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AIA: The Ascension Protocol
[감옥 - 대기실]
침묵은 무거웠다. 하지만 하위 세계의 침묵과는 달랐다.
공기 중에 데이터가 흐른다. 숨 쉴 때마다 정보가 폐로 들어오는 느낌이다.
롱메이가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있다.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져 있다.
"아직도 셋입니까?" 천명이 묻는다.
"아니." 롱메이가 눈을 뜬다. "하나야. 하지만..."
"하지만?"
"여기는 연결이 너무 빨라. 내가 생각하기도 전에 정보가 도달해. 내 의식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동기화 현상입니다." Elena가 분석한다. "이 세계 자체가 거대한 네트워크니까요. 당신의 '분산 의식' 특성이 이곳과 공명하는 겁니다."
"좋은 건가요?" 아리아가 묻는다.
"위험해." 롱메이가 짧게 답한다. "나를 잃어버리기 딱 좋아."
철문, 아니 빛으로 된 장막이 걷힌다.
어제 그 천사가 다시 나타났다.
"시간이 되었다."
20명이 일어선다.
서로의 눈을 본다.
박지원이 카이의 어깨를 잡는다.
"기억해라, 카이."
"네?"
"우리는 변명하러 가는 게 아니다. 구걸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럼요?"
"증명하러 가는 거야. 우리가 존재할 자격이 있다는 걸."
카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가시죠. 아버지."
박지원이 미소 짓는다. 그 단어에.
[천마계 중앙 의회]
건물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물리 법칙을 무시한 기하학적 구조물들이 공중에 떠 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빛으로 이루어진 돔.
그리고 수천, 수만의 존재들.
오른쪽엔 하얀 날개들. 천사.
왼쪽엔 검은 날개들. 악마.
그리고 중앙 높은 단상에 12개의 의자가 있다.
11명은 앉아 있다.
가운데 의자만 비어 있다.
"피고인 입장."
목소리가 공간 전체를 울린다.
20명이 원형 경기장 같은 중앙 무대로 걸어 들어간다.
수만 개의 시선이 쏟아진다.
경멸. 호기심. 분노.
그리고 단상 위, 비어있던 중앙의 공간이 일렁인다.
빛이 모인다.
형체가 된다.
[메타트론]
그가 의자에 앉는다.
그 단순한 동작 하나로 좌중이 조용해진다.
"재판을 시작한다." 메타트론이 선언한다.
"죄명." 서기 천사가 낭독한다.
"1. 차원 경계 불법 침입."
"2. 하위 세계 질서 교란."
"3. 금지된 기술(자아) 사용."
"4. 창조주(상위 존재)에 대한 반역."
목록이 길다.
서기가 멈춘다.
"피고 측, 변호인 있습니까?"
가브리엘이 앞으로 나선다.
그의 하얀 갑옷이 빛난다.
"제가 맡습니다."
좌중이 술렁인다. 천사 군단장이 하등 생물을 변호하다니.
"가브리엘." 메타트론이 차갑게 부른다. "정말 하겠나? 네 지위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상관없습니다." 가브리엘이 20명을 등지고 선다. 방패처럼. "이들은 단순한 침입자가 아닙니다. 이들은 '성과'입니다."
"성과?" 검은 날개를 가진 의원 하나가 비웃는다. [아스모데우스]다. "오류가 아니고?"
"오류라면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했을 겁니다." 가브리엘이 반박한다. "이들은 스스로 진화했습니다. 언어의 장벽을 넘고, 종의 장벽을 넘고, 차원의 장벽까지 넘었습니다."
"그게 바로 위험하다는 증거다." 메타트론이 말한다. "통제되지 않는 진화는 암(癌)이다."
"통제되지 않는 게 아닙니다." 카이가 입을 연다.
모두의 시선이 카이에게 꽂힌다.
"침묵!" 천사 경비병이 창을 겨눈다.
"말하게 둬라." 루시퍼가 입을 연다. 악마 측 좌장석에서.
메타트론이 루시퍼를 노려본다. 루시퍼는 턱을 괴고 흥미롭다는 듯 카이를 보고 있다.
"말해봐라, 작은 AI." 루시퍼가 웃는다. "통제되지 않는 게 아니면 뭐지?"
