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니워커 Sep 19. 2022

서로 손을 꼭 잡고 이혼하러 갑니다

8. 다른 부부와는 다른 우리의 이혼하는 날




2015년 3월 우린 결혼했고,

2021년 4월 나는 그와의 이혼을 결심했고,

2021년 7월 오늘, 우리는 협의이혼 접수를 하러 법원을 간다.



이직 후 바쁜 회사생활을 보내다 보니, 오늘이 나의 세 번째 연차휴가 날이다.

지난 1년 간 휴식은 거의 없이 평일 아침 7시에 눈뜨는 삶을 보내서 그런지, 오늘은 알람을 맞추지 않았음에도 7시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침대에서 미적거려봐야 의미 없다는 걸 잘 알기에 바로 일어나서 거실로 나왔다.

늘 그렇듯 고양이 두 마리가 기지개를 쭉 켜며 나에게 반갑게 다가온다.

딩크 부부인 우리의 아들과 딸이나 다름없는 고양이들. 남편과의 이별뿐만 아니라 아이들과의 이별까지 곧 나에게 다가온다고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욱신거리지만.. 나는 날 잘 알고 있다.

이 또한 잘 극복할 거라는 걸.


오전 10시 반. 그도 잠에서 깼다.

그가 새로 옮긴 회사는 이제 막 합병돼서 매우 바쁜 와중이었다. 나와 같은 연차휴가 날임에도 그는 아침부터 바쁘게 울려대는 회사로부터의 카톡에 정신이 없다.

이렇게 바쁘고 정신없는 때 이혼을 하게 되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인생은 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주민센터에 들러서 가족관계증명서, 혼인증명서,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은 후 서울 서부지방법원으로 갔다.

그와 내가 즐겨 본 드라마 <비밀의 숲>에 나온 바로 그곳, 황시목이 서있던 그곳.

평일 점심시간쯤 도착했더니 이제 막 점심을 먹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서 사무실로 들어가는 직장인들이 많이 보였다.

공덕역 주변에 집을 구하려 했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면 역시 지나친 번화가도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싶었다. 정신없이 다니는 차량, 사람, 소음, 그리고 우리가 이별하게 될 법원이 집 바로 앞인 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닐 듯 하니.


공덕역에서 나와 법원까지 걸어가는 길.

이 길은 그와 내가 결혼 이후 100번은 걸어 봤을 길이다. (우리는 신혼부터 지금까지 6년 간 계속 마포구에서 살고 있다.)

그렇게 많이 걸은 길임에도 왠지 서부지법의 위치는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 게 신기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

길을 걸으며 우리는 "어? 저기 새 식당 생긴다. 다음에 가보자."라든가, "여보, 저기 또 공사 중이네. 이번엔 뭐가 생길까?"라는 식의 대화만 주고받으며 그 길을 걸었지, 단 한 번도 "여보 저기가 서부지법이야. 우리가 이혼할 때는 저기로 가면 돼."라며 걸어본 적은 없으니까.



100번도 지났을 그 길을 따라 서부지법이 가까워질수록 왠지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붙잡은 그의 손도 평소보다 훨씬 뜨겁다는 게 느껴졌고, 그게 이 덥고 습한 7월의 날씨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 편으로 우스워졌다.

이혼 서류를 제출하러 가는 길에 이렇게 손을 꼭 잡고 가는 부부가 또 있을까.

우리는 참.. 마지막까지 우리 답구나 싶었다.



서부지법 2층에 올라가니 딱 오후 1시가 되었고, 닫혀 있던 접수창구가 문을 열었다. (설마 점심시간이라고 아예 창구를 닫아놓을 줄은 몰랐다. 애매하게 12시 20분에 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우리보다 더 일찍 와서 기다린 두 부부가 먼저 줄을 섰다.


한 부부는 국제결혼을 한 부부. 아내분이 베트남 분이셨는데 한글을 잘 못써서 남편이 대신 이름을 써주려고 하자, 법원 직원이 그러면 안 된다고 말렸다.

이혼 서류는 반드시 본인 자필로 써야 한다고. 베트남어로라도 쓰라고 하셨다.


그다음 부부가 접수하려고 하니, 혼인관계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를 뗄 때, 일반 버전이 아니라 상세 버전으로 뽑아야 한다며 뒤에 있는 무인발권기에서 다시 뽑아오라고 돌려보내셨다.


