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존치즈버거 Jun 03. 2021

아무 옷이나 걸칠 수는 없지!

잘 입지도 못 하면서...ㅜㅜ


 “티셔츠를 한 장 만드는데 2000리터가 넘는 물이 들어간다고?” 


 우연히 인터넷에서 보게 된 환경에 관한 영상, 유달리 티셔츠를 좋아해 자주 구매하는 나에게는 당혹스러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살면서 한 번도, 티셔츠를 만드는데 물이 들어간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으니 말이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그와 관련된 서적을 찾아보던 중, 미국의 유명한 환경운동가 애니 래너드의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물건이야기>라는 책을 접하게 됐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티셔츠는 거대하게 산재한 환경 문제에서 빙산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옷을 끊기로 다짐했다. 그러니까 한순간에 자연주의자가 되어 과거로 돌아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옷들, 특히 싼값에 소비자를 현혹하지만 그 뒤안길에는 무수한 환경파괴와 착취가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옷들 말이다. 이를테면, 매우 저렴한 가격에 3장의 각기 다른 색상의 티셔츠가 포함되었거나 유명 명품 브랜드의 카피 제품 같은 것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오랜 속담처럼, 시쳇말로 ‘싼 맛’에 얻은 행복은 얼마 가지 않는다. 세탁 후 변색된 티셔츠는 여분의 홈웨어가 되어 옷장 안을 나뒹군다. 그뿐인가? 그 티셔츠를 만들기 위해 들어간 먼나라 아동들의 노동 착취와 우리 삶의 필수요소인 물도 포함된다. 소확행을 위해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멈추기로 했다. 조금 더 값을 주더라도 내가 고민한 만큼 오래 갈 수 있으며 좋은 소재를 쓰고 정당한 노동이 제 값을 하는 제품말이다. 시간을 주고 천천히 오래 갈 좋은 친구를 만나 듯. 가끔은 이런 작은 실천의 시작이,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만든다. 예약제 명품의 한정판을 가진 기분만큼이나. (문제는 다짐이 아니라 유지에 있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우리는 웬만한 정보를 집안에서 편안히 취할 수 있다. 동물 소재의 코트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해봐도 알 수 있다. 특히 영상을 통해 그 과정을 보게 된다면 충격은 어마어마하다. ‘이성을 가진 인간이 살아있는 생명에게 저런 짓을 해도 될까?’ 탄식이 절로 나온다. 구매하는 제품의 종류는 달라도, 사람들은 이제 자신이 소비하는 제품의 공정과정까지 꼼꼼하게 살핀다. ‘윤리적 소비’는 소수의 호들갑이 아닌 다수의 체크 리스트가 되었다. 


 기업들도 이런 소비자들의 바람을 반영하여 현재는 많은 친환경 소재의 패션브랜드들이 생겨나고 있다. 방법들도 기발하여 눈길을 끄는데, 에어백 원단으로 스키복을 만들고 소재 뿐 아니라 공정에서 소비자의 확인을 받는 인증 기준인 ‘블루사인’을 획득한 제품에 환경에 부담을 덜 주는 발수코팅을 하는 등이다.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보내면 그 디자인 그대로 리사이클 제품으로 새 옷을 만들어 주는 곳도 있다. 재미와 실천을 동시에 잡는 획기적인 상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환경에 대한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노력만으로 바뀔 수 없다. 소비자들의 바람을 반영한 기업과 자신의 올바른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 사이의 상생. 이것이야말로 힙하며 세련된 21세기 기업과 소비자의 연대가 아닐까.


 이제 단순한 기능만을 따지기에 패션은 너무나도 다채롭다. 정치인들 또한 패션에 메시지를 담는 것은 필수 공식이다. 일반적인 소비자라고 해서 다를까? 패션은 일상적 공간에서 펼칠 수 있는 가장 쉬운 행위 예술이다. SNS로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익숙한 현대 사람들에게 물건은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내보이는 상징이 되었다.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는 만큼 그 이유 또한 하나의 셀링 포인트가 된다. 사람들은 남들과 차별화된 무언가를 얻고 싶어 한다. 과거보다 더 직관적으로 변한 것 같다. "날 봐, 네가 보는 게 바로 나야!"


 패션은 한 사람의 자아와 개성을 드러낸다. 우리가 선택한 패션은 우리의 스타일을 만든다. 스타일이라는 단어는 우리 입은 옷이나 헤어스타일에 따르는 모양 그 자체를 일컫기도 하지만, ‘일정한 방식’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윤리적 판단 아래, 나만이 아닌 모두를 위해 합리적 선택이 동반된 옷들은 그 자체로 스타일이 된다. 남들에게 잘 보이고 나의 개성을 표출하는 것만큼이나 내 스타일에 담긴 나의 가치관도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진정한 패션 피플이 되기 위해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와 공정 그리고 성분표를 살피는 일, 평소보다 품이 들더라도, 지구와 나를 동시에 살릴 수 있는 자발적 검수 과정을 멈추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습관이 되겠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뭐, 아직은 작은 시작과 다짐만이 존재하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9번의 일 - 김혜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