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우즈베키스탄 상공을 날아가고 있다. 인천에서 출발해 런던까지 날아가는 15시간의 긴 여정의 한가운데에 있다. 오늘 나는 내 인생의 두 번째 챕터를 시작했다.
나의 첫 번째 챕터는 중국에서 지낸 어린 시절부터 무탈하게 흘러간 군생활 까지였다. 첫 번째 챕터는 자연스러웠다. 부모님을 따라 베이징으로 건너간 나는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와는 다른 문화와 환경을 경험했다. 또한 이북에서 넘어오신 친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이에 나는 외교관을 꿈꾸며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
감사하게도 내 대학 생활은 은혜였다. 평소에 꿈만 꾸고 공부를 지지리도 안 했던 나는 감사하게도 영국 런던 소재의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고, 눈물을 훔치며 런던으로 떠난 첫 해부터 생각보다 순탄하게 자리를 잡았다. 공부가 쉽지는 않았지만, 교수 방식이 나름 나와 잘 맞아 재밌게 수업을 들었다.
평탄하던 내 첫 챕터의 전환점은 졸업학년 때였다. 이 전 글들을 읽은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이야기다. 나는 "대한민국의 안보환경 평가와 이에 따른 핵무장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라는 주제로 졸업논문을 작성하고 있었고, 내 지식과 논리를 보완하기 위해 '대량살상 무기'라는 과목을 수강했다. 이 과목이 전환점이었다. 외교관이라는 꿈을 이룬 후 어려운 이웃 국가들을 도와주는 삶을 살고 싶었던 나에게 그 과목은 국제관계의 비인간적인 모습만을 잔뜩 비추어 주었다.
인간의 피부를 불태워버리고 신경을 마비시키는 화학무기부터 온갖 치명적인 병균을 사용한 생물무기.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파괴적인 위력을 지닌 핵무기까지. 이 모든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나의 외교 수단과 방식으로 배우는 나에게 회의감이 찾아왔다. 수업과 논문은 졸업을 위해 도중에 포기할 수는 없었지만, 졸업논문을 제출하는 그 순간 내가 대학원, 혹은 대학원이 아닌 그 어디에서라도 국제관계와 관련된 공부나 일을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군생활을 시작했고, 정말 감사하게도 너무 편한 환경과 좋은 사람들 속에서 지냈다. 그 점을 이용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매일 밤 모두가 잠자는 시간에 연등을 신청해 공부했고, 틈틈이 대학원 입시를 준비했다. 그렇게 나는 부대에서 두 곳의 대학원에서 각각 아시아 정치학과 갈등학 석사 오퍼를 받았다. 어느 곳으로 갈지 고민하던 나에게는 이 길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 있었고, 선배들을 통해 들었던 법학 전환 과정에도 지원을 해보았다. 그 결과 놀랍게도 법학 과정에 합격을 할 수 있었고, 새로운 기회와 도전, 그리고 그 어렵다는 법학을 공부하며 내 한계를 도전해보기 위해 두 번째 챕터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글을 작성하다 보니 어느새 우즈베키스탄을 넘어 조지아에 이르렀다. 런던까지 남은 시간 5시간 반. 좁디좁은 비행기에서 버티느라 몸은 고생하고 있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지식을 배워갈 상상을 하면 충분히 버틸 수 있다.
첫 번째 챕터, 특히 영국으로 떠나는 첫날 나는 정말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온 새로운 삶에 대한 공포와 막막함에 눈물로 가족들과 헤어졌다. 두 번째 챕터를 시작하는 오늘도 새로운 삶에 대한 긴장과 부담이 찾아왔지만 눈물이 아닌 웃음으로 가족들과 헤어졌다.
기대와 웃음으로 시작한 챕터인 만큼, 내가 끝까지 자만하지 않고 웃음을 이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