수사단의 김홍식 경사입니다.”








시공 중이던 아파트의 붕괴 소식이 연일 미디어를 달궜다. 사람들은 누가 누구를 등치고 누가 누구를 함부로 만진 사건들에 대해 관심을 덜 쏟았다. 여자는 스스로가 간악하게 생각이 되면서도 비극적 재난 앞에 자신의 치부가 덜 조명받아 다행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여자는 경찰에 둘러싸여 고개를 푹 숙인 남자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비극에도 아우라를 뿜는 건 대단한 재능아닌가? 여자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경찰은 피해 금액 구제를 위해서라도 피해자들이 조사에 응하는 편이 좋다고 했다. 구제, 구원. 그것은 퍼석하고 말라버린 그녀의 생을 위해 남자가 행해야 했던 기적이었다.


“꼴좋다, 꼴좋아. 어쩌자고 그랬어?”


친구의 말을 듣자 여자는 아뿔싸, 싶었다. 이제 통찰과 거시적 안목의 권한은 친구에게로 넘어갔다. 고백은 약점이 되고 약점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든다. 여자는 한 번 본 적 없는 남자를 욕하는 친구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길게 이어지는 친구의 잔소리를 흘려듣는데, 친구가 대뜸 자신이 소개팅을 주선하겠다고 나섰다.


“됐어.”


“됐긴 뭐가 돼. 언제까지 그런 돌아이들만 만날 거야?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야 할 거 아니야.”


친구는 자기 남편의 직장 사수였으며 이제는 농업용 운반차 사업을 하는 40대 중반의 남자 하나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싫어. 아직은 시간이 필요해.”


“젊어서야 시간이 약이지, 우리 나이 정도 되면 시간은 그냥 노화의 과정일 뿐이다. 튕기지 말고 한 번 만나봐. 트랙터 팔아서 그래? 야, 그래도 그분 SKY 나왔어.”


“대학이 뭐가 중요해.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지.”


“어떤 사람?”


친구가 그러면서 마시고 있던 주스를 내뿜었다. 새하얀 리넨 원피스의 가슴팍에 주스가 튀자 여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피해자는 나 거든? 너는 친구라면 억울하게 피해 본 나를 위로하고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니야? 지금 나 놀리니? 정말 불쾌하다.”


“야, 난 지금 너 걱정해서 하는 소리 아니야. 솔직히 너 누구한테 소개하려면 내가 도리어 읍소해야 하는 처지야. 사람들이 너 보고 뭐라 그러는 줄 알아?”


“됐어. 상스런 인간들이 지껄이는 말들. 앞으로 우리 보지 말자.”


“뭘 그렇게까지 말해?”


“우린 끝났어.”


“참나, 어이가 없어서. 그래, 그러자. 그전에 내가 얼마나 널 참아줬는지나 알고는 가라. 불쾌? 나한테 불쾌해? 나는 그동안 네 그 고상한 취미 때문에 얼마나 불쾌했는지 알아? 인식이니 반성이니 사색이니 알아먹지도 못할 소리로 남들 내리까기나 하고. 취향? 미감? 네가 정말 그런 걸 가지고 있기나 해? 남들한테 조금이라도 우월감 느끼려고 발악하는 도구가 무슨 우아함이야? 그거야 말로 상스러운 거야!”


친구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자리를 벗어났다. 사람들의 시선이 여자를 향하자 여자는 코발트블루의 실크 손수건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우고 한 마리 도저한 자태의 한 마리 학처럼 사뿐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도무지 자비라고는 없는 주말, 하나마나한 소리들이 이어지는 티브이 채널 사이를 유영하던 중 한 시사 예능프로에 로맨스 스캠 범죄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는 것에 눈길을 멈췄다. 어쩌면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대면도 아닌 비대면으로 큰 액수를 바칠 수 있을까 조소하던 중, 남자의 사건이 등장했다. 로맨스 스캠은 아니지만 연애 감정을 이용해 여자들의 자산을 야금야금 갉아먹은 남자. 모자이크 된 와중에도 흐릿한 화면을 뚫고 핏과 맵시를 뽐내는 남자.


여자는 남의 일처럼 무심히 화면을 보았다. 호남형 얼굴에 호리호리한 체격으로 50이 훌쩍 넘은 그 남자는 대학도 나오지 않았으며 일가친척들에게 사기를 친 전력이 있어 호적에서 파인 상태이기도 했다. 여자의 5천만 원도 큰돈이긴 했지만 그는 남편과 사별한 노교수의 전 재산을 갈취해 피해를 입혔다. 사정이 있겠지, 오해가 있겠지, 그렇게 고매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분명히 인간의 깊은 절망과 좌절 그리고 그것이 남긴 상처와 고독을 알 텐데. 그런 사람이 그럴 리가 없는데. 여자는 연극 무대의 여주인공처럼 끝없이 독백했다.


온몸에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끼는 와중에 여자를 고무시킨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남자에게 당한 여자들의 화려한 이력이었다. 피해자들은 교수, 디자이너, 연예계 종사자, 심지어 법조계 인물까지 있었으며 그들은 피해를 말하는 중에도 하나같이 쉽게 흥분하지 않고 단어를 골라 썼으며 자세히 곱씹어야 모멸감이 드는 언어들로 남자를 힐난하고 있었다. 그들은 변제만큼이나 처벌을 원했고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피해자들의 연대를 독려했다.


여자는 생각했다. 조사에 응한다면, 그렇다면 그들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어쩌면 피해자들의 모임이 있을지 몰랐고, 자신도 그곳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충분했다. 그리고 그들과 왠지 좋은 친구들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심장이 쿵쾅 거렸다. 여자는 핸드폰으로 일전에 연락받은 번호로 지능범죄수사팀 경사에게 전화했다. 신호음이 경쾌하게 귓가를 울렸다. 예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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