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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워커 Jan 16. 2023

월남쌈을 준비하다 전남편이 생각났다

5.혼밥 덕분에 인스타그램이 하고 싶어졌다


월남쌈. 그 맛있고 건강한 음식 덕분에 일요일 하루를 온갖 생각을 하며 보낼 수 있었다.




J가 이사 간 동네는 맛집이 없는 곳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배달음식과 외식 빈도가 줄고 음식을 해 먹기 시작했다. 쓱배송과 로켓배송 덕분에 식재료를 준비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고, 4 도어 냉장고 덕분에 쟁여놓는 걱정도 없었다.

그녀는 결혼 전에는 부모님과 살아서 요리를 해본 적이 별로 없었으나, 신혼 초기에는 신혼요리에 대한 로망 덕분에 제일 간단한 파스타나 스테이크처럼 쉬운 요리는 종종 하게 되었다. 하지만 맞벌이를 하고 서로 퇴근시간이 맞지 않아서 평일엔 거의 요리를 안 하게 되니 조금 살아나던 요리 실력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이혼 후 혼자 살게 되며 다시 시작한 요리는 어쩌다 가끔 레스토랑 부럽지 않다 싶을 만큼 결과물이 그럴싸하게 나기도 했다. 혼밥 기록처럼 사진을 남겨볼까 싶어서 접시에 예쁘게 담고 사진 몇 장을 찍고 잘 먹겠습니다 하고 먹어본다.


‘음.. 이 레시피가 원래 이런 맛인가.’


J가 기대한 비주얼보다는 못한 맛이다. 맛없지는 않은데 엄청 맛있지도 않은. 하지만 다행히 사진에선  맛 따위 보이지 않으니 아무렴 어떤가 싶다. 못 먹을 정도의 맛은 아니니까 혼자 맛있게 먹어본다.




J의 혼밥 스승은 역시 고로 상(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극중 남자 주인공 이름)이다. 그녀는 고독한 미식가 전체 시리즈를 10번 정도 반복해서 봤을 정도로 애청자인데, 그분이 특히 J에게 도움이 되었던 시기는 지금보다도 오히려 결혼생활을 할 때였다.


J의 결혼 2년 차에 일어난 일이다. 그녀가 신혼집을 차렸던 곳은 그녀의 시부모님 명의인 집이었다. J부부가 신혼집을 장만하기 전에 머물렀었는데, 매 월 시부모님에게 돈을 내며 살았기에 떳떳해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언행을 종종 하셔서 J는 얼른 그 집에서 나가고 싶었다.


결혼 후 2년 정도 지났을 때 J부부가 이사 갈 집이 정해졌고 시부모님이 그 집으로 들어온다고 말하셨다. 그런데 그들이 이사 갈 집과 이사 시기가 애매하게 맞지 않는 바람에 시부모님과 한 집에 2주 정도 같이 살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거다. 생각만 해도 그 결과가 예측되는.. 이때 그런 짓을 하는 게 아니었다며 J는 두고두고 후회했었다.


시부모님과 같이 산 1일 차부터 내 아들이 설거지하는 건 못 본다며, J에게 하라고 말하는 시어머니를 보고 그녀도 그녀의 남편도 첫날부터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 둘 다 안 마시던 맥주를 마시며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고민했다.  J도, 남편도 잘 알고 있다. 어차피 시어머니가 바뀌시진 않는다는 걸. 그렇다고 지금 아들이 며느리 편을 강하게 들어봐야 더 파국으로 가게 될 거라는 걸. 결국 최대한 같이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자는 걸로 결론이 났다.

J는 평일 저녁에 같이 밥 먹는 걸 피하려고 같이 사는 2주 동안 매일 회사에서 야근하는척하고 밤 11시에 집에 들어가곤 했다. 주말에는 지방 출장을 간 척하고 친정집에 가있었다.


그러다 보니 저녁을 늘 그녀의 회사 근처에서 혼자 먹었는데, 그때 그녀가 즐겨본 방송이 고독한 미식가다. 그걸 틀어놓고 혼자 밥을 먹으며 속으로 “이타다키마스”하는 상황을 즐겼다. 일본식 돈카츠나 초밥을 먹는 날은 한층 더 몰입하기 좋았다. 고로 상은 그녀의 혼밥 메이트였다.


