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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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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 Oct 28. 2024

달이 밝은 밤에

동네 사람들은 모두 그녀에 대해 수군거렸다. 갑자기 나타난 그녀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었다. 화려한 옷차림으로 다니는 그녀를 동네 여인들은 화류계 출신이거나 지금도 술집 같은 데를 다닐 것이라 말했다. 그렇다고 그녀를 그런 업소에서 봤다는 사람은 없다. 마을 여인들의 남편이 그런 곳에 다닌다는 사실을 말할 리 만무했고 여인들이 그런 곳을 다닐 일은 없었기에, 사람들은 그녀의 출신을 의심할 뿐 확증을 잡지는 못했다. 그녀가 지내고 있는 원룸의 집주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꼬박꼬박 월세를 내고, 가끔 문틈으로 보이는 그녀의 집에도 별 문제가 없어 보였기에, 집주인은 출신이 의심스러운 여자에게 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었다. 애인이 있는지, 나이가 몇인지, 가족은 있는지, 왜 이런 작은 마을로 오게 되었는지, 누구도 아는 바가 없었다. 기생오라비 같다는 말이 남자에게는 ‘잘생겼다’는 말이듯, 술집에나 나갈 것 같다는 말도 사실은 질투가 담긴 칭찬이었다. 그녀가 동네를 지나갈 때면 젊은 남자들은 물론, 중년의 남자들도 고개를 돌리거나, 마누라에게 안 들키게 힐끗거리며 쳐다본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승혜. 민승혜요.”


나는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에 그녀의 이름을 입력했다. 그녀는 핸드폰 번호도 불러주었다. 그녀가 두 손으로 머리를 정돈하자, 웨이브가 들어간 검은색 머리카락이 등 뒤로 흘러내리며 잠시 스프링처럼 탄력 있게 흔들렸다. 귀에는 작은 큐빅이 들어간 귀걸이가 달려 있었다. 그녀는 어깨가 드러나는 짧은 검은 원피스 위에 소매가 긴 검정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요즘 여자들이 그러하듯, 그녀도 대화하는 동안 계속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무심코 본 그녀의 두 손에는 아무 반지도 끼워져 있지 않았다.


여자는 카 시트를 전부 교체해 달라고 했다. H사의 신형 세단이었는데 아주 고급차는 아니었다. 젊은 여자가 타기에는 적절한 모델로, 그녀의 화려한 분위기와 소문에 비하면 소박한 차라고 생각했다. 국산차보다는 외제차가 더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녀는 카 시트 말고도 차 안의 매트, 트렁크 매트까지 모두 교체하겠다고 했다. 신형 모델이므로 시트나 매트가 해진 곳이 없었는데, 전부 교체를 한다고 하니 나는 의아해서 “비용이 좀 들 텐데요?”라고 물어봤다. 그녀는 단호한 표정으로 전부 교체하겠다고 말했다.


“세차까지 다 할 수 있을까요?”


“네, 그러믄요.”


“교체하는 김에 내부까지 싹 청소해 주세요.”


어이없는 생각이기는 하지만, 나는 왠지 ‘이것은 기회다’라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든 그녀의 환심을 사고 싶었다.


“아이고, 하는 김에 싹 다, 아주 깨끗하게 해 드릴게요.”


내가 최대한 부드럽고 친절한 미소로 그녀를 보며 웃어 보였으나, 그녀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그저 “그럼 잘 부탁드려요.”라는 말을 남기고 가게를 떠났다.


나는 가게를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여자는 발목 위로 조금 올라오는 부츠의 굽을 울리며 걸어갔고, 나는 날씬하게 뻗은 그녀의 다리를 바라보며 여자에 대한 다양한 풍문들을 떠올렸다.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걸 보면 확실히 일반적인 직장인은 아닌 것 같아.” “주로 저녁에 집에서 나간다는데, 술집에 다니거나 돈 많은 남자 하나 꿰차고 사는 여자 아닐까?”