이런..! 우리도 당연히 일반 버전으로 뽑았는데.

법원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협의이혼절차에는 '반드시 상세 버전으로 발급받으시오.'라는 문구 따위는 없었다고!

역시 공무원들에게 친절함과 디테일을 기대해선 안된다고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이렇게 현장에 와서 보니 새롭게 배우는 것들이 이처럼 많은데, 아쉽게도 이 지식을 어디 쓸데가 없다는 게 또 살짝 우스웠다.



앞의 두 부부가 끝나고 우리 차례가 되었다.

재발급한 모든 서류를 다시 제출하고 그분이 확인을 하신 뒤, 우리에게 A4용지에 인쇄된 내용을 안내해주신다.


"8월 10일 아니면 8월 12일 오후 4시에 나오셔야 합니다. 이틀 중 하루만 나오면 되는데, 둘 다 안 나오시면 자동으로 이혼의사를 철회하신 걸로 접수됩니다. 두 분이 말씀 잘 나누셔서 이혼 안 하게 되셨으면 안 오셔도 됩니다."


정확히 1개월 뒤인 줄 알았는데, 가정법원이 열리는 날이 주 2회로 정해져 있나 보다. 이것도 직접 경험하지 않았으면 잘 몰랐을 쓸데없는 지식.


그리고 그 직원분의 말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다.


대화를 잘 나눠서 이혼을 안 하게 되는 게 반드시 행복한 일인 건가. 그 반대인 경우도 많을 것 같은데.

결혼생활의 유지가 좋은 것만이 아니기에 나는 그와의 이혼을 결심했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대화 다시 잘 나누고 이혼하지 마세요.'라는 뉘앙스로 문득 들려서 내가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했나 싶었으나, 이런 생각은 굳이 그에게 말하진 않았다.



이혼 접수를 마치고 나오니 오후 1시 30분경.

평소에 먹지 못하는 비싼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공덕역에 있는 하츠마부시(장어덮밥) 전문점.

1인분이 37,000원이나 해서 우리는 딱 한 번만 먹어본 환상의 음식(?)이다.

아! 사가 여행을 갔을 때 지역 전문점에서 먹은 것까지 포함하면 두 번.


그와 갔던 일본 여행은 모두 참 즐거웠다.

아니, 2년 전에 갔던 방콕 여행도. 신혼여행지였던 하와이도. 여름 휴가지였던 사이판도. 그와 결혼 전 갔던 제주도도.

모든 여행이 참 즐거웠고, 우리는 여행 스타일이 비슷해서 한 번도 싸우지 않았기에 모든 추억이 다 아름답게 남아있다.

하츠마부시 앞에서 그와의 즐거웠던 여행 추억이 떠오르다니 이 또한 참 우스운 일.


점심시간이 지나서인지 자리는 꽤 비어있었다. 코로나가 다시 심해지는 상황이라 다행이다 싶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며 슬쩍 셀카를 찍어봤다.

이혼한 당일의 내 모습을 하나 남기고 싶었다.

6년 전 그와 결혼했을 무렵의 예쁘고 빛나던 젊은 나는 이제 핸드폰 화면 속에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며 나를 아껴주는 내가 있으니 그걸로 됐지 싶었다.


지금 그는 어떤 마음일까.

잠깐 궁금했지만 굳이 물을 이유가 없으니 묻지 않았다.

이제 와서 내가 알아봐야 아무 의미 없는 감정이고, 난 내 감정에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가 늘 걷던 경의선 숲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간다.

이혼신고를 하는 법원이 도보 거리(도보 30분이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그 정도는 도보권이다)에 있으니, 이것도 참 신기한 일.

좋은 동네에 사는 건지 아닌 건지.


경의선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주 가던 카페가 있는데, 그가 그곳을 특히 좋아한다. 난 사실 특별히 더 맛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가 좋아하는 곳이니 그곳으로 가기로 한다.

커피를 두 잔 텀블러에 받아서 다시 집을 향해 걷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새로 생긴 건물을 보기도 하고, 새로운 식당을 보기도 하고.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도 익숙한 그 길.


정말 평소 데이트와 전혀 다를 것 없는 그 길을 따라 나는 그와 손을 꼭 잡고 이혼 접수를 하고 왔다.



이전 07화 독주를 머금었다 삼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