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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너의 곁에 없을 때

(1)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와 최은영의 모든 소설

by 존치즈버거


To. 친애하는 코튼 킴


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에게 네가 궁금증을 품는 것들에 대해 질문을 건네지. 우리끼리만 이야기를 나눌 때면 금세 곁으로 다가와 분홍빛의 복숭아 같은 뺨을 부비며 지루한 어른의 세계를 엿보길 즐기지. 언제나 “나 할 말이 있는데.”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너의 말들에는 생기 넘치는 호기심과 세상을 향한 해맑은 앎의 욕구가 담겨 있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매일같이 새로운 것들을 관찰하고 발견하고 말을 건네는 너. 집중하는 자세로 귀를 기울이는 너를 보고 있으면, 네 속에 뿌리내린 파릇파릇한 새싹이 우리의 이야기를 먹고 자라나는 것 같아 한 번 더 말을 고르게 돼. 언젠가 그 새싹은 열매를 맺고 울창한 숲이 되겠지?


척척박사처럼 보이는 엄마와 아빠일지라도 언젠가 너의 질문에 모두 답해주지 못하는 날이 오게 될 거야. 어쩌면 너 자신이 차마 질문을 던지지 못하는 물음을 가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고. 이유는 다양하지. 독립이 만들어낸 물리적 거리 때문일 수도 있고 걱정 끼치고 싶어 하지 않는 배려의 마음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부모와 자식이라는 특수관계에도 도무지 가닿을 수 없는 서로의 영역적 특성 때문일 수도 있고. 지금은 상상이 안 되겠지만, 우리가 서로를 아무리 신뢰하고 사랑해도 분명 무턱대고 털어놓지 못하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생기게 되는 날이 온단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은 하지 마. 그런 날이 오면, 네가 우리에게 차마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은 네가 우리를 벗어나 만난 친구와 연인에게서 위로받게 될 테니.


하지만 어느 날에는 혼자서만 알고 싶은 이야기들도 존재하게 될 거야. 어쩐지 사소한 이야기들 같아 말하기 멋쩍어지는 감정들, 거대한 우주의 한 톨 먼지만큼이나 별 일 아닌 것 같지만 자꾸만 눈가에 달라붙어 눈물 흐르게 하는 일들이 있어. 외롭지만 혼자 있고 싶고 혼자 있고 싶지만 누군가 너의 등을 다독여 주길 바라는 그런 날을 위해 내가 너에게 선물을 준비했어. 바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와 최은영의 소설이지.


사실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엄마는 많은 것을 알지 못해. 알기 위해 노력하는 매일이 있을 뿐이지. 다 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떤 날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에 괜히 불안하기도 해. 그럴 때면 나도 소설책을 집어 들어. 그리고 확인하지. ‘아, 나 정말 아무것도 몰랐구나.’ 특히 이 두 작가의 책을 읽으면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해. 함부로 내뱉은 나의 말들이 누군가의 가슴에 칼날로 박힐 수 있는지, 무심코 단정 지은 해답들로 어떤 사람들은 오랜 혼동을 살게 되는 지를 배웠어. 그렇다고 겁먹지는 마. 널 다그치거나 혼내는 책들은 결코 아니니까. 무지를 깨닫게 하는 동시에 소외된 감정을 끌어안아 주는 이야기들로 가득한 책이니까. 어떤 날에 이들의 이야기는 나보다 널 더 포근하고 세심하게 끌어안아 줄지도 몰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그런 기분 알지? 정말 좋아하는 걸 알려주고 싶을 때 말이야,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상대방이 고스란히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더 들뜨고 정리되지 않고 마음이 급해지는 기분. 이거 진짜 좋은 거라서 이 사람도 그 기분 알게 해주고 싶은데 모든 게 다 너무 좋아서 무엇부터 고를지 혼란스러운 마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을 이야기할 때면 나도 그래. 하지만 마음을 다 잡고 정신을 집중! 우선 이 작가의 대표작인 ⌜올리브 키터리지⌟부터 말해야겠다. 이 책은 처음 읽게 되면 뭔가 심심할 수도 있어. 미국 메인 주에 있는 작은 마을인 크로스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거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올리브 키터리지’가 있지. 그녀는 고등학교 수학 교사로 오래 일했고 헨리라는 남편과 크리스토퍼라는 아들을 두고 있어. 위로로 널 끌어안아 주는 책이라니 어쩐지 그녀 또한 다정하고 섬세한 사람일 것 같겠지? 그러나 전혀 아니야. 큰 키에 퉁명스럽고 변덕 또한 잘 부리기로 유명하지. 어쩔 땐 상대방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 정도로 적나라하게 충고를 건네기도 해. 그래서 크로스비 사람들도 그녀를 딱히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아. 하지만 무릇 사람이란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라는 말도 있듯, 이 책 속 13편의 단편을 읽고 나면 올리브 키터리지만큼 타인에 대해 예민하게 관찰하고 마음을 쓰는 사람도 드물다는 생각을 하게 돼. 비록 그녀가 가진 형식이라는 게 가시투성이지만. 밤나무 열매처럼 뾰족한 껍질을 조심히 까 보면 세상 포들포들한 인간애가 숨어 있지. 무심하게 툭, "오다 주웠다."라며 선물을 내던지고 가는 인물이랄까.


