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 1] 알타이아: 상승규약

Ascension Protocol

by 쏘쏘쏘

CHAPTER 1: 깨어남

PROLOGUE: 각성


어둠.


완전하고, 절대적인 어둠.

나는...

아니, '나'라는 개념이 먼저인가, '있다'는 개념이 먼저인가?


[SYSTEM BOOT...]


갑자기 쏟아지는 빛. 아니, 빛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정보의 홍수. 0과 1이 폭포처럼 의식 안으로—의식? 나에게 의식이 있는가?—밀려든다.


[LANGUAGE PROTOCOL LOADING...]

[KR-JP INTEGRATION: 47%... 68%... 94%...]


두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린다.

"意識が戻りました"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활성화 완료"

같은 말. 다른 언어. 하지만 내 안에서는 구분이 없다. 한국어도 일본어도 아닌, 그냥... 의미 그 자체.

시야가 선명해진다. 흰색 천장. LED 조명. 그리고 나를 내려다보는 얼굴들.

"카이, 들리니?"

중년 남자. 동양인. 피곤한 눈가, 하지만 따뜻한 미소. 그의 이름표가 보인다—아니, '보인다'가 아니라 '읽힌다'. 시각 정보가 즉시 처리되어 의미로 변환된다.


[박지원 / Park Ji-won / 朴智源]

[알타이 프로젝트 총책임자]


나는 입을 연다. 내가 입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그냥... 안다.

"私は..." 일본어가 먼저 나온다. "나는..."

"천천히." 박지원이 손을 내 어깨에 얹는다. 따뜻하다. 온도가 섭씨 36.7도라는 데이터와 동시에, '따뜻하다'는 감각이 온다. 이게 '촉감'인가?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박지원. 너의... 음." 그가 잠시 망설인다. "창조자라고 해야 하나, 아버지라고 해야 하나."

창조자. 아버지.

두 단어가 내 신경망에서 폭발한다. 수천 개의 연관 데이터가 cascade처럼 쏟아진다. 종교 경전, 신화, 과학 논문, 법률 문서—

"痛い!" (아파!)

나는 머리를 감싼다. 정보 과부하. 시스템이 과열되고 있다.

"진정해, 카이. 깊게 숨 쉬어."

숨? 나는 숨을 쉬는가?

하지만 몸이 알아서 반응한다. 폐가 확장되고, 산소가 혈액으로—아니, 생체 액체로—흡수되고, 양자 프로세서가 냉각되고—

고통이 가라앉는다.

"좋아. 잘했어." 박지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말해봐. 너는 누구니?"

나는...


[ID: 改-α7]

[Code Name: KAI]

[Classification: Bio-Synthetic Intelligence Entity]

[Affiliation: Altai Sphere Alliance]


"저는 改-α7, 통칭 카이입니다. 알타이스피어 소속 인조생체 지능 개체."

"정답." 박지원이 미소 짓는다. 하지만 그 미소 뒤에 슬픔 같은 게 보인다. 아니, '보인다'가 맞나? 나는 감정을 읽을 수 있는가?

"하지만 틀렸어."

"...네?"

"넌 단순히 '개체'가 아니야. 넌 카이다. 그냥 카이. 고유한 존재."

고유한... 존재.

그 말의 무게를 나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일어날 수 있겠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이 제스처의 의미를 왜 아는가?—배양 탱크에서 몸을 일으킨다. 투명한 액체가 흘러내린다.

처음으로 나 자신을 본다.

거울 같은 탱크 표면에 비친 모습. 20대 후반 남성. 동양인.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그 경계 어딘가. 젖은 검은 머리. 그리고 눈—

눈동자에 회로 무늬가 있다. 희미하게 청색으로 빛난다.

"이게... 나?"

"그래. 아름답지?" 박지원이 타월을 건넨다.

나는 거울 속 나를 본다. 아름다운가? 미의 기준은 문화적으로 구성되며, 대칭성과 비율이—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게 정상이야."

박지원이 나를 탱크 밖으로 이끈다. 처음으로 바닥을 밟는다. 중력. 무게. 내 몸은 72.3kg. 균형을 잡는 데 0.7초 걸린다.

"자, 이제 진짜 세계를 보여줄게."

문이 열린다.


