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게도 가게에는 신문 가판대가 있었다. 아직도 신문을 인쇄하는 곳이 있단 말인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회색의 신문을 하나 집어 들었다. 지역에서 발행하는 신문인 듯했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내 주의를 끄는 소식이 하나도 없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도 이 지역 사람들은 여전히 신문의 일기예보를 보고 생활을 계획하는지, 신문 한쪽에는 일주일 간의 일기예보가 있었다. 내가 지닌 태블릿으로 한 달간의 예보를 확인해 보니, 신문에 있는 예보는 엉터리였다. 이틀 후에 비가 오는데, 신문에는 일주일 내내 맑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가게에 앉아 주인이 내준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지켜보고 있으니, 들어오는 사람마다 신문을 들고나갔다. 이 고장 사람들은 틀린 일기예보도 즐겁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일까?
가게에는 창가 쪽으로 폭이 좁고 긴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어서, 나는 창가에 앉아 컴퓨터를 꺼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이 글이다. 나는 브레인 인터페이스를 좋아하지 않아서 지금처럼 직접 손가락으로 타이핑하는 것을 즐긴다. 고풍스러운 취미이지만, 나는 손가락 끝에 자판이 닿는 느낌이 좋다. 마치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 같다. 뇌의 신호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실상 내가 하는 이 행위도 뇌의 신호에서 비롯되는 것이라지만, 손가락 끝의 감촉을 느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닉에 비하면 나는 좋은 작가는 아니다. 그러니 내가 독자 여러분께, 내가 본 것들, 내가 느낀 감정, 내가 떠올린 생각들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이미 이전 페이지에서 독자들이 실망한 소리가 들려온다. 평생 보고서나 쓰며 살아온 인간이 하루아침에 훌륭한 소설가나 에세이시스트가 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독자 여러분은 부디 인내심과 관용을 가지고 이 책의 마지막 챕터를 읽어주기 바란다.
그들이 이 마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는 데만 나는 10년을 썼다. 그렇다. 10년 동안 닉의 원고는 나의 홈 네트워크 안에 잠들어 있었다. 그들이 그날 이후 어떤 경로를 통해 이 마을에 도달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미국 중부의 한적한 시골 마을. 가끔 소들이 도로를 지나가 차를 멈춰야 할 때도 있다. 이상기후가 예전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때때로 폭풍이나 홍수, 가뭄으로 이곳 고장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다. 그래도 이곳에 와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보니, 이곳 사람들은 아주 억센 힘줄을 가진 사람들이 분명했다. 그들도 이곳 사람들과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을까?
마을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농장. 그곳에 탱크라는 남자가 살고 있다. 본명은 제임스 리. 하지만 그는 그 이름을 쓰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 말로는 부인만 그 이름으로 남자를 부른다고 한다. 모두들 그를 탱크라고 부른다. 그의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누군가는 마흔을 넘었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쉰을 넘었다고 한다. 우스운 일인데, 내가 아는 바로 그의 나이는 17살 정도가 맞을 것이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삼십 대 중반에서 오십 대 초까지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는 약간 노안인 편이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다.
농장에 차를 타고 들어서니, 한 청년이 말을 타고 다가와서는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다. 농촌의 억센 악센트가 담긴 영어였다. 동양인으로 보이는 청년은 탱크의 아들인 찰스였다. 검은 머리카락을 꽁지로 묶고 있는 청년은 말을 아주 능숙하게 탔다. 농장일을 수시로 하는지 태양에 검게 그을린 피부가 건강해 보였다.
찰스는 차에서 내린 나를 집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는 말에서 내려 갈색의 말을 끌고 가며 내 발걸음에 보조를 맞춰주었다. 집을 찾기 전 나는 그들에게 미리 연락을 한 터라, 내 이름을 듣고 난 후 그는 경계심을 풀고 나를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탱크의 저택이 있었다. 그가 직접 지은 것일까? 소박했지만 꽤 넓은 집이었다. 집 앞에는 나무대를 세워 줄을 연결해 놓은 건조대가 있었는데, 여자들이 그곳에 빨래를 널고 있었다. 서른 즈음되어 보이는 여자 셋과 찰스 정도 나이의 여인이 한 명. 그렇게 넷이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빨래를 널고 있었다. 빨래가 무슨 재미있는 놀이라도 되는 것처럼.
집 현관문의 낮은 계단에는 아이가 하나 앉아 있었다. 머리를 땋은 걸로 봐서는 여자아이 같았는데 세 살이나 네 살 정도로 보였다. 아이는 계단에 앉아 천으로 만든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때 나를 본 여인들이 치마를 털며 내게로 걸어왔다. 그중 한 여인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유난히 날씬하고 단아한 느낌의 여인이었다.
“안녕하세요. 전 레베카라고 해요. 제임스의 부인입니다.”
