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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치즈버거 Aug 29. 2019

아침 드라마보다 재미있는 소설들

사랑과 유혹, 음모와 배신 그리고 복수!


  나는 설거지, 빨래 널기, 아이와 몸으로는 놀아주지만 정신까지 집중할 수 없을 때, e-book의 읽어주기 기능을 사용한다. 여러 e-book 브랜드 중 R브랜드를 이용하는데 거기에는 '수진'이와 '민준'이가 있다. 수진이는 여자 목소리고 민준이는 남자 목소리다. 성우들이 녹음한 목소리를 AI가 요렇게 저렇게 어떻게(전자책 음성변환 시스템) 추출해서 문장들을 읽게 만드는 시스템인 듯하다. 그러니까 수진이도 민준이도 친숙한 목소리지만 말투는 로봇의 그것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다 해도 아직은 AI가 문장에 깃든 감정 상태까지 모조리 파악해 그에 맞는 어조로 글을 읽어줄 수는 없는 법. 이제 나는 수진이의 말투에 100퍼센트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이걸 통해 시나 희곡 혹은 굉장히 진지한 소설을 듣게 되면 코미디가 따로 없다. 그럼에도 두 가지 이상의 단순 노동을 실현하며 손이 모자란 지경에 이를 땐 꼭 수진이를 찾게 되는데 단조로운 어조에도 흥미진진을 유발하는 소설들 몇 가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좋은 사람인 줄 알고 결혼한 남편이 알고 보니 미치광이였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그 부분을 시원하게 보여주며 시작한다. 


상류층 사모님이 되어 팔자 한 번 확실하게 고치고픈 욕망의 여인 앰버 패터슨이 데프니 패리시의 남편 잭슨 패리시를 목표물로 잡으며 벌어지는 이야기.


심리 치료사인 중년의 여주인공이 남편의 비밀을 알게 되며 벌어지는 심리 스릴러다.


신혼생활을 즐기는 부부에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 회원제 모임 ‘협정’의 가입 신청서가 도착하며 벌어지는 스릴러.

  

자신의 딸 그레이스를 입양 보낸 가정을 매일 훔쳐보며 급기야 그 집의 새 안주인이 되고자 계략을 꾸미는 오텀이라는 여자가 등장한다.


  이 소설들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모두 결혼 생활에 대해 다루었다는 점, 주인공들이 중산층이거나 그 이상이라는 점, 등장하는 부부들이 남들 보기에 잉꼬부부이며 외적으로 상당히 매력이 있다는 점, 중심인물의 배우자들에게 남들이 모르는 심각한 비밀 혹은 단점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더 있지만 그걸 적으면 스포가 되어버린다.)

  일단 이야기에 등장하는 부부들은 뉴욕의 맨해튼 같은 도시나 잘 정돈된 교외에 살고 있다. 그들은 근사한 저녁을 먹기도 하고 명품 옷을 걸친다. 아이들은 사립학교에 다니거나 그에 상응하는 좋은 교육을 받는다. 가끔 주변 사람들을 초대해 파티를 벌이고 파티에서 보이는 부부의 모습은 부러움 그 자체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행복이라는 단어를 절대 붙일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연기한다. 그것은 자신의 체면 때문일 수도 있고 남편의 협박 때문일 수도 있다. 소설은 초반에 이들의 윤택한 삶을 보여준다. 마치 전시하듯이. 그들의 전리품들은 읽는 사람들에게도 묘한 쾌감을 주는데 흡사 인플루언서의 SNS를 들여다보는 쾌감과 동일할 것이다. 부유한 삶에 대한 대리만족이나 호기심 같은 것들이 작용하며 점점 책에 빨려 드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며 그들 각자의 불행과 그 불행들이 만드는 삶의 파국들이 등장한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이야기들답게 서사의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고 일명 '고(구마) 답(답)'스러운 구석이 없다. 가령 책을 보다 다른 곳에 신경이 팔려 몇 페이지를 놓쳐도 이야기를 방해하지 않는다. 물론 복선이나 결정적 힌트가 등장하는 부분을 놓치면 안타깝겠지만 다행히 그런 부분에서 작가들이 요란법석을 피우므로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보통 처음에, 정말로 사랑에 빠져서 결혼한 경우다. 그리고 결혼을 통해 사회적 지위가 상승한 면도 있다. 이것은 그들이 불행한 결혼 생활을 지속하면서도 거기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이유로 작용하기도 한다.  ('비하인드 도어'와 '거의 완벽에 가까운 결혼' 같은 경우는 좀 다르다. '비하인드 도어' 같은 경우는 감금되었기 때문이고 '거의 완벽에 가까운 결혼' 같은 경우, 달콤한 신혼을 즐기던 부부가 그들의 사이를 더욱 결속시키기 위해 음모에 휘말리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흔들리는 이유는 타인에 의한 끝없는 시험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이 육아나 권태 혹은 경제 상황 등에 의한 시험의 연속이라는 점을 생각하는 이 소설도 결국 맥은 같이 하고 있다.)

  이 소설들은 대부분 만족스러운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것은 웅크려있던 인물들이 어떤 사람 혹은 사건을 통해 각성하고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 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발버둥이 정말이지 자극적이고 재미있다. 그래서 이 소설들에는 다 반전이 존재한다. 그 반전을 말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과 같다. 물론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다가 발버둥이 시작되며 위기나 갈등이 너무 손쉽게 풀린다거나 단조롭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일단 읽다 보면 그런 생각은 잊게 된다.(그렇게 중요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나쁜 사람을 어떻게 '조지느냐'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들은 이야기에 몰입된다기보다 사람을 이야기에 매립시킨다고 할까. 말초신경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요소들을 배치하고 떡밥을 던지며 안 읽으면 안 읽었지 한 번 읽게 되면 멈출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들을 읽게 되면 "결말이 뭔데? 얘네들 어떻게 되는데? 아, 쫌!" 하면서 중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들은 명작이라거나 지식을 고양할 수 있는 책들은 아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날리기에 더없이 좋은 작품이 된다. 왜냐면 재미있으니까. 일단 읽어보시라, 정말 재미있다. 읽고 나서 생각이 안 나도 괜찮다. 읽는 그 순간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사랑과 유혹, 음모와 배신 그리고 복수만큼 우리의 가슴을 두방망이질 치는 것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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