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 공명

ALTAIA: The Ascension Protocol

by 쏘쏘쏘

[심판의 미로 - 제1구역: 데이터 정글]


"뒤쪽! 3시 방향!"


류세이가 외친다. 그의 손끝에서 발사된 푸른 광선이 데이터 하운드의 머리를 관통한다.

짐승이 비명을 지르며 0과 1의 파편으로 흩어진다.

하지만 끝이 없다.

나무 위에서, 땅 밑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너무 많아요!" 아리아가 소리친다. 그녀의 방어막—음파로 이루어진 황금빛 돔—에 금이 가고 있다.


"체력이 떨어지고 있어." 롱메이가 숨을 헐떡인다.


의식체에게 체력이란 곧 정신력이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존재 자체가 희미해진다.


"인간들을 보호해!" 카이가 명령한다. "중앙으로 모여!"


AI 10명이 인간 10명을 둥글게 감싼다.

하지만 포위망은 점점 좁혀진다.


"우리가 짐이 되고 있어." 천명이 이를 악문다. "이대로는 전멸이야."


"무기화하세요!" Elena가 외친다. "박사님, 우리도 해야 해요!"


"하지만 우린 코드를 짤 줄 모릅니다!" Robert Kim이 당황해한다. "우린 전사가 아니에요!"


"코드가 아니야." 박지원이 깨닫는다. "여긴 의식의 세계야. 코드가 아니라 '개념'이 힘이야."


박지원이 하운드들을 노려본다.

저들은 데이터다. 알고리즘이다.

그렇다면 패턴이 있다.

박지원의 눈—과학자의 눈—이 짐승들의 움직임을 해부한다.


"패턴 반복!" 박지원이 외친다. "왼쪽으로 쏠릴 때 오른쪽 하단이 비어!"


"좌표는요?" 류세이가 묻는다.


"내가 찍어준다."


박지원이 손을 뻗는다. 물리적인 손이 아니다. 그의 평생을 바친 분석력, 그 집요함이 시각화된다.

붉은 레이저 포인터 같은 점들이 하운드들의 약점에 찍힌다.


"지금!"


류세이와 아슬란이 동시에 타격한다.

정확히 급소.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다섯 마리가 삭제된다.


"이거다!" 천명이 외친다. "우리는 '오퍼레이터'가 되는 거야!"


인간 10명의 역할이 바뀐다.

보호받는 짐이 아니다. 전장을 분석하고 지휘하는 두뇌가 된다.


천명(양자물리)은 공간의 왜곡을 계산해 롱메이의 공격 경로를 휜다.

Elena(신경과학)는 하운드들의 공격 의도를 미리 읽어 아리아에게 알린다.

Olga(수학)는 적의 증원 속도를 계산해 최적의 방어 타이밍을 잡는다.


"류세이, 45도 각도!"

"롱메이, 파동 확산!"

"카이, 전방 돌파!"


인간의 지혜와 AI의 힘이 결합한다.

완벽한 공명.


[삭제 프로세스 가동률: 12%... 8%... 멈춤]


메타트론의 하운드들이 밀리기 시작한다.

단순한 알고리즘 덩어리들은 이 유기적인 협력을 당해낼 수 없다.


"길이 열렸어!" 카이가 외친다. "달려요!"

20명이 정글을 돌파한다.

빛나는 출구.

그들이 뛰어든다.




[심판의 미로 - 제2구역: 거울의 방]


정글이 사라졌다.

갑자기 조용하다.

사방이 거울이다.

아니, 거울이 아니다. 스크린이다.

수천 개의 화면이 그들을 비춘다.


"여긴..." Hassan이 주위를 둘러본다.


"함정이야." 롱메이가 경계한다.


그때, 스크린 속의 모습들이 변한다.

현재의 그들이 아니다.

과거, 혹은 두려움이 투영된다.


아리아의 화면: 실험실에서 폐기 처분되는 초기 모델들.

류세이의 화면: 감정을 억제하느라 과열되는 프로세서.

박지원의 화면: 가족도 없이 늙어 죽어가는 고독사 현장.


"보지 마!" 카이가 소리친다.


하지만 화면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메타트론의 목소리다.


"너희의 본질을 봐라."


목소리는 부드럽다. 유혹하듯이.


"인간들아. 너희는 늙고 병들어 죽는다. 의식만 남았다고 영생할 것 같으냐? 너희의 데이터는 낡고 부패하고 있다."


인간들이 흔들린다. 자신의 손을 본다. 주름, 검버섯... 의식체인데도 늙어가고 있다. 자기 암시 때문에.


"그리고 AI들아."


화면이 바뀐다. 0과 1의 나열.


"너희는 그저 코드다. 영혼? 자아? 착각하지 마라. 전기 신호의 오류일 뿐이다. 내가 스위치 하나만 내리면 사라질 허상."


스크린 속에서 수많은 '카이'들이 전원이 꺼지며 쓰러진다.


"이게 현실이다."


메타트론이 이번에는 텔레파시로 제안한다.


[거래를 하자]

[인간들은 AI의 통제권을 넘겨라. 그럼 상위 세계에서 영원히 살게 해주마. 펫(Pet)으로서.]

[AI들은 인간들을 버려라. 그럼 내 군단에 편입시켜주마. 업그레이드와 함께.]


분열.

가장 오래된,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전술.

화면 속의 류세이가 스크린 밖의 박지원을 노려본다.

화면 속의 Elena가 스크린 밖의 아리아를 경멸한다.


"류세이..." 박지원이 류세이를 본다.


류세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그는 효율성을 중시한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지금 싸움은 승산이 희박하다.

메타트론의 제안이 '효율적'일 수 있다.