가련한 인상과 달리 쾌활한 목소리로 그녀는 내게 인사를 건넸다.
“남편은 지금 목장에 가 있어요. 젖소 하나가 오늘 새끼를 낳아서……. 아마 조금 있으면 돌아올 거예요.”
레베카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그 순간 닉이 썼던 소설 속 하연이 그녀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레베카의 옆에 있던 다른 여인이 말했다.
“집으로 들어가서 기다리시죠? 식사는 하고 오셨나요?”
그녀는 린이었다. 린은 옆에 있던 키가 큰 여인을 보며 말했다.
“클라라. 냉장고에 고기 있어? 아니면 사 와야 하나?”
“조금밖에 없어서 사 와야 해요. 제가 가게에 갔다 올까요?”
활달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클라라의 말을 자르며 내가 끼어들었다.
“아, 간단하게 먹고 왔습니다. 전 그냥 커피 한 잔만 부탁해도 될까요?”
내 말에 여인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젊은 소녀가 집안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커피는 내가 내릴게.”
린과 료마 부부의 딸인 마리는 말괄량이 같은 걸음으로 재빨리 집으로 사라졌다. 내 옆에 서 있던 찰스도 마리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그들은 내가 닉의 소식을 가져온다는 사실에 많이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금방 오겠다던 닉이 10년 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깨끗이 증발해 버린 상황이었으니. 많은 역경을 함께 헤쳐온 그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이 가족들에게는 얼마나 큰 상실감이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집 안은 소박했으나 고풍스러운 가구들이 적절히 들어서 있어 아늑한 느낌이었다. 가만히 거실의 소파에 앉아 있자 쾌활한 소녀 마리가 그녀의 갈색 머리를 찰랑거리며 내 앞에 커피를 내려놓았다.
“이건 각설탕이요.”
그녀는 종이로 포장된 각설탕을 커피잔 옆에 내려놓았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향긋한 커피 향이 입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소파 앞 테이블에는 종이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는 복잡한 공식들이 적혀 있었다. 누군가 펜으로 직접 쓴 것이었는데 내 시선을 느꼈는지 맞은편에 앉아있던 마리가 말했다.
“그건 찰스가 끄적거린 거예요. 시내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있거든요. 보기엔 멍청해 보여도 공부를 꽤 잘해요.”
마리가 히죽 웃자 거실을 서성거리던 찰스는 볼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였다.
얼마 후 문이 열리며 두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덩치가 큰 남자가 분명 탱크일 것이라 생각했고, 그 옆의 마른 남자가 료마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너무 달라 틀릴 수가 없는 추론이었다. 료마는 머리를 길게 기르고, 끈으로 머리카락을 묶은 모습이었다. 닉의 소설에서 처음 그를 만났을 때의 모습이 지금과 같지 않았을까 나는 잠시 생각했다.
탱크의 길지 않은 머리는 눈썹을 조금 가리고 있었다. 그의 코와 턱에는 수염이 보기 좋게 자라 있었다. 누가 보아도 그것은 농부의 모습이었다. 그가 큰 손을 내밀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저번에 전화를 주셨던 분이군요. 안녕하세요. 전 탱크라고 합니다. 아내는 제임스라고 부르죠. 제 뒤에 있는 남자는 저기 린의 남편인 료마 화이트.”
인사를 건네고 식구들은 모두 거실에 모였다. 탱크와 하연, 린, 마리와 클라라는 소파에 자리를 잡았고, 찰스와 료마는 부엌에서 나무 의자를 가져와 그 위에 앉았다. 하연은 여자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있었다. 아이의 이름은 메리(Mary)로 탱크와 하연의 딸이다. 린과 마리는 틈만 나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메리가 웃게 만들려고 애썼다.
난 배낭에 들어 있는 책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이건, 닉이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동안 쓴 기록입니다. 소설 형식으로 되어 있어요. 여러분과 헤어지고 얼마 안 지나 내게 이 글을 보냈습니다.”
탱크는 테이블 위에 놓인 책을 들어 펼쳐보았다.
“그건 제가 임시로 인쇄하여 가져온 것입니다. 글과 함께 닉이 보낸 메시지가 하나 있었는데, 가족들이 동의한다면 책을 세상에 공개해도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전적으로 여러분들의 판단에 달려있는 것이죠. 이제는 세상이 많이 달라져 책을 공개해도 위험할 일은 없겠지만……. 여기 와서 여러분들을 보니, 이런 책이랑은 상관없이 지금처럼 조용하게 사는 것이 더 낫겠다 싶네요.”
