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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워커 Sep 05. 2022

세 가지 길에서 속절없이 흔들리다

5. 그와 이별하는 방법



약속했던 한 달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도 나도 그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서로 입 밖으로 말하진 않았다.

그는 그저 내게 오직 다정하게 상냥하게 대했다. 원래도 그런 사람이었는데 거기에 노력이 곁들여지니 이보다 더 훌륭한 남편감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의 상냥함과는 별개로 내 마음속은 수많은 생각들로 복잡한 상태였다. 이 기간 내에 나는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로 내 마음을 정해야 했다.



첫째, 그의 세 번째 외도도 눈감아주고 이 상냥하고 능력 있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유지하며 삶의 질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가장 미련한 방법이지만, 세상에는 이 방법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들었다. 특히 자녀가 있을 경우 아마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와의 결혼 생활은 약간 힘들게 하는 시댁 문제와 이번 사건을 제외하곤 놀라울 만큼 평화롭고 이상적이고 순조로웠기에,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정말 많은 고민을 했음에도 이 선택지는 제외했던 이유는 내가 나 자신에게 물었기 때문이다.


"네가 너 답게 사는 방식이 뭐야? 남편의 부도덕함을 참고, 아무에게도 말 못 할 비밀을 속으로 간직한 채 속이 곪아가는 삶이 정말 너 답게 행복하게 사는 방식이야?"


대답은 당연히 No.


내가 나를 망칠 수는 없었다.



둘째, 그의 인생도 상간녀의 인생도 망가지도록 최악의 이별을 준비하는 방법이다.


가장 통쾌한 복수 방법일 수 있겠다. 이것 역시 현실적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방법이고, 많은 사람이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이혼에 대해 조금만 알아보면 이 방법은 굉장히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라는 법에 걸려서, 내가 만약 그의 회사에 가서 알리거나 그 상간녀의 회사나 집에 가서 이 사실을 알려 복수를 하게 되면, 그들은 나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할 수 있고 잘 못하면 형사처벌을 내가 받게 된다.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트려 놓은 죄인들인데, 대한민국 법은 그런 그들의 명예를 참 열심히 보호해준다.


*형법 제307조 1항에 규정된 것으로,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명예훼손을 형법으로 처벌하는 국가는 매우 드물고, UN은 지속적으로 우리나라에 형법에서 조항을 삭제하는 걸 권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법은 나를 보호할 장치가 전혀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민사소송을 통해 위자료를 최대한 챙기는 방법은 가능하다. 정신적, 심리적 보상방법은 없으니 금전적 보상은 해주겠다는 거다.


하지만 나의 경우엔 충분히 받지 못할 확률이 높다. 외도의 증거자료는 가지고 있지만 단발적 자료가 아닌 1년 이상의 기간을 들여 천천히 확보한 자료가 필요하고, 우리 사이에는 자녀가 없고, 내가 이미 두 번의 외도를 눈감아 줬던 내역이 있어서 많이 받아봐야 몇 천만 원 정도라고 한다. 상간녀 소송에서도 1,2천만 원 정도밖에 못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겨우 수천만 원 때문에 1~2년 이상의 긴 소송기간을 버티고, 계속 이 사건을 현재 진행형으로 만들며 나 자신을 스트레스 속에 밀어 넣고, 변호사 비용까지 지불해가며 소송을 하는 게 맞는 걸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나답지 않은 선택이었다.


(물론 수 천만 원, 아니 천만 원이라도 더 받는 게 중요한 분들이 많고 그 선택을 존중한다. 나의 경우엔 다행히도 직장생활을 오래 계속해오고 있었고 돈 보다 정신적 평화가 더 중요했기에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셋째, 그에게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재산분할을 받아내고 그걸로 이 인연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방법이다.


나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이었다.


우리 사이에 재산이라고는 대출을 잔뜩 낀 집 한 채뿐이었다. 결혼할 당시 부동산 침체기라서 저렴한 가격에 샀던 아파트가 그 후 부동산 폭등기를 맞이한 덕분에 나름대로 재산을 축적할 수 있긴 했다. 그러나 대출을 빼고 순 자본금만을 나누면 조금 아쉬워지는 금액인 게 사실이다.


이 집을 샀을 당시에도 남편이 더 크게 기여했고, 그 후 대출 상환 과정에서도 남편이 연봉이 더 높다 보니 당연히 기여도가 높았다. 물론 나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똑같이 직장생활을 해왔고, 비금전적인 가사 노동에 대한 기여가 더 높기에 어차피 재산분할을 한다 해도 아주 손해를 보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생각하면 남편이 65%, 내가 35% 수준이 아닐까 싶은데, 여기서 나의 위자료 명목의 돈을 추가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재산을 분할하면 그래도 몇 억의 돈을 갖게 되고, 거기에 내가 대출을 끼면 수도권에 작은 집 한 채는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만에 하나라도 그가 내 몫의 재산을 기대보다 적게 준다면 어떻게 할 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하지만,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분명 내 위주로 생각해 줄 사람이었다. 이성관계에 대한 신뢰는 이제 전혀 없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선 난 그를 여전히 믿고 있다.



이제 내가 정한 길을 그에게 말해야 한다.


"우리.. 한 달이 지났어요. 얘기 좀 나눠볼까요?"


내 말을 들은 그는 아주 적은 기대와 큰 두려움을 함께 품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우리의 이별은 공식적인 절차를 밟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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