이 작가의 책을 보면 자주 메인주가 등장해. 작가가 실제로 자고 나란 곳이지. 작가는 자신의 고향을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묘사로 표현하기보다는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생생하게 묘사해. 별다른 특징 없이 어쩌면 황량하게도 느끼지는 곳이지만, 소설을 읽고 나면 꼭 그곳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 그만큼 작가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올리브 키터리지의 슴슴한 맛에 중독되면 너도 이 이야기에 중독이 될 거야. 크로스비를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좌절과 노여움 같은 여러 감정들이 매번 새롭게 다가와. 어쩌면 나도 느꼈을 감정과 일들.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나 또한 품고 있는 애잔함 같은 것들. 올리브 키터리지는 그런 타인의 내면을 누구보다 잘 포착하는 사람이야. 어쩌면 한없이 타인의 감정을 흡수하기에 방어적 기제로 괴팍함이 자리한지도 모르지. 함부로 좋아할 수도 없지만 한 번 좋아하면 퉁명스러운 말들까지 다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인물이야.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무심하게 안아주지만 그 안에 깃든 타인을 향한 통찰에는 엄청난 힘이 있지.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운달까? ⌜올리브 키터리지⌟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와의 첫사랑이 시작되었다면 ⌜내 이름은 루시 바턴⌟으로 그 사랑을 견고한 것으로 만들 수 있지. 물론 그 사이 ⌜에이미와 이저벨⌟, ⌜버지스 형제⌟, ⌜무엇이든 가능하다⌟와 노년이 된 올리브의 이야기를 다룬 ⌜다시, 올리브⌟도 있지만.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은 모녀의 이야기야. 딸인 루시 바턴이 맹장염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 바쁜 남편이 그녀를 돌볼 수 없어서 대신 루시의 어머니에게 연락을 하고 루시와 그녀의 어머니가 뉴욕의 병원에서 아주 오랜만에 재회하게 돼. 5일이라는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시간 동안 모녀는 대화를 나누고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루시는 자신의 고향이자 가족들이 살고 있는 일리노이주의 앰개시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있었던 자신의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게 되지. 그 일들 속에는 티브이도 없고 먹을 것이 없어서 불은 콩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집보다 학교를 더 좋아했고 책을 통해 유일하게 위안을 받던 루시의 초라한 과거가 드러나기도 하고, 그 이후 고향을 떠나 대학 생활을 하며 겪었던 혼란과 상처, 루시가 들었던 세라 페인이라는 작가의 수업과 그것을 통해 작가가 쓸 수 있는 것과 써야만 하는 것 등의 이야기도 나와. 이 소설 또한 극적이거나 인위적인 사건 없이 일상적인 모녀의 만남을 보여줘. 그리고 그 만남이 루시의 내면을 어루만지는 계기가 되고 과거의 회상을 통해 루시는 치유를 받는 과정을 보여주지.


