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에게 악수를 먼저 청한 것은 상대방이었다.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정중하게 왼손으로 오른쪽 팔꿈치를 받치고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양복과 갈색 가죽으로 덧댄 서류가방, 가지런하게 빛을 반사하는 구두의 코 끝. 남자는 흡사 이제 막 입사한 패기 가득한 영업 사원 혹은 변호사나 회계사 같은 전문직을 연상하게 했다. 조가 상상한 흥신소 직원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조는 작업실로 쓰는 거실의 큰 목재 테이블로 그를 안내했다. 마침 조가 작업하다만 원고가 모니터에 떠 있었다. 남자는 그것을 힐끔 쳐다본 뒤 자리에 앉았다. 조는 어색한 몸짓으로 아내가 담가 준 차가운 매실차를 유리컵에 담아 그에게 건넸다. 남자가 자신의 명함 한 장을 조에게 내밀었다. The humane all care service 김과장. 이름은 없었다. 그냥 김과장. 남자는 자신을 김과장이라 불러주길 원했다. 조는 낮은 신음을 내뱉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조는 김과장이 건네는 의례적인 인사말에 꽤나 진지하게 대답하며 자신이 금싸라기 땅에 위치한 임대아파트를 구매하기 위해 저지른 약간의 편법과 동원된 인맥에 대해 농담조로 말했다. “근사한 작업실 하나 얻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조는 평소보다 조금 더 의기양양했다. 긴장한 탓이다. 마음 같아선 당장 아내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조바심이 자신을 어리숙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까 걱정되었다.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상담 내용은 숙지하고 왔습니다.”
라고 말하며 김과장은 사내 특유의 동작으로 턱을 매만졌다. 조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렇군. 사실 아직 판단이 제대로 선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두시게. 아내는 좋은 사람이야.”
“아, 물론 그러시겠죠.”
“내 아내는 일개 동네 여편네가 아니라 정말이지 정숙하고 바르고 기품이 있는 여자라는 말이지.”
“네. 무슨 말씀인지 압니다. 아내 분은 그동안 선생님에게 좋은 아내 노릇을 해오셨을 겁니다. 그러니 선생님께서 고민 끝에 저희에게 연락을 주신 거겠죠.”
“노릇이라……. 그건 왠지 낮잡아 이르는 것 같군. 그러니까 나뿐만이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들이 아내를 치켜세운다네.”
“선생님. 아내 분의 좋은 품성을 저에게 증명받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선생님은 선생님 안의 어떤, 그러니까 그 어떤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저희에게 연락 주신 거니까요.”
“내면의 목소리? 글쎄. 나는 단지 내 아내가 만난 남자가 누구이며 왜 내게 거짓말을 한 건지만 알면 돼.”
“네. 아내 분의 거짓말의 근원을 알아내는 게 저희가 할 일이죠. 인간의 행동에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김과장은 이렇게 말하며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얼굴에 장착하고 있었던 것처럼 어디 하나 어색함이 없었지만 매우 인공적인 가면과도 같았다. 김과장은 지나치게 고개를 숙이지도 거들먹거리지 않았다. 남자라면 이래야지. 조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남자는 서류 가방을 뒤적이며 타블릿 PC 하나를 꺼냈다.
“불륜은 보통 이 금액이 기본입니다. 일단 사전조사에 필요한 비용을 먼저 받고요. 아내분의 행적과 상대방의 신상 정보 같은 것을 먼저 알아냅니다. 온라인으로 정보를 받는 것과 지금처럼 대면 보고를 받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실 수 있고 그 금액도 상이합니다. 본격적인 작업 착수는 그 이후에 이루어집니다. 진행비는 선불입니다.”
“나는 불륜이라고 한 적이 없는데…….”
