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기어이 삼켜버린 모진 말
그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나는 그에게 뱉어내지 못한 말이 많았다.
독으로 가득한,
상처를 줄 목적으로만 뱉는,
그를 끝없는 죄책감에 빠져들게 만들 수 있는.
혹자는 왜 그 말을 하지 않았냐고,
더 심하게 말해도 되지 않았냐고,
흠씬 패줘도 부족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였어도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일을 당했다면 그렇게 말했을 것 같으니까.
그럼 왜 그때의 나는 그 말을 하지 않았을까.
내 입에서 독을 뱉는 순간
나도 그 독에 물들어 버릴 것 같아서였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나는 겉으로는 굉장히 단단하고 굳건해 보이는 사람이고 실제로도 그런 성격이지만, 의외로 남에게 싫은 소리 모진 소리를 못한다.
어쩌다 그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했다면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하고 좋지 않다. 해야 했던 말이지만 다른 방법, 다른 단어로 더 좋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고민한다.
그런 내가 만약 사소한 일도 아닌 이런 일에 대해
일부러 상처 줄 걸 알면서 하는 말을 감정에 맡기고 무분별하게 다 뱉어냈다면..
분명 난 지금 이 순간
“그 말을 왜 안 했지..”하는 후회보다,
“왜 그 말을 했을까..”하는 후회를 더 크게 하고 있었을 거다. (멍청하게도 말이다)
부모님께 이혼하게 되었음을 알린 다음, 바로 두 분의 핸드폰에서 그의 전화번호와 카카오톡을 삭제했다. 혹시라도 연락해서 그에게 욕을 하며 심한 말을 하시지 않을까 싶어서.
그를 배려한 거였다. 이 와중에도. 역시나 멍청하게.
(새삼 이렇게 글로 그 당시 상황을 남기고 보니, 이런 이혼사유임에도 이렇게 호구같이 순순히 헤어진 여자가 또 있을까 싶다.)
그 역시 그의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돌아왔다. 나보다 조금 더 오래 머물다 온 걸 보면 많은 얘기를 듣고 온 게 아닌가 싶었으나 그는 그냥 잘 말하고 왔다고만 말했고, 나도 그러냐고만 대답하고 굳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훗 날 그날의 얘기를 좀 더 자세히 듣게 되었는데, 부모님에게 태어나서 가장 크게 혼이 났었다고 한다. 이제 넌 내 아들이 아니고, 얼굴도 보고 싶지 않다고 화를 내셨다고.
아마 그는 부모님으로부터 내 대신 모진 말을 많이 들었을 거다. 물론 내가 그에게 하는 게 마땅한 더 심한 말들도 가득하지만, 그건 이제 그냥 묻어두기로 했다.
누군가가 인생을 잘 사는 방법론 중 하나로
“말할까 말까 할 때는 하지 마라”라고 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과연 그렇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되돌릴 수 없다.
그에게 평생 갈 상처를 남기는 대신
독이 가득한 말을 위스키 한 모금처럼 삼킨 나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