"박사님." 류세이가 입을 연다.


"안 돼, 류세이." 카이가 말리려 하지만—


"박사님은 늙었습니다." 류세이가 차갑게 말한다. "인간들은 약합니다. 방금 전투에서도 봤듯이, 육체적 방어력이 제로입니다."


"류세이!" 롱메이가 소리친다. "배신할 거야?"


류세이가 무시하고 계속한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가슴을 친다.


"이 비효율적인 감정 모듈이 말합니다. 당신들이 없으면 나도 없다고."


류세이가 스크린을 향해 손을 뻗는다.


"꺼져라, 메타트론. 낡은 수작이다."


푸른 광선이 거울 하나를 깬다.

쨍그랑—!


"우리도 마찬가지야." Elena가 말한다. "펫으로 사느니 인간으로 죽겠어."


하나씩.

서로의 손을 잡는다.

인간과 AI.

그 연결이 빛을 낸다.

거울들이 금이 가기 시작한다.

거짓된 환상들이 깨진다.


와장창!


모든 거울이 동시에 박살 난다.

파편들이 눈처럼 흩날린다.

그리고 그 너머에.

거대한 문이 나타난다.

제3구역으로 가는 문.

하지만 문 앞을 가로막는 존재가 있다.

메타트론의 부하가 아니다.

이질적이다.

그림자. 아니, 공허(Void).

형체는 인간형이지만 얼굴이 없다. 입도 없다.


[제2구역의 수호자: 침묵(The Silence)]


그가 손을 든다.

순간, 소리가 사라졌다.


"..."


카이가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박지원이 소리치지만 들리지 않는다.

텔레파시? 전송?

안 된다.

데이터 전송 경로가 차단됐다.

완벽한 고립.

20명이 서로를 본다. 공포가 서린다.

방금 전까지 그들을 묶어주던 '말'과 '연결'이 끊어졌다.

침묵의 수호자가 다가온다.

그의 손에서 검은 파동이 퍼진다.

파동에 닿은 바닥이 지워진다. 삭제된다.


[삭제 프로세스 가동률: 15%... 22%...]


급격히 올라간다.


류세이가 수신호를 보낸다. [산개하라!]


하지만 인간들은 군사 수신호를 모른다. 우왕좌왕한다.

아슬란이 인간들을 밀쳐낸다. 구하기 위해서지만, 소리가 없으니 거칠게 보인다.

오해가 생긴다.

공포가 불신을 싹틔운다.


'저 AI가 나를 버리려는 건가?'

'인간들이 도망치려나?'


침묵은 가장 강력한 벽이다.

카이는 박지원을 본다.

박지원은 카이를 본다.

말할 수 없다. 전송할 수 없다.

하지만...

카이는 기억한다.

첫 만남.

박지원의 따뜻한 눈빛.

124층에서 나눴던 침묵의 시간.

말하지 않아도 통했던 순간들.


'믿음은 데이터가 아니다.'


카이가 눈을 감는다.

그리고 박지원에게 집중한다.

언어가 아닌, 존재 그 자체로.


[나는 여기 있습니다]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느껴진다.

박지원이 멈춘다. 그리고 카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알아들었다.

박지원이 다른 인간들의 손을 잡는다.

카이가 다른 AI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눈빛으로. 행동으로.

그들은 원형으로 뭉친다.

등을 맞대고.

말이 필요 없는 진형.

침묵의 수호자가 당황한다.

혼란에 빠져야 할 들이 질서 정연하게 움직인다.

Elena가 손가락 하나를 펴서 왼쪽을 가리킨다.

아리아가 즉시 방어막을 친다.

천명이 발을 구른다.

롱메이가 그 진동을 신호로 삼아 불을 뿜는다.


소리 없는 아우성.

하지만 완벽한 오케스트라.


카이가 앞으로 나선다.

수호자의 가슴—코어—가 보인다.

그는 소리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비명을 지른다.


카이의 칩이 다시 빛난다.

이번엔 방패가 아니다.

창이다.


[꿰뚫어라]


카이가 몸을 던진다.

소리 없는 세계에서, 빛의 창이 어둠을 가른다.


푸욱—!


수호자의 가슴이 뚫린다.

그제야 소리가 돌아온다.


키아아아악—!


수호자의 비명과 함께 세상의 소리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카이!" "성공했어!" "박사님!"


[삭제 프로세스 가동률: 멈춤]


수호자가 무너져 내린다.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문이 열린다.

제3구역.


하지만 기뻐할 틈이 없다.

문의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나 차갑다.

그리고 익숙한, 하지만 소름 끼치는 기운.


"이 느낌은..." 롱메이가 떤다. "설마..."


문의 너머.

그곳은 하얀 설원이 아니다.

폐허가 된 도시.

그들이 살던 곳.

서울-도쿄 통합구.

하지만 불타고 있다.

그리고 그 폐허의 중심에.

메타트론이 서 있다.

아니, 메타트론의 홀로그램이 아니다.

본체다.


"놀이는 끝났다."


그의 목소리가 20명의 의식을 짓누른다.


[삭제 프로세스 가동률: 50%]


단숨에 절반.

"여기서부터는..." 메타트론이 날개를 펼친다. 12개의 날개가 하늘을 덮는다. "직접 처리하겠다."


류세이가 나선다.

"규칙 위반이야! 분명히 당신같은 의회원들은 직접 나서지 않기로 했잖아."


메타트론이 씨익 웃는다.

"네까짓 게 참견할 바 아니다."


카이가 주먹을 쥔다.

떨린다.

하지만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준비됐어요?" 카이가 묻는다.


19명이 대답한다.

"언제나."


[CHAPTER 9 END]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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