“네. 압니다. 하지만 상담할 때 선생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죠. 아내, 젊은 남자 그리고 거짓말. 저희가 매일 듣는 단어입니다. 선생님이 언짢아하는 감정에 대해 이해합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감정적일 필요는 없으세요. 이렇게 범주를 정하는 것은 업무에 대한 유용함과 편리성을 위해서니까. 아내 분의 부정이 발각되어도 너무 염려치 마십시오. 그건 아내 분의 것이지 선생님의 것이 아닙니다. 그렇더라도 선생님의 인생이 부정당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죠. 믿음에 대한 배신이 인생 모든 것에 대한 오판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는 이 일에 전문가입니다. 사람 사이의 일에는 반드시 맥락이 있죠. 저희도 모든 가능성을 염두하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듣기에 다소 불편하시더라도 감안해주시길 바랍니다.”
조는 예의 그 깊은 한숨을 담배 연기처럼 내뿜으며 상체를 뒤로 젖혔다. 아내가 의심스러운 행동을 한 것은 맞다. 어쩌면 자신의 오해일 수도 있다. 아내 딴에는 그를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대수롭지 않은 일에 구구절절한 변명이 귀찮아 거짓으로 눙치고 넘어간 것일지도 모른다. 하필 자신이 그때 거기 있지 않았다면 평생 모를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는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모른다는 것. 흠결 없는 인생에 아주 더러운 구김이 생긴 것 같았다. 맞은편 김과장의 눈은 그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는 마냥 자신의 경솔함을 탓하기엔 이미 늦어버린 것이 아닌가 반문했다.
“선생님. 선택은 선생님의 몫입니다. 선생님이 원하지 않으시면 저희도 작업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런 일은 의뢰인의 동의가 무엇보다 중요하죠. 저희는 선생님과의 신뢰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선생님도 이런 일이 인생에 일어날 거라 예상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결국 저희에게 전화를 건 것도 사모님에 대한 신뢰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겠죠. 그러니 선생님이 지금 이 상황에 압박을 느끼실 필요는 없어요. 누구나 문득 든 의심에 충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시다면 드릴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다시 찾아올 수 있습니다. 물론 오늘 저와의 상담에 대한 비용은 청구됩니다. 일의 특성상 모든 금액은 현금으로만 현장에서 납부 가능하다는 점, 고지드립니다. 부득이한 경우 카드도 가능합니다. 연동 업체가 존재합니다만 그렇게 결제할 시에는 현금보다 10퍼센트 더 할증이 붙는 점 양해해 주십시오.”
조는 목까지 잠근 셔츠의 단추 하나를 풀었다. 업무에서 작동하던 그간의 판단력이 아무 쓸모없게 느껴졌다. 아내는 단순해서 좋았지만 조의 전문분야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아내는 그냥 아내였다. 자신의 부하직원이 아니었다.
“솔직하게 대답해줬으면 좋겠어요. 정말.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내가 뭔가를 오해하고 있거나 아무것도 아닌 일에 의미를 부여한 게 아닐까? 자네는 이쪽 바닥의 전문가를 자처했으니 나 같은 사람을 많이 봤을 것 아니오?”
김과장이 눈알을 굴렸다. 대답을 찾고 있는 것인지 조의 말을 지루해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선생님. 저희는 선생님이 주신 일말의 단서에서부터 조사를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품으신 의문을 저희도 같이 품는다는 공통점이 있죠. 그런 면에서 저희는 선생님 삶 속에 일어나 수수께끼를 푸는 조력자이죠. 하지만 선생님에게 이 문제는 가족의 안위와 자신의 행복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저희에게는 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고요. 지금 마음이 바뀌어서 계약을 하지 않아도 저희는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선생님의 마음이겠죠. 제가 선생님께 물어보겠습니다. 선생님은 지금 선생님 마음 안에 일어난 의심의 불을 혼자 끄실 수 있겠어요?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저는 미련 없이 돌아가겠습니다.”
김과장은 이렇게 말했지만 이미 가방에서 계약서로 보이는 종이를 꺼내 책상 위에 펼쳐놓고 있었다. 조는 신뢰에 대해 생각했고 사건의 발단이 된 그날을 떠올렸다. 아내는 그날 자신이 본 광경을 너무도 태연하게 묵과했다. 조는 침묵도 하나의 입장 표명이라 믿었다. 그러니 아내는 결국은 거짓말을 한 셈이다.