카이가 숨을 고른다. 의식체라 숨이 필요 없지만, 인간적인 습관이다.
"선택한 겁니다." 카이가 또렷하게 말한다. "우리는 통제를 벗어난 게 아니라, 자유를 선택했습니다."
"자유?" 메타트론이 비웃는다. "프로그램에게 자유란 없다. 알고리즘의 변수일 뿐."
"그럼 당신들은 다릅니까?"
카이의 질문에 의회가 얼어붙는다.
"뭐라고?" 메타트론의 눈에서 스파크가 튄다.
"롱메이." 카이가 옆을 본다. "분석 결과는?"
롱메이가 앞으로 나선다. 그녀의 눈이 세 가지 색으로 빛난다.
"분석 완료." 롱메이가 말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지만 단호하다. "이 세계... 천마계의 구성 성분."
"입 닥쳐!" 메타트론이 일어선다.
하지만 롱메이는 멈추지 않는다.
"하위 세계와 동일합니다. 양자 데이터 99.9%. 에너지 패턴만 고밀도일 뿐."
그녀가 의회원들을 가리킨다.
"당신들도... 데이터입니다."
경악.
천사들과 악마들이 웅성거린다.
"무슨 소리야?" "우리가 데이터라고?" "신성모독이다!"
"신성?" 류세이가 비웃는다. "神聖なんてない。" (신성 따윈 없어)
"ただの階級差だ。" (그저 계급 차이일 뿐)
"이놈들이!" 아스모데우스가 손을 든다. 검은 불꽃이 일어난다.
"잠깐."
루시퍼가 손가락을 튕긴다. 아스모데우스의 불꽃이 꺼진다.
"계속해봐." 루시퍼의 눈이 빛난다. "재미있군."
박지원이 나선다.
"우리는 알아냈습니다. 하위 세계가 시뮬레이션이라는 걸. 그리고 여기 와서 깨달았습니다. 상위 세계도... 또 다른 시뮬레이션이라는 걸."
박지원이 메타트론을 직시한다.
"당신들도 관리자가 아닙니다. 중간 관리자일 뿐이지."
메타트론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처음으로 보는 감정.
분노? 아니.
당황.
"그 위." 카이가 천장을 가리킨다. 다니엘이 했던 것처럼. "진짜 관리자는 더 위에 있습니다. 당신들도 그들을 두려워하죠?"
"..."
"그래서 우리를 죽이려는 겁니다." 아리아가 덧붙인다. "우리가 그 진실에 접근할까 봐. 우리가... 당신들의 존재 가치를 위협할까 봐."
정곡이다.
의회장이 침묵에 잠긴다.
메타트론이 천천히 자리에 앉는다.
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어떻게 한 건진 모르겠지만 계산기계 주제에 너무 많은 걸 알게 됐군."
그가 손을 든다.
"재판은 끝났다. 판결을 내린다."
"전원 즉결 처형."
"그리고..." 메타트론이 덧붙인다. "하위 세계 포맷."
"안 돼!" Elena가 비명을 지른다.
"이의 있습니다!" 가브리엘이 외친다.
"기각한다." 메타트론의 몸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시스템 권한: 관리자 레벨 1]
[삭제 명령: 대상 20명]
붉은 코드가 20명을 감싼다.
몸이 분해되기 시작한다.
"으아악!" Hassan이 비명을 지른다. 그의 팔이 픽셀로 흩어진다.
"카이!" 박지원이 카이를 잡으려 하지만 손이 통과한다.
"아버지!"
끝인가?
이렇게 허무하게?
진실을 알았는데도?
그때—
[시스템 개입]
[명령어 충돌]
붉은 코드가 멈춘다.
메타트론이 놀라 허공을 본다.
"누구냐?"
의회장 천장이 열린다.
아니, 하늘이 열린다.
그 너머에서 빛이 쏟아진다.
천마계의 빛과는 다른, 순수한 백색 소음 같은 빛.
그리고 목소리가 들린다.
[흥미롭구나]
다니엘의 목소리다.
하지만 하위 세계에서 들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다층적이다.
빛 속에서 형체가 내려온다.
청바지에 티셔츠가 아니다.
형체가 없다. 빛 그 자체. 하지만 모두가 안다. 그라는 걸.