“연예인 아냐? 아니면 배우 지망생 그런 거라든지.”


‘옛날 통닭’을 팔며 세 자매를 키우고 있는 박씨 아저씨는 그런 소리를 했다가 동네 부녀자들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녀가 가게를 떠난 후 나는 책상에 놓인 작은 거울로 얼굴을 들여다봤다. 거무튀튀한 얼굴에, 아주 작지는 않지만 째진 눈. 큰 코와 두꺼운 입술. 대학에 다닐 때는 ‘데니스 로드맨’이라고 불렸다. NBA 농구팀 시카고 불스의 전성기를 장식한 악동 선수. 눈이 별로 안 닮기는 했지만 친구들은 나를 한국인이 아니라며, 대놓고 아프리카로 돌아가라는 뜻으로 ‘고 홈’이라 외치고는 했다. 물론 인종차별 같은 것은 아니었다. 난 한국인이니 말이다. 그저 친구들끼리의 놀림이었다.


배가 나오지는 않았으나 옆구리에 점점 살이 붙고 있었다. 마흔다섯의 나이. 다른 친구들은 이미 임산부처럼 배가 나오는 녀석들도 있었으나 그래도 나는 체형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다. 키도 183cm이니 어디 가면 부럽다는 말도 듣는 편이었고.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우락부락한 운동선수 같은 인상이었고, 체력도 예전만 못해서 가끔은 이제 장가나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녀 같은 여자라니. 이십 대라면 무엇이든 꿈을 꿨겠지만, 이젠 정말 꿈같은 이야기다.


얼마나 멋진 사람일까? 나는 문득 그녀의 옆에 있으면 어울릴 법한 남자를 떠올려봤으나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나처럼 기름에 절어있는 남자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얼굴도 좀 더 한국인다운 모습을 하고 있겠지.


계산할 때 왕창 할인을 해줄까? 나는 그녀에게 환심을 살 101가지 방법들을 떠올려 보았으나 별로 마땅한 게 없었다. 머리를 흔들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차를 살펴봤다.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겉이나 안이나 모두 깨끗했고 흠이 난 곳도 없었다. 차 안에서는 시원한 방향제 냄새가 났고 희미하지만 그녀의 향수 냄새인 듯한 향기도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 그녀가 타고 온 차였으므로. 나는 괜히 운전석에 올라타 보았다. 차 운전석 시트가 앞으로 당겨져 있어 내 몸에는 조금 갑갑했다. 차 안은 깔끔했고 뒷좌석에도 놓고 간 물건은 없었다. 차량 안 매트에도 떨어진 물건은 없었다. 혹시나 보조석 글로브박스에 귀중품 같은 것을 넣어두었을까 싶어 열어보았는데(그랬다면 미리 연락을 해두어야 하기 때문에), 안에는 메모지와 볼펜, 그리고 청색, 은색, 노란색의 박스 테이프가 한 개씩 들어 있었다. 다른 귀중품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것들을 대충 살펴보고 나는 글로브박스를 닫았다.


사실 먼저 예약된 차가 한 대 있었지만 나는 그녀의 차를 먼저 작업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날짜를 더 뒤로 잡았겠지만, 그녀에게는 금방 된다고 말을 해뒀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심(私心)이지만, 직원도 나 혼자이고 사장도 나 혼자인 카센터. 모든 것은 내 마음대로다. 말도 안 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뭐라도 친절을 베풀고 싶었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이 동네 총각들은 죄다 그녀를 눈여겨보고 있다.


민승혜. 서른둘. 내가 알아낸 정보는 그것이 전부다. 나중에 연락을 위해 남겨놓은 전화번호. 그리고 일부만 입력된 그녀의 집주소(어차피 어디에 살고 있는지는 알고 있다). 나는 차를 살펴보며,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그녀에 대해 알아낼 수 있을까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주말에는 뭐 하고 지내세요?’ ‘평소에 쉴 때는 뭘 하세요?’ ‘커피 좋아하세요? 어떤 커피 좋아하세요?’ 이런 시답지 않은 질문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그녀의 답들을 시뮬레이션하며, 나는 그녀의 체취가 남아있는 차량 안을 살펴봤다.