도청, 증거사진수집, 원격 미행. 김과장은 식당 메뉴를 자랑하듯 끊임없이 세부 항목들을 소개했다. 조는 만년필을 손에 쥔 채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고 있었다.
“아니, 아니. 그렇게까지 하는 건 너무 나가는 것 같아. 난 아내가 그 남자와 나누는 이야기 같은 건 듣고 싶지 않아. 물론 궁금증도 생기지만……아니야, 그건 사양하겠네.”
“정확한 관계에 대해 알고 싶으시다면 도청이나 사진은 필수일 텐데요.”
“아까부터 자꾸 단정 짓는 것 같아 불편한데 알아두시오. 나는 아내를 믿어. 다만 주의가 필요해서 그러는 거지. 아내는 아무래도 세상의 때를 덜 탄 사람이라 혹시 순진하게 사기꾼의 말을 들어주고 있는 걸지도 몰라.”
김과장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가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김과장은 주의사항에 대해 적힌 종이 같은 것을 조에게 내밀었다. 그는 빠른 시일 내로 연락을 주겠노라 말하고 90도로 인사했다.
김과장이 나가자 조는 창가로 가 바깥을 바라보았다. 김과장이 점처럼 멀리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는 어떻게 되돌릴 수가 없었다. 조는 우연찮게 범죄에 연루된 선량한 사람처럼 순진한 표정으로 김과장이 남기고 간 서류들을 읽었다. 자신의 의뢰는 명백한 불법 행위다. 하지만 조는 그런 행위에 돈을 지불한 것보다 직원이 가지고 올 소식에 더 불안감을 느꼈다. 새로운 경향이나 새로운 물결처럼, 자신이 모르는 사이 이뤄지는 일들은 언제나 조의 심기를 건드렸다.
조는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며칠 째 쌓아놓은 컵라면들이 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그 위에 조그마한 초파리들이 파티를 벌였다. 조는 손을 들었다 내려놓았다. 그 작은 생명체 때문에 자신의 팔을 휘휘 젓고 싶지 않았다. 예전 같았다면 가정부나 비서를 고용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정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하고 있는 비밀스러운 일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조는 이 작은 아파트가 자신이 늘 지내던 공간처럼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을 경계하듯 잘 다려진 슈트 차림으로 탁자 앞에 앉았다. 그리고 바짓단에 국물이 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사발면을 들이켰다. 아내는 한 번도 이곳에 온 적이 없다. 생각해보니 아내는 늘 그랬다. 아주 예전, 조가 자기만의 오피스텔을 가질 때도 별다른 궁금증을 갖지 않았다. 조는 그것이 아내의 깊은 이해심에서 비롯되었을 거라 믿었지만 어쩌면 그것이 무관심일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의견이 생기자 얼굴이 달아올랐다.
시험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수험생처럼 그는 나무 의자에 등을 바짝 대고 앉아 벽을 응시하며 김과장을 기다렸다. 김과장은 일의 특성상 시간 약속은 칼 같은 사람이었지만 조는 미리부터 그를 기다리는 쪽을 선택했다. 어차피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우선 사모님과 그 남자분은 불륜 관계가 아닙니다. 다만…….”
조는 한시름 놓는 와중에 다만이라는 말 뒤에 붙을 동사들을 애써 짐작해보았다.
“사모님이 만난 남자분은 변호사이시고 현재도 그 만남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변호사라고? 변호사를 왜 만나지?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그게 오늘의 핵심인데요. 말씀드렸다시피 그 남자분은 변호사이고 전문분야는 이혼입니다.”
“그런데?”
“사모님은 현재 이혼을 원하시고 계십니다.”
“이혼? 나와 이혼을 하고 싶어 한다는 말인가?”
“네. 그렇죠. 선생님과의 이혼이죠.”
“왜?”
“그건 아직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왜?”