기억은 연대순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루시의 현재 상태에 초점이 맞추어져 파편적으로 드러나. 대화 중에 일어난 엄마와의 어떤 감정들, 따뜻해지는 마음도 있고 미끄러지는 순간들이 뒤엉키면서 루시의 과거들도 불쑥 우리에게 소개돼. 그러한 생각들 속에는 그녀의 결핍과 고독, 훌쩍 나이를 먹어 이제는 두 딸의 엄마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아이의 마음 그대로 놓지 못하는 가족에 대한 서운함과 후회 같은 것이 녹아들어 있어. 또한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루시를 통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생각하는 글쓰기에 대한 신념이나 철학을 엿볼 수도 있지. 문장은 쉽고 간결해. 설명 대신 여백을 만들고 독자로 하여금 그 빈칸을 각자 자신만의 언어들로 채울 수 있게 서술되어 있어. 어렵지도 않지만 쉽지도 않은 인생처럼 이 책은 너무나 평범하고 흔히 겪는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두려워 외면하고 마는 허약한 감정들을 생생하게 마주 보게 하지. 이 소설 또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어. 그 힘은 우악스럽고 강압적이지 않아. 부드럽고 은은하지. 그래서 더욱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들어.


진실이란 건 모호해. 거짓이 왜 거짓인지는 말할 수 있지만 진실에 대해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해. 모든 진실은 누군가의 입밖에 나오는 순간 가공되기 마련이지.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누구보다 진솔하게 진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은 망설이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지. 작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자신의 오직 한 가직 이야기, 그 진실에 천천히 다다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그래서 소설 속 주저하고 망설이는 모든 순간을 사랑하게 만들어. 우리의 생과 꼭 닮아 있다는 기분이 들어. 엄마와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자기의 가족을 이야기하는 대신 남의 이야기를 하며 에둘러 자신들이 가진 두려움과 불안을 이야기하는 장면도 좋았어. 진실은 아주 중요하지만 진실만큼 우리를 고통에 빠뜨리는 것도 없잖아. 거짓말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 조용히 진실을 응시하는 것이 더 머리가 아파. 이 책에 등장하는 진실들은 엄청나게 사소하고 사실 의식하지 않고 잊어버려도 좋을 만큼 대수롭지 않아. 하지만 주인공 루시나 그녀의 어머니의 어떤 일관적인 태도나 화법처럼 시간이 흘러도 절대 변하지 않는 특성처럼 그들의 마음에 깊이 내재된 우리의 본성과 같다. 그래서 거대하고 특수한 사건적 진실보다 더 가슴을 후벼 파. 특히나 가족들, 내부자들만이 알 수 있는 공통의 감정과 사실들. 그것만큼 날 것으로 살아 우리를 심약하게 만드는 것이 있을까? 너도 언젠가 한 번쯤 심리학 책을 보게 될 거야. 거기에는 빠짐없이 나오는 것이 유년이야. 어린 시절 말이야. 만 5세 전에 인격이 형성된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런 말을 듣고 있으면, 우리가 아무리 탈출하려 해도 우리의 원형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스 비극의 신탁처럼 우리의 어린 날이 시종 우리의 발목을 붙잡기도 해. 기억상실이 걸리지 않은 한은. 물론 그 구덩이를 무사히 빠져나오는 것도 우리의 몫이겠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은 그래. 진실을 보게 만들면서도 절대 함부로 들추지 않아. 사려 깊고 조심스럽지. 나는 이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웠어. 그러니까 어떤 태도 말이야. 물론 그걸 알았다고 내가 완벽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은 할 수 없지. 엄마도 여전히 미숙한 사람이야. 나도 너와 함께 인생을 배워나가고 있단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배움의 동지이기도 하지.




하고 싶은 말이 넘치고 흐르지만 이쯤으로 남겨 둘게. 앞으로 엄마와 함께 하면서 이 작가의 이름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듣게 될 테니 말이야. 그만큼이나 엄마에게 중요하고 소중한 작가야. 마음속 응어리로 중심의 무게추가 흔들리는 날이 오면, 나는 늘 그녀의 책을 통해 깨우치고 다독여. 네가 매일 밤 내 팔꿈치를 만지며 안정감을 얻듯이, 스트라우트의 소설은 엄마만의 팔꿈치라고 할 수 있지.


그럼 다음은 으슬으슬 마음의 감기가 들 때면 할머니 댁 푹신한 담요마냥 온몸을 감싸주는 소설을 읽어볼까? 널 임신하고 부지런히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늘 가방 속에 이 작가의 책이 있었지. 반짝반짝 빛나는 눈망울만큼이나 초롱초롱 등불 같은 이야기를 속삭이는 최은영 작가의 책들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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