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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워커 Sep 27. 2023

어서 와요, 우리 집에

8. 책 오타쿠의 집에 초대합니다


돌싱이라는 사실을 모임 친구들에게 말한 이후, 그들이 나를 대하는 모습은 달라진 게 없었다. 용기 내서 고백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우리가 함께 하는 단톡방은 거의 매일 쉬지 않고 맛집 추천이나 전시회 벙개 제안 등 다양한 대화가 오고 갔다. 성인이 된 후 이렇게 성별, 연령, 직업을 초월해 가까워진 사람들은 처음이라 이 만남 자체가 참 기쁘고 귀했다.

몇몇 멤버들은 인스타그램 계정을 서로 공유해서 맞팔을 하기도 했는데, 내 계정은 애초에 일기장처럼 쓰는 비공개 계정이라 안 알려주다가 이들에게는 알려줘도 괜찮겠다 싶어서 맞팔을 하고 내 일기장을 공개하게 되었다.

난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게시물을 올리는데, 예전에 올린 사진을 H가 봤다면서 말을 꺼냈다.


"J님 집 너무 예쁘던데요? 홈 파티도 엄청 자주 열고."


"아, 집에 친구들 초대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이사하고 집 정리를 계속 미루다가 지난달에 겨우 정리했거든요. 손님 초대 재밌더라고요! 우리 집에서 마시니까 취해도 걱정 없고."


"그렇겠네요 진짜. 그럼 혹시 우리도 초대해 줄 수 있어요?"


H가 약간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저야 대 환영인데, 우리 집이 되게 먼데.. 경기도에서도 꽤 깊은 곳에 있어요."


"그래도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곳이잖아요?"


"그야 그렇죠.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혹시 다들 시간 되면 우리 집에 초대할게요."


다른 분들도 자기도 가보고 싶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 홈 파티 날짜를 정하게 되었다. 이 빠른 전개가 어리둥절하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들과 더 가까워지는 과정 같았으니까.




돌아오는 토요일 저녁에 모이기로 날짜가 정해진 뒤 설레는 마음으로 초대 음식 메뉴를 뭘로 할지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다. 성격 상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푸짐하고 만족스러운 식탁을 차리는 걸 좋아한다. 애피타이저와 식사 메뉴 몇 가지, 디저트, 과일, 음료, 주류 등을 다양하게 준비하며 토요일을 맞이했다.


약속 당일 날씨는 화창했다. 6 월이라 이미 낮 기온이 높아진 상태였는데 구름이 조금 껴서 햇살을 가려주고 있었다. 넓은 식탁에 테이블매트와 앞접시, 커트러리, 개인 물컵과 와인잔을 세팅했다. 경험 상 이것만 차려 놔도 음식 메뉴가 치킨이든 피자든 떡볶이든 왠지 그럴싸 해보이는 마법이 펼쳐진다. 베란다에 넣어두었던 접이식 의자를 추가로 꺼내고 현관에 손님용 슬리퍼도 준비해 두었다. 에어컨을 켜서 온도 조절을 해놓고, 미리 만들어 놓을 수 있는 음식은 먼저 준비해서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준비가 거의 되었을 무렵 손님들이 집에 도착했다. K와 R, 그리고 H가 다 같이 K의 차를 타고 도착했는데 오자마자 H가 K의 차(바로 그 2 인승 스포츠카!) 뒷좌석 체험담을 열심히 말하며 너무 힘들었다고 장난 섞인 말투로 말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 기분 뭔지 안다며 웃으며 말했다. Y도 곧 도착했고 나까지 5명이 모이게 되었다.


"음식 먹기 전에 집 구경부터 해도 돼요? 집이 너무 예뻐요."


"그럼요. 옷장과 냉장고 문만 열지 마시고, 그 외엔 다 구경해도 돼요."


다들 거실에서 보이는 창 밖 풍경에 먼저 감탄하고, 예쁘게 인테리어 해놓은 거실과 주방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노란색 가림막 커튼으로 막혀있던 서재로 들어서는 순간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다.


"헉. 이게 뭐예요. 이거 다 책이에요?"


"네, 제가 사실 책 덕후라서요. 제 소중한 서재입니다."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들 눈이 동그래져서 서재에 꽂힌 수천 권의 책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K는 그 책 중 매니아틱 한 책들을 발견하곤 감탄하기 시작했다.


"와... 이 책이 있다고요? 이 책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특히 여자들 중에 이 책 아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J 님 진짜 오타쿠네요?"


K가 그렇게 말하자 오히려 내가 더 놀랐다. 그의 말대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드문 책이라서, 그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더 신기했다.


"크흠. 네, 맞습니다. 오타쿠입니다. 부인할 수가 없네요."


"와.. 진짜.. J 님.."


다른 분들은 책에 큰 관심들은 없어서 잠시 감탄하고 끝났는데, K는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 식사하는 와중에도 끝없이 감탄사를 뱉었다.




집들이 선물로 가져온 와인과 간식들을 함께 나누어 먹고, 내가 준비한 음식도 천천히 즐기며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갔다. 밤이 깊어갈 무렵, 와인 병이 3 병 째 비워지던 즈음 R이 나에게 물었다.


"J 님, 저 하나 물어봐도 돼요?"


"응? 어떤 거요?"


"왜 이혼했어요?"


R의 질문과 함께 다른 3명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이혼 사유를 이렇게 직접 대놓고 물어볼 줄은 나도 몰랐다. 그동안 정말 가까운 친구들조차 조심하느라 묻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내 지난번 고백이 이들에게는 와인 안주거리 중 하나였던 건가 싶은 마음이 들자 조금 쓴웃음이 배어 나왔다.


선물받은 와인은 늘 그 날 다 마시게 된다. 화분 선물은 감사하지만 대체로 우리집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이 브런치북의 완결편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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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손을 꼭 잡고 이혼하는 중입니다>와 일부 이어지는 조니워커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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