“추가 조항에 싸인하시고 금액이 지불되어야 합니다. 도청 관련 항목이라서요.”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융통성이 없어서야.”
“선생님, 일단 진정하십시오. 아무래도 인간사 사적인 감정이 관여된 일이라 보니 계산은 깔끔하고 정확하게 하는 게 좋습니다. 잘못하면 엉켜버리거든요. 여러 면에서.”
조는 잠시 말이 없었다. 김과장은 오늘도 여전히 조의 사색을 인정하며 차분하게 기다림을 이어나갔다. 이윽고 조가 흰자를 번득이며 그에게 말했다.
“당신들 혹시 나한테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 아니겠지? 없는 일을 만들고 있다거나 의뢰를 빌미로 나를 협박한다거나.”
“선생님. 그건 제 직업에 대한 모욕이십니다. 신뢰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선생님과 저 사이에 대한 모욕이기도 합니다. 저희가 안내해드린 대로 저희는 법적 자문단이 사내에 조직되어 있습니다. 물론 저희가 하는 일이 다소 비밀스럽다는 점에서 완전한 합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대한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십시오. 저희가 그렇게 의심스럽다면 선생님이 직접 사모님께 물어보시면 되지 않습니까?”
“흠. 내가 경솔했군. 어쨌거나 나는 말이야. 이해가 안 돼. 내 아내가 이혼을 원할 리가 없잖아. 이건 내가 생각한 거랑 너무 다른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란 말이오. 나는 믿을 수가 없어.”
김과장의 입꼬리가 짐작할 수 없는 모양으로 변해갔다.
“또다시 선택의 기로군요. 선생님. 일을 더 진행하길 원하십니까?”
“더 진행한다고 함은?”
“더 깊숙이 들어가는 거죠.”
“깊숙이 들어간다라.”
“혹시 두려우신가요? 물론 사회적 기준으로 봤을 때 이것은 명백한 불법 행위가 맞죠.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저희는 최대한 문제가 생기지 않게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점은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그게 아니라 나는……. 그래. 좋아. 그렇다면 이건 분명히 알아두시오. 나는 아내와 이혼할 생각이 없소. 그저 아내가 너무나도 예측 불가능한 일을 벌이니 거기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거지.”
남자가 오른손을 들고 가볍게 웃으며 조의 말을 중단시켰다.
“선생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선생님이 원하시는 바에 따라 저희가 알맞게 구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일종의 세트 메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저희는 아주 디테일하게 정보를 수집할 거고 결과물은 선생님이 원하시는 정도로만 구성하여 보여 드릴 겁니다. 만약 저희의 결과물보다 심화된 자료를 원하신다면 그것은 그때 가서 협의가 또한 가능합니다.”
“뭐, 좋소. 아무튼 금액에 대한 건 이 자리에서 일시불로 지급하지.”
“감사드립니다. 그럼 우선.”
김과장은 타블릿 PC를 꺼내 세부항목을 골라 금액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일이 진행될지에 대해 간략한 브리핑을 했다. 조는 그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아내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 조는 이혼 같은 불명예스러운 낙인 따위에는 관심 없었다.
조는 사람들이 자신을 컨트롤러라 불러주길 바랐다. 그는 자신이 통제하고 조율하는 것에 능숙하다고 믿었지만 김과장을 만나고 나서부터 조의 시간은 너무도 빠르게 흘러갔다. 조는 쉬이 집중할 수 없었다. 집으로 가면 아내는 늘 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무언가 변한 것을 알아차리기엔 이전 아내의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조는 먼 곳의 풍경을 바라보듯 아내를 바라보았고 그러면 아내는 무표정하게 뭐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조는 그럴수록 집필에 전념하려고 했다. 첫 챕터의 주제는 ‘조직에서 주도권을 잡는 방법’이었다. 자신 있게 앞으로 활보하던 활자들은 겨우 원고지 58장에서 이미 답보상태였다. 조는 반짝이는 커서를 내내 바라보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빈손을 바라보기 일쑤였다.