설렁탕에 깍두기 국물을 몇 숟갈 넣고 밥을 말아 크게 한 숟갈 떠 넣었다. 텔레비전은 종합뉴스 채널에 맞춰져 있었는데, 을씨년스러운 사건이 나오고 있었다. 이 동네에서 차를 타고 30분만 가면 있는 산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뉴스였다.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는데, 기자는 등산객이 길을 잘못 들어 수풀 사이를 헤치고 가다가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전했다.


“야, 요즘 이 동네 왜 이러나 모르겠네? 며칠 전에도 저 아래 강에서 시신이 발견됐다잖아.”


내 옆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던 아저씨가 큰 목소리로 함께 밥을 먹는 동료에게 말했다.


5일 전인가 나도 그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밥을 먹고 심심해서 컴퓨터로 이것저것 보고 있을 때, 자동차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었다. 이곳 지자체에서 공을 들여 관광 명소로 홍보하고 있는 하천이었는데 그곳에서 토막 난 시신의 일부가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도 서울에 있다가 카센터를 차리기 위해 이 동네로 왔을 때, 기분 전환이나 하려고 다녀온 적이 있는 곳이다. 강 양편으로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가 잘 갖춰진 곳이었다. 하지만 밤에는 인적이 드물어 한 번 갔다 온 후에는 다시 찾지 않았다. 차를 타고 종종 그곳을 지나갈 때도 있었지만 군청의 홍보에도 불구하고 활기찬 분위기의 장소는 아니었다.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군청은 울상을 지었고, 동네 사람들도 그곳을 더욱 꺼리게 되었다.


“며칠 전 오령 뱃길에서 발견된 시신과 마찬가지로, 이번에 미양산에서 발견된 시신도 몸의 일부라고 합니다. 아직 기온이 높지 않은 4월이라 시신의 부패 상태는 높지 않으나, 산짐승들이 물어뜯은 흔적이 있어서 신원 확인이 더욱 어렵다고 합니다. 국과수의 검사 결과, 두 시신은 동일인의 것으로 보이며…….”


여기자는 소식을 전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기자의 말에 따르면 뱃길에서 발견된 시신은 몸통이고, 이번에 발견된 것은 허리 아래의 하반신이라고 했다. 머리와 팔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뉴스를 보며 숟가락으로 설렁탕 고기와 쌀밥을 함께 떠 그 위에 김치를 올렸다. 그리고 한 번에 그것들을 입에 집어넣고 우걱우걱 씹었다. 죽은 사람은 남자라고 했는데 신원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에휴, 밥맛 다 떨어졌네. 머리가 없는데 어떻게 누구인지 알까? 팔이 없으니 지문도 없겠네?”


옆자리 아저씨는 여전히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흘깃 보니 그의 국그릇은 이미 비어 있었다.


“디엔에 그런 걸로 알 수 있지 않아? ‘그것이 알고 싶다’ 보니까 이빨 이런 걸로도 찾아진다고 하던데?”


아저씨의 맞은편에서 함께 밥을 먹던 다른 아저씨가 아는 척을 했다. 하지만 그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 분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특 설렁탕 한 그릇을 깔끔하게 비우고 카센터로 돌아왔다. 일단 간단한 트렁크 매트 교체 작업부터 하기 시작했다. 원래 있던 매트를 뜯어내 카센터 마당에 꺼내놓았는데, 끄집어내 놓고 보니 안쪽에 먼지나 흙, 모래 같은 것이 꽤 있었다. 그래도 여자가 워낙 깔끔한 성격인지 매트는 깨끗한 편이었다. 트렁크라는 게 쓸 때는 좁아 보이지만 매트를 꺼내놓고 보면 꽤 크다. 나는 그것을 한쪽으로 던져놓으려고 반쯤 접어들고 타이어가 쌓여있는 구석으로 갔다. 그곳에 매트를 던져놓았는데 뭔가가 위로 툭 튀어 오르며 땅에 떨어졌다. 아주 작은 물건이었다. 나는 작은 돌조각이 매트에서 튀어나온 줄 알았다. “뭐야?”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가까이 가보니, 그것은 손톱이었다. 잘린 것이 아니라 온전한 손톱. 어느 손가락의 손톱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엄지나 새끼손가락은 아니었다. 나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손톱 끝에 살점이 조금 붙어 있었다.


