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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한 Sep 12. 2022

여행 프로그램을 좋아하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평소에 티브이를 자주 챙겨보신다. 뉴스, 영화, 예능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들을 두루두루 보시지만, 아버지는 그중 여행 프로그램을 가장 좋아하신다. 우리가 방에서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으면, 아버지는 우리에게 "저기 보아봐라, 너무 이쁘지 않니"라고 하시며 우리를 부르신다. 아버지는 항상, 세상 곳곳에 아름다운 장소들을 보시고선, 우리와 같이 여행 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신다.


오늘도 어김없이 여행 프로그램을 보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니, 문득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 책상 위로 덩그러니 비치는 노란 전등 때문인지는 몰라도, 문득 죄송한 마음이 더 들었다. 내 글을 읽었던 분들이라면 알 수 있겠지만, 나는 해외에서 대학교를 다녔다. 그것도 아주 좋은 대학교를 다녔다. 한데 우리 집은 유학을 꿈꿀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꿈을 꿀 수는 있겠지만, 정말 꿈만 꿀 수 있다. 한데 부모님은 나와 동생의 꿈과 미래를 위해 있는 돈 없는 돈을 모두 끌어모아 우리에게 유학이라는 기회를 선물해주셨다.


만약 우리가 조금 더 부유했으면, 아버지가 그토록 좋아하시는 우리와의 여행이라는 꿈도 이뤄드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내가 가난하다, 혹은 경제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생각을 결코 해본 적이 없다.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또한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돈이 많다면 우리가 미래보단 현실을 선택했더라면 아빠가 그토록 좋아하는 여행도 현실이 될 수 있었을 것 같다. 내가 상상하는 미래를 현실로 만들어 얻는 행복과, 아빠와 함께 여행하며 평생의 추억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 중 무엇이 더 값질까?


나는 후회되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되게 감정에 잘 사로잡히는 사람이기에, 후회하는 순간이 나에게는 너무나 감정적인 시간이며, 너무 힘든 순간이다.


오늘 내 이야기가 나에게 큰 후회로 남을까 무섭다. 그래서 나는 지금 주어진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내가 후회하지 않게, 아버지와 여행하며 다닐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여건을 만들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지금도 여행 프로그램을 보신다. 내일도 보실 것이고, 다음 주, 그리고 다음 달에도 보고 계실 것이다. 5년 후에는 여행 프로그램이 아닌 나의 카메라 속에 나와 아버지의 모습이 남아있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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