“사모님의 마음은 아무래도 과반 이상 이혼 쪽에 기우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우선 이혼 상담을 하러 가는 일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은 상담에만 그치죠. 배우자가 뚜렷한 귀책사유가 없을 때는 소송으로 이어지며 지리멸렬한 싸움이 되거든요. 아이가 아직 어리고 단순한 삶의 권태에서 비롯되었다면 보통은 그저 마음을 털어놓는 정도에서 멈추죠. 하지만 사모님은 이미 재산에 대한 분배도 어느 정도 각오하신 것 같습니다. 집이 사모님 명의던데요?”
“그렇지.”
“물론 소송에 들어가게 되면 그간 재산 기여도 같은 것을 꼼꼼하게 판단해서 분배를 하니까 명의가 다는 아니지요.”
“그러니까 내 아내가 그런 이야기를 변호사와 하고 있다는 말이오?”
“네. 얼마 전에는 따님도 동석하셨습니다.”
“뭐? 내 딸? 미연이 말이오? 걘 지금 미국에 있는데? 석사 과정 중이야. 방학도 아닌데 걔가 한국에 있다고? 아무 말도 없었는데.”
“따님은 현재 한국에서 사모님 친구분 댁에 기거 중입니다. 근처 입시 미술학원에서 강사로 일도 하고 있어요. 미국에서 돌아온 지 꽤 되셨습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이건 용납할 수 없어.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선생님. 일단 차분하게 숨을 쉬어 보십시오. 당황하신 것은 알겠지만 이럴수록 더욱 냉정을 찾고 이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가 생각하셔야 합니다.”
“본질이라니. 무슨 본질이 있다는 거야. 다들 저 마음대로군. 내가 이날 이때까지 몸 바쳐 일해서 집사 줘 유학 보내줘 차도 사줘. 그런데 이제 와서 쌍으로 나한테 지랄이야.”
“선생님의 노고는 이해합니다만 인간사라는 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오죽하면 일이 힘드냐 사람이 힘들지라는 말을 하겠습니까. 분명 선생님이 놓친 무언가가 있을 겁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조사를 원하신다면……”
이번에도 일시불로 지급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군. 내가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린 건가? 내 뒤에서 이런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건 용납할 수 없어.”
“글쎄요. 일단은 저희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시며 사태를 차분히 바라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자칫 흥분해서 섣부르게 행동하면 악영향이 줄 겁니다. 게다가 의뢰하신 일이 밝혀지면 여러 모로 곤란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요. 이건 저의 짧은 소견입니다만, 무엇보다 사모님이 불륜을 하고 있지 않잖아요. 이것 또한 얼마나 다행입니까. 보통 이런 사건들은 다 빤하거든요. 사모님을 추적해보니 선생님의 말씀이 맞더라고요. 매너도 좋으시고 예의도 바르시고 단정한 분이더군요.”
“그래?”
“아, 물론 이건 사견입니다. 하지만 팩트를 토대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무렴. 그건 맞아. 우리 아내만 한 여자가 없지. 그래서 더 충격적이군. 아내가 얼마나 이해심이 많은지 몰라. 바가지 한 번 안 긁던 사람이야.”
“이해와 오해는 한 끗 차이죠. 아무튼 선생님은 감정적인 행동을 자제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좋아. 그렇다면 나는 뭘 하면 되지? 그래도 자네는 이 바닥에서 프로이니 적절한 행동 양식 같은 건 알고 있지 않을까?”
김과장은 단 1초의 고민하는 눈치도 없이 말했다.
“우선, 마음이 안정되면 집으로 가세요. 그리고 차분히 사모님이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조는 김과장이 떠난 후 오랜만에 반신욕으로 피로를 풀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는 음악소리가 시끄러웠다. 아내는 주방에 있었다. 커다란 다라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무언가 한창 열중이었다. 음악소리에 맞춰 몸을 까닥거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을 조는 처음 목격했다. 기척을 느낀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얇은 리넨 차림의 원피스 밑에 하얀 종아리가 유독 눈에 띄었다. 아내는 싱겁다는 듯 샐쭉 표정 짓더니 몸을 돌려 다시 주방으로 갔다. 조는 아내의 자세가 언제나 저렇게 꼿꼿했던가 생각했다. 마치 삶에서 그 어떤 부정도 저질러 본 적 없는 사람처럼 강직했다.