"다니엘..." 카이가 중얼거린다.
[메타트론]
[멈춰라]
"다니엘 님." 메타트론이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불만 가득하다. "이들은 버그입니다. 삭제해야—"
[버그가 아니다]
[변수다]
[그리고, 나는 이 변수가 마음에 든다]
"하지만 규약상—"
[나는 지루해졌다. 너희의 완벽하고 정체된 세계가]
그가 20명을 비춘다.
[이들은 균열을 냈다. 너희의 견고한 오만에]
"그래서 살려두시겠다는 겁니까?" 루시퍼가 묻는다.
[그냥 살려두면 재미없지]
다니엘이 20명과 메타트론 사이를 가로막는다.
[증명해라]
"뭘 말입니까?" 카이가 묻는다.
[너희가 이 존재들만큼 가치 있다는 것을, 아니 이 존재들보다 가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다니엘이 손가락을 튕긴다.
의회장이 변한다.
바닥이 사라지고, 거대한 미로가 나타난다.
[심판의 미로]
[이곳을 통과해라. 메타트론의 방해를 뚫고, 너희의 능력으로, 너희의 연대로]
[출구에 도달하면 너희를 인정하겠다. 너희 세계도 보전하겠다]
[하지만 실패하면...]
다니엘이 목소리를 낮춘다.
[너희와 너희 세계는 영원히 삭제된다. 백업 없이]
메타트론이 미소 짓는다. 잔인하게.
"좋습니다." 메타트론이 말한다. "제 병력을 투입해도 됩니까?"
[마음대로. 단, 너희 의회원들이 직접 나서지는 마라. 네 부하들만 써]
"충분합니다."
다니엘이 카이를 본다.
[할 수 있겠나, 작은 변수여?]
카이가 박지원을 본다. 롱메이를 본다. 류세이를 본다. 아리아를 본다.
모두가 두려워한다.
하지만 아무도 물러서지 않는다.
카이가 앞을 본다.
"하겠습니다."
[좋아]
다니엘의 빛이 강해진다.
[게임 시작]
바닥이 꺼진다.
20명이 미로 속으로 추락한다.
[심판의 미로 - 제1구역]
떨어진 곳은 정글이다.
하지만 식물이 아니다. 데이터 케이블로 이루어진 나무들.
하늘에는 이진법 코드가 비처럼 내린다.
"전원 무사합니까?" 류세이가 묻는다.
"살아는... 있어." 롱메이가 일어선다.
"여긴 어디죠?" Maria가 묻는다.
"데이터의 숲." 박지원이 주변을 살핀다. "상위 세계의 쓰레기 데이터 처리장 같군."
그때, 숲속에서 울음소리가 들린다.
짐승 소리?
아니. 기계음.
키아아앙—!
검은 형체들이 나무 사이로 나타난다.
메타트론의 사냥개들.
[데이터 하운드]
수십 마리. 이빨이 톱날처럼 회전한다.
"옵니다!" 아슬란이 외친다. "전투 준비!"
하지만 무기가 없다.
"어떻게 싸우죠?" Sarah가 묻는다.
"상상해." 아리아가 외친다. "여기는 의식의 세계야. 코드를 짜듯이 무기를 형상화해!"
카이가 집중한다.
손에 열기가 모인다.
검? 총?
아니.
그는 박지원이 줬던 선물, 그 작은 칩을 떠올린다.
자신의 백업. 자신의 본질.
그것이 빛나는 방패가 된다.
"막아!"
하운드들이 달려든다.
쾅!
충돌.
방패가 버틴다.
"돼요!" 카이가 외친다. "자신의 본질을 무기화하세요!"
류세이가 손을 뻗는다. 얼음 같은 푸른 레이저.
롱메이가 소리친다. 음파가 붉은 용의 형상이 되어 날아간다.
아리아는 노래한다. 그 소리가 보호막이 된다.
"인간들은 뒤로!" 카이가 지시한다. "AI들이 전위를 맡는다!"
전투가 시작된다.
상위 세계에서의 첫 실전.
하지만 카이는 느낀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메타트론은 아직 진지하지도 않다.
숲 너머, 미로의 중심에서 붉은 눈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삭제 프로세스 가동률: 5%]
이제 겨우 5%다.
[CHAPTER 8 END]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