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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워커 Sep 03. 2022

희망여행 또는 작별여행

4. 마치 처음 연애를 시작한 때처럼


한 달의 유예기간은 내 나름대로 기준이 있었다.

보통 이혼 신청을 하러 가면, 자녀가 없는 부부인 경우 한 달의 숙려기간을 무조건 갖게 한다.

국가가 정한 1개월.

그 정도면 부부의 마음이 바뀔 수도, 더 확고해질 수도 있는 기간이란 뜻이니까.

그 정도 기간이면 나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든 정해질 거라 생각했다.



반면 그는 그 한 달 사이에 어떻게든 달라진 모습,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생각인 듯했다.


모든 저녁을 나와 함께 보내려 했고, 회사 회식조차 참석하지 않고 집으로 왔다. 주말마다 안 가본 곳으로 데이트하러 가자고 했고,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했다.


원래 이러던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연애할 무렵과 신혼 초반에만 이런 모습이었고, 점차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편해지며 크게 노력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었다.


그랬던 그가 티 나게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걸 보니 참.. 뭐랄까, 한 편으로는 우습고 한 편으로는 애잔하고, 한 편으로는 화도 났다.


“이번 주말에 올림픽공원 갈까? 자기 거기 좋아하잖아.”


내가 연애 초반부터 같이 가고 싶다고 했던 공원이다. 늘 너무 멀다며 근처로 가자고 하거나 깊게 듣지 않고 그냥 넘어가곤 했었으면서, 6년이나 지나서 말하는 그를 보니,

‘못 하는 게 아니라 할 의지가 없었던 거구나.. 그동안 나에게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거구나.’


하지만 이제 와선 서운하지도 않았다. 그에게 아무 기대가 없으니 놀라울 만큼 내 감정은 평온했고, 그저 슬프고 체념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그러자고, 가자고 대답할 뿐이었다.



“다음 주말에는 가까운 곳으로 여행 갈까? 1박으로 가평 같은데 가면 어때요?”


우리 부부는 차가 없었다. 연애할 때부터 없었고, 어차피 둘 다 서울이 직장이고 걷는 것도 좋아해서 차 없이 잘 살아왔다.

하지만 유일하게 차가 아쉬울 때가 여행을 다닐 때였다. 물론 차 없이도 다닐 수는 있었지만, 전국 구석구석을 여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한계 때문에 우리는 국내 여행을 1년에 1번도 가지 않았었다. 제주도도 연애할 때 갔던 게 마지막이었을 정도니까. 그래서 그가 먼저 여행 얘기를 꺼낸 건 정말 뜬금없고 낯설었다.


가평의 글램핑장을 얘기하며 지도를 봤는데 ITX를 타고 간 뒤 걸어서 도착할 수 있는 위치였다. (솔직히 도보 30분 거리라서 일반적으로는 그 누구도 걸어가지 않을 거리다. 우리 부부는 30분 정도는 쉽게 걷는 편이라 참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아마 이렇게 잘 걷는 남자는 쉽게 만나기 힘들겠지.)


가평행 열차를 타고 가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이혼과 관련된 얘기는 그날 이후 서로 안 하고 있고, 회사 얘기나 사소한 친구 얘기 등 이것저것 말하며 걸어갔다.


바람피운 남편과 이렇게 여행을 온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안다. 누가 들으면 여기가 할리우드냐고 어이없어할 테지.


이 여행은 내가 그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이 한 달 사이에 가능하면 그가 하고 싶고, 가고 싶다고 하는 데는 다 같이 해주려고 했었다. 그게 어쨌든 나와 7년을 함께 한 사람과 이별하는 나만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는 이 여행을 내가 함께 해줘서 희망을 가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여행지에서 그는 내 사진을 열심히 먼저 찍어줬고, 둘이 셀카도 찍자며 먼저 폰을 들었다.

‘6년 간 한 번도 내가 먼저 부탁하지 않으면 사진 찍어주지 않더니.. 할 수 있었구나 당신.’

또 씁쓸한 웃음이 스며 나왔다.


그 여행에서 찍은 사진 속 내 얼굴은 모두 다시 들춰보고 싶은 즐거운 표정이 아니었다. 눈이 웃지 않는 슬픈 표정의 사진들. 그마저도 추억으로 남는 건지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글램핑장에서 바비큐를 구워 먹고, 보드게임을 한 다음 잠을 청했다. 잠이 살짝 들려고 하는데 그가 뒤에서 나를 안으며 속삭였다.

“날 버리지 마.. 날 버리지 마요..”

밤 새 주문처럼 외는 그의 목소리.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한 달의 유예기간은 곧 끝이 난다.


커플과 가족들로 가득했던 글램핑장. 그 안에서 행복하지 않은 건 우리 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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