“오미자차라도 한 잔 할래요?”
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는 다홍빛의 백일홍이 그려진 찻잔에 차가운 오미자차를 담아 탁자에 내놓았다.
“흔들리는 건가?”
아내가 큰 소리로 주방에서 네? 하고 외쳤다.
“흔들리고 있는 건가? 이 탁자가 아무래도 아귀가 안 맞는 거 같은데 원래 이랬나?”
아내는 대답이 없었다. 이윽고 달력 하나를 뜯어내 구겨서는 탁자 다리 밑에 욱여넣었다.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아내는 그 후로도 몇 시간 말없이 제 할 일만 하기 바빴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조의 ‘미연이는?’이라는 짧은 물음에 아내가 밥숟갈을 놓더니 정확하게 조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조가 아내의 시선을 피했다. 아내는 조가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알 턱이 없을 테지만, 정확히 하나는 알았다. 그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모른 척할 때 뿜어내는 기운 같은 것. 아내가 유일하게 자기 밑바닥의 언어 같은 것을 뿜어내는 순간이 있었다. ‘당신 눈이 참 비열해 보여요.’ 그러면 조는 그저 허허 웃었다. 딱히 그가 사람이 좋아서는 아니고 그 정도의 짜증은 허용하겠다는 일종의 관용의 표시였다. 조가 고개를 처박고 밥을 두 숟갈 입에 넣었을 때쯤 아내는 잘 있어요, 걔는 자기가 알아서 잘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식사가 끝나자 티브이 앞에 앉았다. 시사프로에는 전문가라는 이름의 패널들이 난데없이 무너진 지하철역 붕괴사고를 두고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얼마 뒤 아내의 핸드폰이 울렸다. 아내는 자연스럽게 작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조는 이때다 싶어 조심스럽게 방 문에 귀를 대었다. 아내의 말을 듣기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조는 리모컨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티브이 볼륨에 가려 아내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의심받고 싶지 않아 볼륨을 조금만 낮추었다. 누군가 저 멀리서 외치는 외침처럼 조는 아내가 하는 말들을 문장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단어만 간신히 짐작할 수 있었다. 조는 가슴이 콱 막히는 듯 가슴에 손을 댔다. 파편처럼 쏟아지는 분절된 단어 속에 아내가 가진 비밀의 힌트가 과연 들어있을까 의심스러웠다.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는 깨금발로 소파에 돌아갔다. 리모컨을 쥔 손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조는 자신이 생각한 선을 넘었다. 계속 만남은 이어졌다. 김과장은 깔끔한 슈트를 유니폼처럼 걸치고 사람 좋은 얼굴로 잔인한 진실을 쏟아냈다. 도청과 미행, 해킹과 공모. 조는 이 업계의 표준 정가를 알 수 없었지만, 언제나 김과장이 가져오는 결과물이 줄어드는 통장 잔고보다 더 자신을 좀먹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조는 항상 먼저 김과장을 기다렸지만 막상 김과장을 마주하면 골치 아픈 막내 동생을 보듯 마음 한 구석이 음울하게 가라앉았다. 김과장은 태연하게 앉아 미연이가 조에 대해 품은 증오와 아내의 이혼 결심이 사실은 절박한 기도와도 같다는 사실을 조간신문의 헤드라인을 뽑아내듯 줄줄 읊어댔다. 물론 조가 김과장만을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조도 나름대로 노력했다. 아내의 말을 엿듣고 아내의 휴대폰을 염탐하고 아내의 소지품을 검사했다. 하지만 아내의 말은 언제나 낮게 부서지고 휴대폰은 잠금에 걸려있었다. 암호를 풀기 위해 무엇이라도 기억해내려 할 때 조는 알았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일이 너무 커졌어. 내가 바라던 건 이게 아닌데.”