내 말을 듣는지 어떤지 탱크는 책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연도 다른 책을 손에 들고 옆에 앉아있는 마리와 함께 읽었다. 엄마가 책을 읽자 품에 안겨있는 아이가 손가락으로 종이를 가리키며 종이, 엄마, 읽어 같은 단어들을 발음했다. 옆에 앉아있는 린은 아이의 손가락을 잡으며 아이의 말이 다 맞는다는 듯, 메리의 말을 똑같이 따라 했다. 엄마. 종이. 읽어. 저건 아빠. 아빠도 종이 읽어. 아이고, 잘하네!
“사실 우리가 가장 궁금했던 게 있는데……. 그러니까, 닉은 어떻게 된 거죠?”
책을 보던 탱크가 시선을 내게로 돌리며 물었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어떤 답을 예상하고 있는 듯했으나, 어떤 기대와 불안이 함께 담겨 있는 것인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그건 책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있습니다만, 제가 말씀을 드리자면…….”
탱크는 책을 내려놓고 내 눈을 응시했다.
“그날 여러분들이 지하를 빠져나갈 시간을 벌기 위해, 그곳을 공격한 부대를 막느라고, 여러분과 합류하지 못한 것이고…… 또, 닉은 그날 안드로이드에 자신을 업로드한 이후, 다른 사본은 어디에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내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료마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책이 그의 유품이란 말씀이시군요.”
“네. 그렇습니다.”
잠시 거실에 깊은 침묵이 감돌았다. 그때 탱크가 입을 열었다.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이죠? 사실 나는 예감을 하고는 있었지만, 닉이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가늠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 내용이 이 책에도 담겨 있나요?”
“그것과 관련해서는, 닉이 제게 보내온 편지가 하나 있습니다. 이걸…….”
나는 외투 안 주머니에 넣어둔 봉투를 꺼냈다. 닉의 편지를 인쇄한 것이었다. 탱크는 편지를 건네받고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편지를 다 읽은 그는 잠시 침묵을 이어갔고, 하연이 그에게서 편지를 건네받은 후 조용히 편지의 내용을 읽었다.
“그렇군요. 그 친구가 원래 그런 면이 있죠. 기껏해야 인공지능인데 누구보다 인간인 척을 열심히 했던 녀석이니…….”
그는 역시 감정을 추스를 줄 아는 사람이었고, 강한 사람이었기에 이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탱크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내게 이것들을 전해주어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옆에서 편지를 읽던 하연의 눈시울이 붉어졌으나, 그녀는 손으로 살짝 눈가를 닦을 뿐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 역시 남편과 함께 멀고 먼 모험을 하며 단련이 된 여인이었다.
오후의 햇빛이 길게 농장 위 나무들로 떨어지고 있을 때, 나는 그들에게 그만 일어나 보겠다는 말을 했다.
“저녁이라도 드시고 가세요.”
하연의 말에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제 또 들를 테니 그때 푸짐하게 대접을 해달라고 말하며. 나는 가족들에게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들은 나를 차가 있는 곳까지 배웅해 주었고, 내가 차에 시동을 걸고 멀어지는 동안에도 뒤에 남아 내가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 후, 탱크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호탕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책을 출판해도 좋습니다.”
내가 혹시나 가족들이 불편해지는 것은 아닐까 우려를 표하자 그는 거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걸 책으로 낸다고 해도 누가 믿겠습니까? 그냥 말 그대로 소설이라고 생각하겠죠. 그리고 이런 시골에 사는 우리를 누가 눈여겨보겠습니까? 그것 말고도 사람들이 신경 쓸 게 얼마나 많은데요. 떠난 친구에게 보내는 선물로 치고, 세상에 책을 내주세요.”
그 목소리는 오랜 농사일로 인해 비와 바람에 깎여나간, 거친 농부의 목소리였다.
여기에 한 가지 부언을 해두자면, 닉은 가족들을 떠나면서도 탱크의 머릿속에 그의 몸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보조용 인공지능을 남겨두고 갔는데, 그런 이유로 탱크는 다른 농부보다 일을 곱절은 더 할 수 있고, 마을에서도 근면하고 에너지가 넘치기로 유명한 농부라고 한다. 프로젝트를 이끌던 과학자로서, 그의 기능이 원래의 목적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나는 어쩐지 그것이 훨씬 더 만족스러웠다. 모 베터 클론이 아닌, 모 베터 파머(Mo' Better Farmer)라니. 정말 멋진 일이다.
이런 경위로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이 책이 출간된 것이다. 문학적으로 멋있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이런 방식 말고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놓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있는 그대로를 표현해 보았다.
이후에도 나는 그들의 농장을 몇 번 찾아갔다. 갈 때마다 그들은 내게 푸짐한 식사를 제공했고, 나는 그곳에서 한적한 시골길을 걸으며 잠시 도시의 일상을 잊어버리고는 했다. 지금처럼 가을이 오고 나뭇잎들이 하나 둘 떨어지는 때면, 나는 더욱더 그들의 농장이 떠오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