도대체 그 손톱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누구의 손에 붙어있던 것일까? 왜 트렁크 매트 안에 붙어있었던 것일까? 그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혼란할 때 내 시선은 내가 던져놓은 매트로 향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는데 그곳에는 얼룩 같은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500원짜리 동전만 한 얼룩. 그것은 매트를 완전히 꺼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을, 트렁크 안쪽 가장자리에 묻어있는 얼룩이었다.




루미놀. 탄산나트륨. 과산화수소. 증류수.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 루미놀 용액 제조법을 찾았다. 무슨 CSI가 된 것도 아닌데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것이 ‘설마’하는 두려움일지, 아니면 어릴 적 열심히 보았던 추리물 류의 흥분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승혜라는 여인은 이미 차를 찾아간 뒤였다. 20%를 할인해 준다는 내 말에도 그녀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녀를 만난 후, 나는 그녀의 웃는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어떻게 하면 그녀를 웃게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생각도 잠시 했다. 20%면 정말 많이 해준 것인데, 그녀는 그 정도로는 일말의 기쁨도 느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분무기 안에 루미놀 용액을 담아 그것을 카센터 근처의 안집 마당에 펼쳐둔 카 시트 가죽과 매트 위에 뿌렸다. 시트와 앞뒤 좌석에 있던 매트에서는 아무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트렁크 매트에 용액을 분무하자, 가장자리에 있던 얼룩이 파랗게 변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얼룩 말고도 더 작은 얼룩도 몇 개 나타났다. 불빛이 적은 마당 구석에서 보니 형광물질을 뿌려놓은 듯 은은하게 빛이 났다.


‘과산화수소 분해를 촉매할 수 있는 다른 성분이 있는 경우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으니 주의 바람.’


내가 읽은 문헌에는 그러한 경고도 함께 적혀 있었다. 그래, 단정할 수는 없다. 차 트렁크에 쇠고기 같은 것을 실었다가 묻은 것일 수도 있잖아? 하지만 손톱은? 살점이 붙어있던 그 손톱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두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있던 그녀의 열손가락 손톱은 모두 멀쩡했다. 분홍색 손톱에 앙증맞게 박힌 쥬얼이 내 기억에 선명했다. 혹시 전에 어떤 사고로 그녀의 손톱이 떨어져 나와 트렁크에 들어간 것은 아닐까? 그러기에는 손톱에 달린 살점이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았다.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 봤으나 무엇이 정답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집 마루에서 새어 나오는 전등 불빛이 마당의 어둠을 일부 밀어내고 있었고, 내 그림자가 달빛을 받아 일렁이고 있었다. 이것은 증거물일까? 나는 생각해 보았으나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럴 때 발휘해야 하는 것은 시민정신일까? 역시 정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 저녁을 먹지 않아 허기가 지는 저녁이었다. 나는 커다란 마대 자루를 몇 개 들고 와서 가죽과 매트(그리고 그 문제의 손톱까지)를 모조리 그 안에 담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들고 집 밖으로 나갔다. 내 집 옆으로는 공터가 하나 있는데 오래전 주유소가 사라진 후 지금까지 공터로 남아있는 곳이다. 기둥 몇 개에 여전히 X-오일이라고 적혀 있으나 깨진 시멘트 바닥 사이로 풀이 제법 높이 자란 곳이었다. 주유소 앞으로는 큰길이 있었으나, 주유소 뒤편의 공터에는 어둠만이 가득했다.


