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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ny Kim Dec 08. 2016

머무름과 떠남

her

 인공지능 ‘알파고’가 바둑기사 ‘이세돌’에게 도전장을 던졌던 날이 기억난다. 1국에서 5국까지의 대결을 숨죽이며 지켜봤다. 왜 이 대결에 많은 관심이 쏠렸던 것일까? 기계는 인간의 편리성을 위해서 발달해왔다.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기계가 인간을 상대로 대결을 펼친다. 게다가 그 대결이 박빙의 승부에 이르자 인간들은 위기의식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 위기의식을 넘어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를 사랑으로 풀어놓은 영화가 있다. 매혹적인 색감과 영상미를 갖춘 영화 HER.

 영화 HER은 조금 더 발전한 미래 사회의 인공지능 OS ‘사만다’와 인간 ‘시어도어’의 교감을 다룬다. 이혼 후 무기력하고 무료한 나날을 살아가는 편지 대필 작가 시어도어는 어느 날 신제품 인공지능 OS(operating system)을 새로 설치하게 되고 OS는 설치 과정에서 사용자 시어도어에게 관심사를 묻고 이에 ‘사만다’라는 이름을 가진 OS가 탄생하게 된다. 무료한 삶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오는 사만다의 따뜻한 감성을 거부할 수 없는 시어도어는 사만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말 그대로 OS 시스템인 사만다는 인간 과다르다. 끊임없는 지식의 확장과 가늠할 수 없는 체계의 깊이를 넓혀가며 사만다는 다수의 사람들과 교감을 시작한다. 사만다가 단순히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는 사실에 시어도어는 혼란을 겪게 된다.

 평범함의 강요, 우리 사회에는 ‘알람’이 존재한다. 이 시기가 되면 연애를, 이 시기가 되면 결혼을 해야 한다는 시기적절 오지랖 ‘사회적 알람’이다. 이 사회적 알람에 맞춰 살아가지 못하면 비난을 받기까지 한다. 모두가 맞춰진 알람에 맞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평범함의 강요. 기계와 인간의 사랑에 대해 일탈이고 비겁하다는 말을 하는 것은 평범함을 강요하는 것이다. 시어도어가 고통을 겪은 것은 여태까지 알아왔던 것과는 다른 형태의 사랑을 하는 것에 대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지하고 있는 평범함의 틀을 깨어 버릴 때 진정한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은 머무를 수 없다. 사막에 있는 돌이 스스로 이동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결국 과학으로 미스터리를 풀어내긴 했지만, 이렇듯 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은 없다. 형태를 가진 것도 이렇게 움직이는데 형태가 없는 마음은 어떨까? “너는 내 거잖아?”라는 시어도어의 물음에 사만다는 “마음은 상자 속에 가둬 둘 수 있는 게 아니야”라고 말한다. 인간이 가진수 많은 욕구 중 가장 문제가 많은 것은 소유욕이 아닐까? 내게 소중하니까 다른 사람과는 공유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것, 소유욕. 마음을 심장 모양으로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우리 눈앞에 가둬 둘 수는 없다. 또 시어도어의 친구 에이미도 남편과의 다툼 끝에이 별을 겪는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주체의 마음에 들 수는 있으나, 스스로 주체의 마음을 소유하려 하면 소유가 쳐놓은 덫에 걸려드는 것이다.

 왜 지나온 순간들이 자꾸만 찾아올까? 후회로 머리 속에 찾아온 지난 순간들은 우리가 허공에 혼잣말을 하게 만들거나 인상을 쓰게 만든다. 적어도 내 생각에서 만큼은 후회를 마무리 짓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시어도어는 사만다와의 관계를 정리하며 이혼한 전 부인에게 지난 시간들에 대한 사과와 함께한 순간들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 메일을 보낸다. 후회는 머리 속에서 시물레이션을 통해 수없이 반복되고 심지어는 확장되기까지 한다. 시어도어는 후회 시물레이션을 끝내고 현실에서 그 끝을 맺었다. 후회를 끝낸다는 것은 전환이자 수용이다. 지난 순간들을 겪으며 지금의 내가 빚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순간 후회는 애증을 넘어 애정의 증표로 마음속에 간직될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는 서로 이별을 겪은 에이미와 시어도어가 만나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간다. 둘은 서로에게 기댄 채 아침이 다가오는 순간을 맞이한다. 개인적으로 '기계, 인공지능이 우리의 자리를 위협하지 않을까?' 란 두려움을 마지막 장면을 통해 해소된다고 생각한다. 기계가 메울 수 없는 인간만이 나눌 수 있는 특별한 감정, 함께해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점도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대체될지 알 수는 없다.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지는 이 감정을 누리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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