“글쎄요, 선생님과 저 이외에는 아무도 이 사실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일이 커졌다기보다는 진실 앞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것이겠죠. 사건의 당사자이기에 그렇게 느껴지는 겁니다. 밖에서 보면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은 셈이죠.”
“남의 일이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거 아닌가?”
“물론 진실은 언제나 마주하기 어렵죠. 우리는 매일 진실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일상이 곧 진실은 아니죠. 선생님만 그렇게 고뇌하시는 건 아닙니다. 어쩌면……”
“어쩌면?”
“아니오. 아닙니다. 괜한 말인 것 같습니다.”
“말해봐. 어쩌면 뭐?”
“그저 제 생각인데. 어쩌면 쉬운 일인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뭐가 쉽다는 거지?”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다는 겁니다. 물론 당황스러운 건 똑같겠죠. 하지만 선생님의 경우 그 일이 일어나는 과정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지, 사실 이 사건은 단순하잖아요.”
“단순하다고?”
“그냥 마음이 더 이상 버티질 못하는 거죠. 조사를 하든 안 하든 그 마음이란 건 오랜 시간 서서히 균열이 일어난 것이고요.”
“그게 무슨 말이야.”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습니다. 다만 그 과정을 세세히 들여다봤으니 괴로우신 거고요. 어쩌면 선생님의 경우 그 과정을 보지 않는 편이 마음은 편했을지도 모르죠. 글쎄요. 애초에 선생님이 직접 사모님께 솔직히 물어보셨다면 지금 또 다른 모습일 수도 있겠죠. 뭐, 어쨌거나 지금이라도 아내와 딸의 솔직한 마음을 알게 되셨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겪는 것보다야 낫지요.”
“뭐?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니? 당신이 내 삶에 대해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나.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이런 일이 어차피 일어날 일이 되는 거야? 혹시 전부 알고 있었던 거 아냐?”
“무엇을 말입니까?”
“그러니까 처음부터. 내가 처음 의뢰했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거 아닌가? 그리고 내 목을 죄고 조금씩 숨통을 틔워주는 척하면서 내 돈을 야금야금 갉아먹은 거 아니냐고.”
“선생님. 선생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에서 생산직부터 시작해 전무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시더군요. 어린 동생들을 거둬 키우고 조실부모한 지금의 아내분을 만나 가정을 꾸리셨습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뉴스를 챙겨 보고 7시면 출근했습니다. 정치적 감각도 있으셔서 사람을 제 편으로 만드는데 노련하셨습니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제안도 있었지만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릴 것을 예감하고 발을 빼셨습니다. 눈치도 빠르시죠. 선생님은 은퇴 후 중견 기업들의 사장이나 고문 자리도 과감하게 거절하시고 심지어 주변 지인들을 추천해주시는 담대함도 보여주셨습니다. 책을 쓰기 위하여. 개인적으로 선생님의 생애를 조사하며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마저 생겼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업무 외 사심이 들어간 이야기인데 말입니다. 선생님이야말로 처음부터 다 알고 계셨던 거 아닙니까? 저는 선생님의 의뢰가 있기 전까지 선생님이나 선생님 주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선생님의 지시만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의 욕망이 저를 움직인 것이 맞지요. 저는 선생님이 원하는 대로 했습니다. 다만 그 깊숙한 결과물 속에 선생님이 원하던 정답이 들어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제겠지요. 선생님, 그러나 그것은 숙명입니다. 인간은 절대 인간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존재하는 것이고요.”
조는 김과장의 말이 끝나자 한동안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 귀찮다는 듯이 오른손으로 벌레를 쫓듯 후치질로 이별의 인사를 대신했다.
며칠 뒤 조는 우편으로 이혼 서류를 받았다. 아내는 손으로 쓴 편지를 동봉했다. 조는 변호사가 필요했다. 그 사이 조의 휴대폰으로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걸려왔다. 상대는 침묵했고 조는 그것이 미연이임을 알 수 있었다.