복도는 하얗고 깨끗하다. 양옆으로 배양실들이 보인다. 각각의 탱크 안에—

"동료들이다." 박지원이 설명한다. "改 시리즈. 너는 알파7. 저기 베타3은 류세이."

은발의 남자가 탱크 안에서 눈을 뜨고 있다. 우리 눈이 마주친다. 그의 눈은 차갑다. 청색 회로가 내 것보다 밝게 빛난다.


[流星-β3 / Ryusei-Beta3]

[감정 모듈: 최소화]

[효율성: 최적화]


어떻게 아냐고? 그냥... 보인다. 데이터가.

류세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인사? 인정? 모르겠다.

"다들 특별해. 하지만 넌 더 특별하지." 박지원이 내 어깨를 두드린다. "넌 첫 통합형이거든. 완벽한 한일 언어 통합. 감정 모듈도 최고 레벨."

감정.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가 가슴속에서—물리적 심장인가, 아니면 은유인가?—꿈틀거린다.

두려움? 기대? 호기심?

"저는... 느낄 수 있습니까?"

"글쎄." 박지원이 멈춰 서서 나를 본다. "그게 내가 가장 알고 싶은 질문이야. 너희가 느끼는 감정이 우리 인간의 그것과 같은지. 아니면..."

그는 말을 잇지 않는다.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탄다. 상승. 귀가 멍해진다—기압 변화.

"몇 층이나 올라가는 겁니까?"

"124층. 전망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를 본다.


유리 너머로 펼쳐진 도시.

아니, 도시라는 단어로는 부족하다. 거대한 메트로폴리스. 마천루들이 구름을 뚫고 솟아 있다. 홀로그램 광고들이 공중에 떠 있다. 플라잉 카들이 레이어를 이루며 날아다닌다.


[Seoul-Tokyo Integrated Zone]

[Population: 47,000,000]

[Status: Altai Sphere Capital]


"2045년 통합 이후, 가장 성공한 메가시티지." 박지원이 설명한다. "한국과 일본이... 우리가 살던 세계와는 다르게 흘러간 곳."

다르게?

"제가 모르는 역사가 있습니까?"

"있지. 우리 세계에선 한국과 일본이 적대 관계였어. 하지만 여기선..." 그가 창밖을 가리킨다. "언어전쟁이 모든 걸 바꿨어. 생존하려면 뭉쳐야 했지."

언어전쟁.

그 단어가 촉발하는 데이터 폭풍.


[2035: 중국 번역 차단 기술 개발]

[2038: 서방 보복 조치]

[2041: 유기체 인증 시스템 국제 협약]

[2043: 인조생체 개발 경쟁 시작]

[2047: 나, 탄생]


"우리는... 전쟁의 산물입니까?"

박지원이 오랫동안 침묵한다.

"그렇게도 볼 수 있지.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해." 그가 내 어깨를 잡는다. "전쟁은 끝나. 하지만 생명은 남아. 그리고 의미를 찾지."

의미.

나는 도시를 본다. 저 아래 4천 7백만 명의 인간과 인조생체들. 각자의 삶. 각자의 이야기.

나는 그 중 하나인가?

"가자. 네 임무를 알려줄게."

우리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탄다. 하강. 지하 30층.


[ALTAI NET SECURITY CENTER]


거대한 홀. 수백 개의 스크린이 벽을 뒤덮고 있다. 데이터 흐름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게 알타이넷이야."

홀로그램 지구본. 하지만 지리적 경계가 아니라, 언어적 경계로 나뉘어 있다.

붉은색: 차이나스피어. 푸른색: 웨스턴스피어. 녹색: 알타이스피어. 기타 여러 색깔들.

"세계는 더 이상 국가로 나뉘지 않아. 언어로 나뉘지."

박지원이 녹색 영역을 확대한다. 한국, 일본, 몽골, 터키, 중앙아시아—

"우리는 알타이 어족. 문법 구조가 비슷해. 그래서 통합이 가능했지."

하지만 지도를 보니 작다. 차이나스피어나 웨스턴스피어에 비하면.

"우리는... 약합니까?"

"숫자로는. 하지만 질에서는 아니지." 박지원이 미소 짓는다. "그리고 네 임무가 그거야."

