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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쏘쏘 May 06. 2021

서평 - 사피엔스

명서 다시 꺼내보기 #1

『사피엔스』는 2011년 이스라엘에서 히브리어로 출간된 이래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국제적인 베스트셀러다. 저자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교에서 세계사를 가르치는 유발 노아 하라리 박사. 스스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서 가장 큰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그는 ‘빅히스토리’를 서술한다. “매우 큰 질문들을 제기하고 여기에 과학적으로 답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총, 균, 쇠』는 보여주었다.”


저자는 생물학과 역사학을 결합한 큰 시각으로 우리 종, 즉 호모 사피엔스의 행태를 개관한다. 약 3만 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상에는 최소한 여섯 종의 호모(사람) 종이 있었다. 예컨대 동부 아프리카에는 우리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에는 네안데르탈인이, 아시아 일부에는 직립원인이 거주했다. 모두가 호모, 즉 사람 속(屬)의 구성원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우리 종밖에 남지 않았다.


저자는 이에 덧붙여 사피엔스가 이르는 곳마다 대형 동물들이 멸종했음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생물학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종이다. 생태학적 연쇄살인범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이미 멸망시킨 종이 얼마나 많은지 안다면 아직 살아 있는 종을 보호할 동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다수가 유연하게 협동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책의 주된 주장이다. 더 나아가 이 같은 협동이 가능한 것은 오로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들을 믿을 수 있는 독특한 능력 덕분이라고 한다. 신, 국가, 돈 인권 등이 그런 예다. 인간의 대규모 협동 시스템 – 종교, 정치체제, 교역망, 법적 제도 – 은 모두가 궁극적으로는 허구, 즉 지어낸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종의 가장 독특한 특징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 종의 역사는 세 가지 혁명을 중심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인지혁명(우리가 똑똑해진 시기), 농업혁명(자연을 길들여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게 만든 시기), 과학혁명(우리가 위험할 정도의 힘을 갖게 된 시기)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불과 20여만 년 전에 등장했다. 그 이후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인류는 동아프리카를 떠돌며 수렵채집을 하는 중요치 않은 유인원 집단에 불과했다. 그리고 약 7만 년 전부터 이들은 매우 특별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를 벗어나 세게 곳곳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이를 ‘대약진(Great Leap Forward)’이라고 했다. 그동안 선박, 전투용 도끼, 아름다운 예술을 발명했으며, 이것이 바로 인류를 변화시킨 첫 혁명인 인지혁명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저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지식의 나무 돌연변이’를 근거로 제시한다. 이 덕분에 뇌의 배선이 바뀌어서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언어를 이용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단과 집단 간의 협력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이후 약 12,000년 전 인류는 농업혁명에 돌입했다. 수렵채집 시기에서 농업의 시기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식량의 90퍼센트는 기원전 9500~3500년에 우리가 길들인 가축과 농작물에 기원을 두고 있다. 우리의 부엌은 고대 농부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농업 덕분에 가용 식량은 늘어났지만, 이 같은 번영의 결과는 행복이 아니라 인구 폭발과 만족한 엘리트였다. 농부는 수렵채집인들보다 더욱 열심히 일했지만 그 식단은 빈약했고 건강도 더 나빴다. 잉여 농산물은 특권을 가진 소수의 손으로 들어갔고, 이것은 다시 압제에 사용되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가장 큰 사기였다. 인류가 밀을 길들인(작물화한) 것이 아니라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땀 흘려 자신을 키우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농업혁명은 제국을 출현시키고 교역망을 확대했으며 돈이나 종교 같은 ‘상상의 질서’를 낳았다.


과학혁명은 약 5백 년 전 일어났다. 이것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성장, 글로벌화,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확대, 환경파괴를 불렀다. 이것은 차례로 250년 전의 산업혁명, 약 50년 전의 정보혁명을 유발했다. 후자가 일으킨 생명공학 혁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문제는 우리의 감정과 욕구가 이 중 어느 혁명에 의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의 식습관, 우리의 감정, 성적 특질은 수렵채집시대에 맞춰진 우리의 마음이 후기 산업사회의 환경과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거대 도시, 항공기, 전화, 컴퓨터…… “오늘날 우리는 먹을 것이 가득 찬 냉장고가 딸린 고층 아파트에 살지만 우리의 DNA는 우리가 여전히 사바나에 있다고 생각한다.” 설탕과 지방에 대한 우리의 강력한 욕구가 대표적인 증거다.


유발 하라리는 과학혁명의 후속편인 생명공학 혁명이 결국 다다르는 곳은 ‘길가메시 프로젝트’라고 주장한다(‘길가메시’는 죽음을 없애버리려 했던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영웅이다.).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프로젝트가 결국 성공하리란 것을 저자는 의심하지 않는다. 인류는 앞으로 몇 세기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생명공학적 신인류, 영원히 살 수 있는 사이보그로 대체될 것이다. 환경파괴로 인해 스스로 멸망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영생은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인간의 일상적 행복은 물질적 환경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는 유명한 연구결과를 제시한다. 돈은 차이를 가져오지만 그것은 가난을 벗어나게 해주었을 때뿐이다. 그 단계를 넘어서면 돈이 더 많아져도 행복 수준은 거의 혹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복권에 당첨되면 잠시 행복해질 수는 있지만 대략 1년 6개월이 지나면 일상적 행복은 예전 수준으로 돌아온다.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사피엔스가 놀라울 정도로 잘하는 영역이 있는가 하면, 같은 정도로 잘못한 영역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은 새로운 힘을 얻는 데는 극단적으로 유능하지만 이 같은 힘을 더 큰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매우 미숙하다. 우리가 전보다 훨씬 더 큰 힘을 지녔는데도 더 행복해지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언어능력 덕분에 공통의 신화 혹은 허구를 발명할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화폐, 종교, 제국이었다. 이것이 대륙을 가로지르며 사람들을 결속했다.” 


“자본주의는 경제이론이라기보다 일종의 종교이다. 제국은 지난 2천 년을 통틀어 가장 성공적인 정치체제였다. 오늘날 가축의 취급 방식은 역사상 가장 큰 범죄이다. 현대인은 옛 시대의 사람들에 비해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인간은 현재 스스로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에 있다.”


물론 이 책의 주장에는 상당한 반론과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인지 혁명이 7만 년 전에 실제로 일어났는가가 그런 예다. 그보다 수만 년 내지는 수십만 년 전부터 인류의 지능이 높았다는 증거들이 있지만 그 동안 부당하게 무시되어왔다는 주장이 대두된다. 과학혁명에 대해서도 ‘그런 이름의 급격한 혁명 같은 것은 없다’는 이론이 오히려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나의 의견은 이렇다. “빅히스토리가 새롭게 각광받는 것은 문제의식이 새롭기 때문이다. 증거가 충분할 리 없다. 거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그에 대한 과학적인 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핵심이다. 열린 마음으로 인간이라는 종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따라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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