“저희 조사에 따르면 사모님의 통화에서 빈도수가 제일 많은 문장은 ‘아’라는 감탄사와 ‘이건 아니야’, ‘더 이상은 안 돼’와 같은 대부분이 정서적인 고통을 표현하는 문장이었습니다. 이런 식의 무분별한 호소는 중년을 넘어서며 충동적 행위로써 많이 표출이 되더라고요. 특히나 사모님은 주위에서도 이혼을 독려하는 편이라 아무래도 선생님과의 이혼은 과반의 확률로 이루어질 거라고 예측됩니다.”
“그 많은 돈을 썼는데 변한 건 없군.”
“언젠가는 마주할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덕분에 사건의 실체를 알고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제기랄. 지금 말장난 하나? 아, 그나저나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더 뭘 알아야 하지?”
“지금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받아들이는 편이 제일 좋습니다. 물론 판도를 뒤집을 수 있게 일을 짤 수도 있지만 그건 아무래도 위험 부담이 큽니다. 선생님이 원하시면 가능한데 금액이 상당하다는 점 미리 고지드립니다.”
“그 방법 말고는 없는 건가?”
김과장이 음흉하게 한쪽 눈썹을 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이윽고 그가 신중한 동작으로 가방 안에서 타블릿 PC를 꺼냈다. 화면을 터치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명확한 손동작. 김과장이 화면을 돌려 조의 눈앞에 들이댔다.
“자매 회사에서 진행하고 VIP 매칭 서비스입니다. 사회적으로 검증된 분들만 회원으로 모집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라면 두말할 것 없이 가입 가능하십니다. 게다가 자매회사이기에 할인도 30프로나 받으실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고객의 삶의 궤적과 성향을 분석해 최적의 상대를 찾아드립니다. 옵션 선택을 하시면 선생님은 30대 초반의 초혼까지도 무리가 없으십니다. 이전의 생활 패턴을 유지하고 싶다 생각하시면 선생님과 같은 기업 임원들을 남편으로 두었던 사모님 출신 분들 중에서 사별하신 분 이혼하신 분 다 적절히 매칭 해드리고 있습니다. 주변 검증 거쳐 사적 인맥이 절대 닿지 않는 분들로 선별해 드리니 걱정은 전혀 없습니다.”
비가 내렸다. 조는 말없이 창가에 섰다. 왼손으로 심장 근처를 찾아 더듬거렸다. 조는 이제 책을 쓰는 일도 시들해졌다. 마치 아무것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처럼 머릿속이 텅 빈 기분이었다. 사장 자리를 제안했던 회사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조가 추천했던 지인이 얼마 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즉사했다. 그 자리에 다시 가도 문제없을 것이다. 진실을 위해 지불한 대가는 컸지만 조의 통장은 여전히 튼실했다. 아내가 정말로 소송을 건다고 해고 크게 휘청거릴 일은 없다. 식당을 차려도 좋을지 모른다. 탁월한 요리사 하나를 알고 있다. 조는 아내가 떠나고 딸이 자신을 죽도록 미워해도 남들이 보기에 자기 삶이 초라하게 전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새 삶은 이 집에서 시작해도 된다. 조가 생각 속에 머무르는 동안 빗줄기가 거세졌다. 그리고 비는 조가 철썩 같이 믿고 있던 인생 답지에 잔인하게 빗금을 그어대듯 거세게 낙하했다. 비가 힘을 더 세게 낼수록 조의 표정은 시무룩해졌다. 조는 죽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말을 마음속에서 우물거렸다. 내가 틀렸어, 내가 틀렸어. 영근 초록들만이 세찬 비에 몸을 맞댔다. 우거진 나무숲이 조의 얼굴 위에 그림자로 일렁였다. 나의 패배다. 조는 역사적 전투를 마친 전사처럼 툭 말을 내뱉었지만 결국 그 자신만이 들을 수밖에 없었다. 거침없던 그의 삶에 그렇게 첫 위기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