그곳에는 내가 못 쓰는 물건을 태우곤 하는 커다란 드럼통이 두 개 있다. 갈색으로 녹슨 드럼통 안에 나는 가죽과 매트를 집어넣었다. 가죽은 미리 큰 가위로 잘라두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부피가 크지 않았다. 기름을 넣으면 불길이 너무 커질 것 같아서 나는 안에 나무막대기와 신문지 따위를 집어넣어 같이 태웠다.


조명이 거의 없는 곳, 핸드폰 백라이트로 조명을 만들던 나는 불길이 오르기 시작하자 라이트를 끄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상현달이 떠 있었다. 그 아래로 불길이 붙은 드럼통 안에서 가죽과 매트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으나 긴 팔 외투를 입지 않으면 살짝 추운 날씨였다. 나는 문득 그녀가 사는 집 쪽을 바라봤다. 내 집에서 두세 블록 정도 가면 있는 다세대 주택 빌라의 삼층. 나는 그녀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워낙 작은 동네라 귀동냥만으로도 그녀의 거처를 나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어디에 있는 편의점을 주로 찾는지도. 그 편의점 이십 대 초반 아르바이트생도 역시 그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승냥이었다. 내가 지나가는 것도 모르고 그가 누군가와 통화하며 “아, 진짜 존나 이뻐, 진짜. 전번 달라고 한번 말해볼까?”라며 호들갑을 떨던 모습이 기억난다.


집 창문은 열려 있었고 그 뒤로 사람의 그림자 같은 것이 어른거렸다.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어두워서 어른거리는 것이 사람인지 아니면 커튼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곳에 그녀가 있겠구나, 그 공간 안에 그녀의 삶이 담겨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그 집의 창문을 바라봤다.


드럼통 안의 증거물들은 은은한 불길에 잘 타들어갔고, 나는 오늘의 화학실험과 그 정체불명의 손톱까지도 깨끗하게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아마도 트렁크에 고기를 담은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그 손톱 역시 그럴만한 불행한 사고가 있었을 것이라고. 그녀의 지인이나 다른 누군가가 뭔가를 들다가 손톱이 떨어져 나왔을 것이라고. 나는 여러 가지 상황을 상상하며, 되는대로 ‘사건’을 꿰어 맞췄다.




사실 커피 맛은 잘 모른다. 동네에 여럿 있는 저가 커피집에서 한 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먹기는 하지만, 맛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녀가 사 온 커피 역시 특별히 맛이 다르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평소에는 절대 가지 않는 스타벅스. 여자는 치즈와 불고기가 들어간 샌드위치 하나와 아메리카노 두 잔을 들고 가게로 찾아왔다. 의자에 기대 몸을 깊게 파묻고 응접 테이블에 발을 올린 채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나는 너무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다.


그녀는 역시 웃지 않았다. 여자가 이 동네에 나타난 것이 넉 달이 넘었는데, 오며 가며 그녀를 보는 동안 한 번도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집 안에서는 웃을까? 그렇다고 화를 내거나 우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 그녀의 표정은 늘 비슷했다. 화려한 용모와 달리 그녀는 한 가지 표정만 지을 수 있는 인형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너무 아름다워서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인형.


머리를 뒤로 묶고 흰색 면티셔츠에 넉넉한 청바지를 입은 그녀는 평소와 달리 편안한 차림이었다. 평소 진한 화장만 보다가 화장을 거의 하지 않은 듯한 얼굴을 보니 새롭게 느껴졌다(텔레비전에서 보니 그럴 때도 여자들은 이미 상당한 메이크업을 한 것이라 했다. 나는 호락호락 속지 않는다).


