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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데 오늘 Jan 23. 2021

앨라배마에 별이 떨어졌지 ​

By Stars Fell on Alabama

Stars Fell on Alabama


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들이 많이 있다.

빨간색과 노란색, 피자와 고추장, 나란 사람과 내 직업...


어제 일주일간의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 

한 시간 반 정도의 휴식 시간, 아주 오랜만에 넷플릭스를 열었다.


예전에는 신작 영화를 거의 모두 챙겨 볼 정도로 영화를 즐겼지만, 

영화에 완전히 흥미를 잃게 된 지 벌써 몇 해가 지났다. 

그렇게 된 이유에는 내 나이도 한몫한 것 같다.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는 나이가 돼버린 탓이다. 

이젠 어떤 소재의 영화든 간에 내 흥미를 더는 끌지 못한다. 


하지만 출장을 마친 기차 안에서는 마치 목이 마르면 몸이 물을 찾듯이 

잠시라도 내 머리를 비워줄 뭔가가 필요함을 알았다. 

"올해는 일을 열심히 해볼 테야."라고 했던 내 연초 계획이 

작심한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바로 실현되는 기적 속에서 

나를 따라 최선을 다하던 내 몸도 지쳐있었던 것이다.


넷플릭스.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넷플릭스 아이디를 두 개나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들여다본 적은 거의 없었다. 

이건 뭐! 지갑 속에 든 쓸모없는 동전이랄까?


최근 넷플릭스 영화부문 1위는 생소한 제목의 "아웃사이드 더 와이어"였다.

1위라고 하니 눈길이 갔고, 액션 영화라 하니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겠다 싶었다.

잠시 잡생각을 내려놓고 말이다.


Outside the wire. 

우리말로 "선을 넘어서" 정도의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요즘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이 몰입과 기선 제압을 위한 전투 액션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상당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선택을 잘했다.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그렇게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의 시간은 

골치 아픈 일들로 가득 차 있던 머릿속을 차츰 비워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화약 냄새 진한 총성 속에서도, 

어쩜 그렇게 태평할 수가 있어? 싶을 정도로 

내 눈꺼풀은 아래로 아래로... 

그리고 어느덧 귓속을 울리던 총소리가 잠잠 해져 갈 때,

꿈과 현실의 경계쯤에 다다랐을 때쯤

아주 익숙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엘라 피츠제럴드와 루이 암스트롱의 콘서트에 와있는 것일까?

강당을 울리는 암스트롱의 거친 목소리,

피츠제럴드의 깊고 부드러운 멜로디.

재즈 명곡 중 하나인 Stars fell on Alabama 가 그들의 목소리를 타고 강당을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핸드폰이 손에서 떨어지려 해  깜짝 놀라 깨어나며 손을 움켜쥐었다.

영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고 강당을 걷는 주인공과 그 배경을 타고 흐르는 그 음악.


"Stars fell on Alabama"


사람을 닮은 로봇과 스마트 전투기술, 그리고 조종사 없이 하늘을 누비는 드론.

그 첨단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재즈 음악이라...

지옥의 묵시록 폭격 장면에 등장하는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과도 같은 것인가?

하지만 그 영화의 장면과 배경음악은 사실 너무나 잘 어울렸었는데...

최첨단 로봇과 지금은 구시대의 유물쯤으로 여겨지는 20세기 재즈의 조합이라.

선을 넘는다는 영화의 제목과 함께 영화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는 음악의 배치, 

여기에는 분명 어떤 의도가 있겠지? 란 생각을 하며 잠시 음악 감상을 했다.


그리고 사람인 줄 알았던 인물이 로봇이었음이 드러나던 순간, 

어울리지 않는 배경음악을 사용한 이유와 함께 이 영화의 주제를 알 것 같았다.  


이 영화는 어울리지 않는 두 조합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로봇과 인간, 존재감과 상실감, 진실과 거짓,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역시 필요 없는 설정은 없는 법이다.

그리고 그 주제에 힘을 실어 준 음악 Stars fell on Alabama. 

작년 평택으로 출장을 다닐 때 무척이나 즐겨 듣던 음악이기도 하다.


이 곡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 곡은 1833년 앨라배마 하늘에 펼쳐졌던 유성우를 소재로 만들어진 곡이다.

이 곡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를 예전에 번역해 둔 것이 있는데

번역 당시 이 곡의 배경은 배제하고, 곡의 느낌만을 살려 

그리고 개인적 성향까지 살짝 포함하여 번역했던 기억이 났다. 






앨라배마에 별이 떨어졌지 

(Stars Fell on Alabama)


우리는 꿈같은 인생을 살았지.

하얗게 세버린 머리에 키스를 했어.

그 순간 앨라배마에 별이 떨어졌지.

어젯밤에 말이야.


그 황홀함, 잊을 수 없어.

너의 눈빛은 부드러웠지.

그 순간 앨라배마에 별이 떨어졌어.

어젯밤에 말이야.


난 상상도 해 본 적 없었어.

이토록 멋진 걸 말이야.

아무도 갈 수 없는 요정의 땅

그 한가운데엔

너와 나 단둘뿐이었어. 그렇지?


내 심장은 망치처럼 뛰었고

내 팔은 너를 꼭 감싸 안았지.

그 순간 앨라배마에 별이 떨어졌어.

어젯밤에 말이야.






정작 원곡의 내용이 이런 내용은 아니었지만, 

내 의도적인 의역을 통해서 어느 황혼을 맞은 부부가 느낄 법한 사랑에 대한 가사가 돼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번역해서인지 내 마음에는 더욱 와닿았다.


그러고 보니 사랑과 노년도 세상에 존재하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 중 하나다.

누군가 우스개로 그러지 않나.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냐."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생각한들 정작 세상은 개의치 않는다. 

그런 조합들은 언제나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알던 진실조차 언제나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배척하고 있는 그런 가치들일 수도 있겠다.

이는 더 나이 들어서 세상의 진실을 더 가까이 볼 수 있게 되는 날 보이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때가 오면 삶과 죽음 같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조차도 죽음의 입장에서 이해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 배치된 하나의 음악이 또다시 생각을 만들고 있다.

생각의 고리는 끝이 없다. 언젠가 이 생각이 멈추는 날도 있겠지만 그때까지는 계속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의 고리로 인해 인생은 피곤하다.

사실은 그냥 살면 되는 것을.


오늘도 풋풋한 영화와 그곳에 사용된 음악의 미스 매치로 인해서 인생의 또 다른 피곤함을 얻었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특별함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령 쓴 것과 단것을 9:1로 조합하면 어떤 맛일까? 같은 것 말이다.

답이야 내 맘대로 인생의 맛이라 칭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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