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혼자 잘하던 나에 대한 고찰
그이에게 말을 꺼내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지만 참지 않았고 내 바람을 고백했다. “혼자 한 2주 정도 여행을 다녀와도 될까? 진짜 진짜 저렴한 티켓을 찾았어”. 일을 그만 둘 날을 받아놓고 항공권을 뒤지던 중 12월 초 영국항공 반짝 세일을 발견하면서 일이 커진 것이다. 교육계에 종사하는 나는 학기를 끝내지 않고 고민 끝에 퇴사를 결정했고 더 나아가 솔로트립을 계획했다. 용감했고 혹은 조금 무모했다고도 볼 수 있는 이런 결정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때는 잘 알지 못했다.
물론 그이 얼굴은 바로 일그러졌다. 송아지 같은 눈을 끔뻑거리며 분명하게 싫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동종 업계에 근무하는 그에게 애당초 학기 중 열흘 이상의 휴가란 게 무리인 걸 알았지만 어차피 유럽 항공권이 60만 원 인걸 발견한 순간 미안하지만 그이는 이미 안중에 없었다.
@주책맞게 자랑스러웠던 솔로 항공권 confirmed
@영국항공/런던 경유행
그를 홀로 두고 호기롭게 비행기에 올라탔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제일 먼저 고른 영화는 ‘Me before you‘ 피식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갑자기 별 이유도 없이 유부녀가 열흘 이상 집을 나와 그이는 안중에도 없이 유럽여행을 하겠다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혼자 뭐든 잘한다는 소릴 듣고 자라긴 했다. 대학등록금도 내가 벌어 다녔고 어학연수 비용도 내가 벌어 다녀왔다. 독립적이라는 소리를 하도 들어서 내가 상당히 그러한 줄 알았다. 그래서 결혼하고도 혼자 영화를 보러 나가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한 맥락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러시아 상공 어디 즈음
두 번째 영화 500일의 Summer 가 끝나고 러시아 상공 어디 즈음을 통과하면서 두통이 시작됐다. 장시간 영화를 본탓인지 눈에 피로가 몰려왔다. 워낙 여행을 좋아하고 기내에서의 시간도 애정하는 터라 남은 비행시간을 자주 체크하는 편은 아닌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분명 먹고 자고 놀고 앉았는데 8시간 근무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힘이 들고 지루함 마저 몰려왔다. 더해서 그이가 1+1 마냥 따라다니는 걸 개운치 않아 했으면서 솔로여행을 시작하고 대여섯 시간 만에 기대 쉴 그이의 어깨가 몹시 그리웠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