“저번에 많이 신경 써주시고 가격도 많이 깎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그녀는 그런 말을 하며 내게 커피를 건넸다. 역시 그때도 웃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가 커피만 주고 갈 줄 알았는데, 응접 테이블 옆으로 놓인 소파에 가서 앉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혹시’라는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내 앞에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은 바람에 날리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그저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점심은 먹었냐 물어볼까? 취미는 뭐냐고? 좋아하는 사람은 있느냐고?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그녀가 물었다.


“쓰레기 같은 걸 자주 태우시나 봐요?”


“네?”


“저번에 공터에서 뭔가를 태우고 계시던데…….”


“아! 그거요. 카센터 하다 보면 이래저래 폐기물이 나오는 게 있어서, 그럴 때면 공터에 가서 태워버리고는 해요.”


“아…….”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저번에 시트랑 매트 갈 때도 쓰레기가 많이 나왔겠네요?”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아……. 네. 그런 것들도 나오는 당일에 다 태워서 없애요. 뭐 그러면 안 되는 거긴 한데, 모아서 버리는 것도 힘들고 그러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그때였다. 그녀의 입가에 아주 살짝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손에 든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컵 안의 얼음과 음료가 찰랑거리며 소리를 냈다.


“여기서 혼자 일하시는 거예요?”


그녀의 질문에 나는 그렇다고 답했고, 그녀는 “외로우시겠다”라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 붙였다.


나도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뭘 물어봐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손톱? 당연히 그것은 물어봐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뭐라도 그녀에 대해서, 단 한 가지라도 더 알고 싶었는데,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혹시……. 오늘 저녁에, 같이 술 한 잔 안 하실래요?”


뜻하지 않은 그녀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네에?”라고 반문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았고, 어쩐지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그녀가 가진 아름다움의 근원은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했다. 마치 크리스털로 조각된 인형처럼 그녀는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이 동네 와서 혼자만 지내다 보니 조금 외롭네요. 아저……. 아니…….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복겸. 최복겸입니다.”


“아, 네. 복겸씨……. 오빠랑 같이 술 한잔 하면 어떨까 싶어서…….”


그녀의 말에, 나는 내 입을 나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인간처럼 “아이고. 네. 네. 이웃사촌인데 가끔은 술 한잔 할 수도 있죠.”라고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고 있었다.


오늘은 일곱 시에 문 닫는다는 말을 듣고 그녀는 가게를 떠났다. 기름 냄새만 가득한 가게 안에 그녀는 향긋한 향기를 남기고 갔다. 사십 평생, 아니 정확하게는 사십오 년 동안 이런 일은 없었다. 대학 때 한두 번 짧게, 그리고 서울에서 직장에 다닐 때 2년 조금 안 되게 연애를 해본 이후, 나는 혼자였다. 연애는커녕 여자 그림자도 내 주변에 비치지 않았다. 이러다 평생 홀로 나이 먹고 늙어, 홀로 죽겠구나 그런 생각만 들었다. 돈 벌면 뭐 하냐, 쓸 데도 없는데? 그럴수록 외로움은 사무쳤으나 이런 지방에서 마음에 맞는 여자를 만날 길은 없었다. 청년이래 봐야 사오십 대인 이 동네 총각들은 멀리 동남아까지 가서 색시를 구해오기도 했다. 씨는 남기고 싶었으니까. 나도 종종 그런 생각을 하고는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심장이 벌렁거려 멈추지를 않았다.


그러다 문득 내 머릿속에는 ‘손톱’이란 성가신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것만 없어도, 그것만 보지 않았어도, 이 모든 일들이 그저 행복일 따름인데. 하지만 그것이 없었다면, 오늘 내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까? 생각에 거기에 미치자 그녀는 결국 내게 묻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하긴 나 같은 인간을 좋아할 여자는 아닐 테니까.




만월(滿月)이 그녀의 머리 위에 떠있고 나는 그녀의 미소를 바라본다. 그녀도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나는 문득 깨닫는다. 그때 그녀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울고 있었을까? 아니면 웃고 있었을까? 그도 아니면 평소의 그 무표정한 얼굴이었을까? 이 작은 손으로, 이 가녀린 손목으로, 도대체 그 질긴 몸을 어떻게 끊어낸 것일까? 죽은 사람은 누구일까? 그녀는 왜 그를 죽인 것일까?


