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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워커 Oct 04. 2023

가십거리를 제공해 드립니다

9. 친하면 물어봐도 되나요


“어라... 혹시 다른 분들도 다 그게 궁금했던 거예요?”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사실 자기들도 그걸 물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너무 개인적인 일이라 차마 말을 못 꺼내고 있었다고 했다.


“우리 이렇게 집에 초대될 정도면 많이 친해진 편인 것 같기도 하고, 술도 마셨으니 용기 내서 물어봐요. 아, 물론 말하기 힘들면 안 하셔도 되고요.”


그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니, 어떤 마음들 일지 알 것 같았다. 주변에 이혼한 사람이 아직은 많지 않을 테니까. 이렇게 멀쩡하게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이혼의 상처가 없어 보여서 마음 편히 물어보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용기 내 물어본다고 하지만, 글쎄.

정작 이들보다 더 친하게 지내고 있는 회사 동료들은 더욱 조심하느라 여태 나에게 묻지 않은 일이다. 이혼 사실을 밝힌다는 게 이들의 흥밋거리로 소비될 수도 있었겠구나 싶어서 조금 씁쓸한 맛이 입안에 맴돌았다. 그래도 여기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 정도로 사회성이 없지 않기도 하고, 여기서라면 이혼 사유를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이혼했다는 사실 자체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늘 솔직히 말해왔지만 이혼 사유는 말하지 않았었다.

솔직하고 숨김없는 성격 탓에 이혼 전에도 이런저런 일상 얘기를 친한 사람들과 하곤 했는데, 일상 얘기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야기 중에 남편이 나오곤 했었다. 그래서 남편을 실제로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더라도 이야기 속에서 내 남편에 대한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그 이미지는 대체로 매우 긍정적이고 좋은 모습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늘 그의 좋은 점만 말했었으니까. 그래서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지인들에게 남편의 외도 때문에 이혼했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굳이 그들에게까지 배신감을 느끼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내게 이혼 사유를 묻는 이 사람들은 전남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직업과 회사를 모두 알고 있어서 전남편과 접점이 없을 거라는 확신도 있었고, 술도 마신 김에 처음으로 솔직하게 이혼 얘기를 해보고 싶기도 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헤어졌어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인상을 찌푸리고 약간의 화가 난 표정을 짓는 사람들. 그래, 아주 정상적인 반응들이다.


“잘했어요. 바람피우는 놈은 한 번 피우면 계속 피우더라고요.”

 

“그러니까. 진짜 잘했어요.”


모두 한 잔 하자면서 와인 잔에 술을 따른다. 나의 성공적인 이혼을 위한 건배인가. 어쨌든 짠 하며 잔을 부딪혔다.




빈 와인 병이 하나 둘 계속 늘어나며 다들 취해 가기 시작했다. 취기가 오를수록 더 솔직한 이야기들이 오갔고, 그러던 중 K가 갑자기 말했다.


“아니, J님. 그놈하고 그냥 헤어진 거예요?”


“응? 아, 전남편이요? 그렇죠. 그냥 위자료까지 쳐서 재산분할을 했고, 저도 변호사 비용이나 몇 년에 걸친 상간녀 소송 같은 걸 하느니 내 정신건강을 지키는 게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한 대 패주기라도 하지 그랬어요. 내가 다 화가 나네.”


“크크. 그러게요. 그땐 그 생각을 못했는데, 이런 사유라면 몇 대 패줬어도 될 뻔했네요.”


K가 내 이혼사유에 저렇게 분개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 낯설고 이상했다. 많이 취했나 보다, 슬슬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다들 가야죠? 택시 하나씩들 잡아보세요.”


방향이 같은 3 명은 함께 택시를 타고 이동하기로 해서 먼저 출발했고, K는 대리기사를 불렀는데 오는데 10 분 정도 걸린 다기에 우리 집에 잠시 남게 되었다.


"괜찮으세요? K님 많이 취했어요."


"괜찮아요. 근데 J님 진짜..."


"네?"


"진짜 오타쿠시네요."


"아니, 갑자기 또 무슨 소리예요."


킥킥 웃으며 받아쳤다.


"정말 저런 책 가지고 있는 여자분 처음 봐요. 와.. 진짜. 너무 놀랐어요."


"제 책의 가치를 알아봐 주시니 좋네요, 저도."


오타쿠는 원래 오타쿠임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기쁜 법이다. K의 반응이 내심 기뻤다. 조금 우쭐한 기분도 들었다.


"아, 대리 기사님 도착하셨나 봐요."


"네네, 조심히 들어가시고요. 오늘 와주신 것도 선물도 모두 정말 고마워요."


"뭘요. 덕분에 재밌게 잘 놀았어요. 푹 쉬어요 J님."


철컹. 문이 닫히고 집 안에 적막함이 흐른다.


왠지 정신없는 하루였고 쉴 틈도 없었지만, 기분 좋은 피곤함이 내 안에 가득했다. 그동안 몇 번의 손님 초대를 했었는데, 내 이혼 사유를 커밍아웃한 사람들은 처음이라 그런 걸까. 조금 다른 기분이었다.


오늘 나의 이야기가 그들에겐 금방 잊힐 가십거리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나에겐 또 하나 내 마음속 빗장을 여는 순간 같기도 했다.


집들이 선물로 들어왔던 식물 중 스킨답서스 만이 1년 넘게 살아남았다. 초록이 집에 가득해져서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더라.

*이 브런치북의 완결편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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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손을 꼭 잡고 이혼하는 중입니다>와 일부 이어지는 조니워커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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