J는 혼밥을 할 때 이때의 기억이 종종 난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마음 편한 혼밥인가 하며 별 거 아닌데 행복하기도 하고, 왜 그때는 그런 미련한 짓을 했었을까 이제 와서 해봐야 의미 없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다.




J의 이번 주말 혼밥 요리는 월남쌈이다. 그녀가 월남쌈을 평소에 즐겨 먹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녀가 썩 좋아하지도 않는 월남쌈을 왜 생각했느냐 하면, 인스타그램 때문이다. 몇 안 되는 친구가 올린 게시글이었는데 남편과 초간단 식사로 자주 해 먹는다며, 처음 재료 손질이 번거롭긴 하지만 그것만 해놓으면 그 후엔 냉장고에서 꺼내서 메인 속재료인 새우나 고기만 준비해서 라이스페이퍼에 돌돌 말아먹기만 하면 돼서 너무 간편하다는 거다. 매주 해먹을 정도라고.


‘오, 그 정도란 말이야? 재료는 어디 보자.. 양파, 당근, 깻잎, 파프리카, 파인애플? 이 정도 재료는 얼마든지 준비할 수 있지. 한 번 해볼까.’


J는 마침 이번 일요일에 다른 할 일도 없었기에 야심 차게 재료를 모두 꺼내놓고 손질을 시작했다. 그때가 오후 1시쯤이었다.


시작은 당근. 당근 1개를 썰면 그렇게 많이 나오는 줄 J는 처음 알았다. 심지어 그녀는 당근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양파는 손질은 쉬웠지만 그대로 사용하면 너무 매울 것 같아서 물에 담가 매운 기를 빼주었다.

깻잎과 양배추, 파인애플 손질까지 순서대로 하다 보니, 그녀는 뭔가 잘못되고 있음이 느껴진다. 이미 시간이 1시간을 넘기고 있다. 재료 손질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일이었던가, 월남쌈을 매 주 해 먹는다는 그녀의 친구는 프로 주부여서 금방 끝내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J는 재료 손질에 이미 지쳐버려서 그만하고 짜파게티나 끓여 먹고 싶었으나 이미 그만두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싶었다. 재료도 양 조절을 못해서 너무 많이 샀고, 월남쌈 이외의 방법으로 이 채소를 처리할 방법 따위 떠오르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가보자!’




물기가 남은 상태로 밀폐용기에 보관하면 오래 신선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것 같아서 물에 담갔던 양파와 양배추는 모두 물기를 털어내고 키친타월로 한 번 더 물기를 뺐다. 당근, 깻잎, 파인애플 모두 각각의 용기에 가지런하게 담고 뜨거운 물과 라이스페이퍼, 찍어먹을 소스까지 준비해서 월남쌈 먹을 준비를 마쳤다.


이제 먹어야지 하고 시계를 보니 시간은 이미 오후 4시쯤. J는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현타가 왔다.

식탁에 재료를 모두 올려놓고 보니, 더더욱 뭔가 잘못되었음이 느껴졌다. 많아도 너무 많다.


“크크크. 이게 뭐람. 미련하다 미련해.”


그리고 한편으론 이 상황이 너무 우스웠다. 이 행동이 미련스러운 짓이라는 걸 왜 시작하기 전에 눈치채지 못했을까 싶었다. 아니, 최소한 재료들을 사놓은 다음에도 그 양을 보고 짐작하지 못했을까. 하다가 중간에 아니다 싶었으면 멈춰도 됐을 텐데.


그리고 그녀는 문득 아쉬웠다. 혼자 사니까 이런 미련하고 웃긴 짓을 했는데도 같이 웃어주거나 공감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게. 잠시 그녀의 전남편이 떠올랐지만 이내 생각을 지웠다.


‘그래, 차라리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해볼까? 이런 웃긴 짓을 올려서 몇 안 되는 친구들한테 말이라도 해보게.’


하지만 금방 그 생각도 접었다. 그녀의 성격 상 SNS는 맞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결국 혼자 키득거리고 사진 한 장을 찍어뒀다.


혼자 월남쌈을 싸 먹으며 J의 주말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음식은 역시 남이 해준 걸 먹는 게 최고라는 뻔한 진리를 3시간의 노동 끝에 깨달은, 어쨌든 쓸모는 없지만 부지런하게 보낸 주말이었다.


다 먹는 데 2주가 걸렸다. 그 후 반년간 월남쌈을 먹지 않았다.


*<조니워커의 우아하고 찌질한 혼삶>은 주 1~2회 연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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