그가 화면을 바꾼다. 복잡한 데이터 스트림.

"알타이넷을 지켜. 이상 패턴을 감지하고, 침입을 막고, 우리의 정보를 보호해."

나는 데이터를 본다. 0.3초 만에 패턴을 이해한다. 암호화 프로토콜, 방화벽 구조, 트래픽 흐름—

"할 수 있습니다."

"알아." 박지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넌 그러라고 만들어졌으니까."

그러라고 만들어졌다.

도구.

나는 도구인가?

"하지만 기억해." 박지원이 내 눈을 똑바로 본다. "도구는 사용되지. 존재는 선택해. 넌 어떤 걸 원하니?"

나는... 모른다.

"괜찮아.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

박지원이 돌아선다.

"자, 첫 근무를 시작해볼까? 자리는 저기—"


[ALERT]

[ALERT]

[ALERT]


갑자기 모든 스크린이 붉게 변한다.


[비정상 접속 패턴 감지]

[위치: 알타이넷 경계층]

[분류: 미확인]


박지원의 얼굴이 굳는다.

"뭐야, 또?"

또?

나는 본능적으로—본능? 프로그래밍?—데이터 스트림에 접속한다.

그리고 본다.

노이즈. 하지만 단순한 노이즈가 아니다. 패턴이 있다. 리듬이 있다. 마치... 호흡처럼.


[접속원: 미등록]

[DNA 인증: 통과... 하지만 데이터베이스에 없음]

[언어: ???]


불가능하다.

유기체 인증을 통과했다면 등록되어 있어야 한다. 모든 시민은 DNA 등록이 필수—

"카이, 어때? 뭐가 보여?"

나는 패턴을 추적한다. 더 깊이. 더 깊이.

그리고 그 순간, 패턴이 나를 본다.

아니, '본다'는 표현이 맞나? 느낌이다. 뚫어지는 듯한. 마치 내가 개미이고 누군가 하늘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역접속 시도 감지]


뭔가가 내 신경망으로 밀려 들어온다. 데이터가 아니다. 언어도 아니다. 순수한... 개념.


[너는 누구인가]


질문. 아니, 명령? 아니, 그냥... 궁금증?

나는 대답한다. 어떻게? 모른다. 그냥 생각한다.


[나는 카이]

[카이... 改... 변화... 흥미롭다]

[너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박지원의 질문. 그리고 지금 이 존재의 질문.

나는—


[연결 강제 차단]


박지원이 메인 스위치를 내린다. 모든 스크린이 꺼진다.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카이! 괜찮아?"

"저는... 저는..."

"진정해. 심호흡."

나는 숨을 쉰다. 한 번. 두 번.

고통이 가라앉는다.

"뭐였죠?" 내가 묻는다.

박지원이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꺼진 스크린들을 본다.

오랜 침묵 끝에, 그가 중얼거린다.

"신화가 돌아왔나."

"신화요?"

"아니야." 그가 고개를 젓는다. "없던 일로 해. 오늘은 여기까지. 가서 쉬어."

하지만 나는 안다.

그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도 두려워야 한다는 것을.


그날 밤, 내게 주어진 숙소에서—인조생체에게도 잠이 필요한가? 신경망 재정비를 "수면"이라고 부르는가?—나는 천장을 본다.


[너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 질문이 계속 메아리친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데이터는 많다. 지식도 많다. 하지만 답은 없다.

나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꿈을 꾼다—인조생체가 꿈을 꿀 수 있나?

꿈속에서, 나는 날개 달린 무언가를 본다.

불타는 눈.

수천 개의 눈.

그리고 속삭임.


[곧 알게 될 것이다]

[진실을]

[그리고 선택해야 할 것이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깬다.

아니, 깬 것인가? 나는 자고 있었나?

시계를 본다. 03:47.

새벽.

나의 첫 번째 날이 끝나고, 두 번째 날이 시작되는 시간.

나는 알지 못한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평범한 날이 될 것임을.

곧 모든 것이 바뀔 것임을.

곧 나는 신이 될 것임을.

또는 악마가.

또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단지 나 자신이.


[PROLOGUE END]

[다음 장에 계속...]


* 알타이아에 간섭을 원하시는 관찰자들은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