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뤘지만 비전은 사라졌다
개발자는 한때 나의 꿈이었다. 막상 그 꿈을 이루었을 땐 해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도달점이 아니라 시작점이였고 목표를 이룬 뒤에도 삶은 계속되었고, 도리어 그 후에 더 많은 질문과 회의가 몰려왔다. 내가 스스로 판단하기에 제대로 된 개발자가 되는 과정은 딱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전시가 주던 설렘은 어디로 갔을까
전시도 마찬가지였다. 6 번의 전시를 해보면서 얻었던 자기만족은 곧 부담으로 바뀌었다. 전시를 반복할수록 기대치는 높아지고, 퀄리티에 대한 압박은 재미보다 피로를 먼저 불러왔다. 본업이 따로 있는 나에게 전시는 생존이 아닌 선택이었고, 처음엔 매년 한 번쯤은 하고 싶다는 열정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마음이 희미해졌다.
유화를 좋아한다. 손으로 그리는 행위 자체가 주는 몰입감이 좋았다. 하지만 다양한 시도를 하기 위해선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걸 감당하는 일이 점점 쉽지 않게 느껴졌다. 전시를 많이 본 입장에서, 나는 늘 전시에 와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생각한다. 그 예의가 곧 '퀄리티'라고 생각했지만, 그 기준은 너무나도 주관적이고 모호하다. 어떤 날은 좋은 전시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넘치고, 또 어떤 날은 그 무게가 창작 자체를 막아버린다.
즐거움과 책임감의 간극
전시에 참여하고, 홍보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는 일은 분명 즐겁다. 하지만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이 뒤따르고, 그 책임은 어느 순간 창조성을 갉아먹는다. 예술이 더 이상 놀이가 아닌 일이 되었을 때, 나는 방향을 잃는다.
그래서 요즘 자꾸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지금은 혹시 쉬어야 할 때가 아닐까.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즐겁게 그릴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은 아닐까. 하나의 세계관을 깊게 파고드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나는 지금 어디쯤에 있는 걸까.
예술하듯 예술하자
"일하듯 예술하지 말자. 예술하듯 예술하자." 내가 만든 말이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하고 싶다. 그래야 내가 이 길을 계속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 생각없이 좋아했던 첫 마음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