그녀와 함께 어두운 골목을 걷고 있을 때 나의 머릿속에는 많은 질문들이 떠올랐다. 여자는 내게 팔짱을 끼고 걸었다. 그녀는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았으나, 약간 취기가 올라 흥이 나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동네에 있는 허름한 실내 포차에서 골뱅이 소면과 두부김치, 해물알탕을 시켜 소주와 함께 먹었다. 나는 소주를 한 병 반, 그녀는 반 병 정도 마신 것 같다. 두 시간 정도 술집에 있는 동안 그녀는 내게 딱히 특별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궁금해 한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녀는 네일아트샵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가게는 자신과 친구가 함께 차린 것으로 마을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에 있고, 최근에는 일이 있어서 잠시 문을 닫아두었으나, 이제 다시 가게를 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녀가 자신의 가게 이야기를 할 때 나는 그녀의 손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번에는 분홍색이었으나 지금은 아무 색깔도, 어떤 장식도 없었다. 그저 양 검지손가락 위에 언뜻 보면 모를 정도로 작은 큐빅이 하나씩 붙어 있을 뿐이었다. 역시나 손톱은 열 손가락 모두 온전하게 붙어 있었다.


집에서 쉴 때는 주로 영화를 보고, 가끔 소설책도 읽는다고 했다.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고 싶지만 알레르기가 있어 키우지 못하고, 유튜브로 반려동물 영상을 찾아보는 것이 가장 즐기는 힐링 컨텐츠. 의외로 그녀는 사교적이었다. 그녀 말대로 네일샵을 운영하고 있어서 그럴까? 그녀는 내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지, 쉴 때는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았고, 나는 조금 부끄러워하며 질문들에 대답했다. “그냥, TV 채널 돌리다가 주말을 다 보내곤 하죠.” “가끔은 게임도 하는데 나이 먹으니 그것도 잘 안 하게 되네요.” “전 그냥, 여성스러운 스타일의 여성분을 좋아합니다.”


내가 봐도 그다지 재미있지 않은 말을 해도 그녀는 잘 웃어주었다. 그것은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원래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잘 웃는 사람이었던 것일까?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빌라의 현관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돌아서며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반듯한 이마가 달빛에 밝게 드러났고, 그 순간 그녀는 평소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말을 걸었다.


“혹시……. 카 시트 작업하실 때, 뭔가 이상한 거 보지 않았어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상한 거요? 글쎄요. 딱히……. 아무것도 없었어요. 왜요?”


내 대답에 그녀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요. 차 안에서 이상한 게 나오면 창피하잖아요. 내가 모르는 뭔가 있는 게 아니었을까, 혹시 남이 그런 걸 본 건 아니었을까, 그런 걱정이 들어서요.”


나는 다시 한번 차 안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내가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 할 때 승혜가 나를 불러 세우며 물었다.


“오빠. 집에 들어가서 한 잔 더 안 하실래요?”


발걸음을 떼려다 그녀의 질문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그녀는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뒤쪽의 현관문을 가리키며, 나를 보고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문득 궁금했다. 그녀의 방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곳은 어떤 모습일까? 그녀의 은밀한 사생활이 담겨 있는 곳, 소문만 무성할 뿐 이 동네 그 누구도 실물을 본 적이 없다는 그곳. 그곳에 가면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안에는 내가 모르는 어떤 어둠과 공포가 자리 잡고 있을까?


달이 밝은 밤이었다. 구미호는 이런 날 남자의 간을 파먹지 않을까. 나는 넋이 나간 듯 그녀의 손에 이끌려 빌라의 현관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구두 소리가 계단을 또각또각 울렸고, 고동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그녀의 공간 안에 무엇이 있을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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