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EMILY DICKINSON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게 되는 이들은 슬픈 감정에 매몰되기 쉽다.
그래서 애도 기간 중에는 집안일 같은 일상적인 일로 정신없이 지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러다 한 순간 생각의 끈을 놓쳐버리기라도 한다면 묶어 두었던 감정들이 일시에 폭발하며 엄청난 슬픔에 사로잡혀 버리기도 하지만, 그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 바쁘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 슬픔을 이기는 정도일 것이다.
에밀리 디킨슨이 살았던 19세기 후반은 지금처럼 장례식장을 이용하는 문화가 아니었다. 집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장례를 치르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였다. 그래서 장례 당일 아침은 이를 준비해야하는 가족들에게 매우 부산한 아침인 것이다. 고인을 애도할 시간도 많지 않았다. 손님을 맞이하고 장례를 준비하고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는 등 바쁜 시간을 보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에밀리 디킨슨은 이런 부산스러운 모습을 지구에 존재하는 일중에서 가장 엄숙한 행위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집안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바쁜 몸짓 속에 고인에 대한 애도와 함께 참기 어려운 슬픔이라는 극단적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 묻어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일 것이며, 다르게는 시의 중의적 표현과도 같이 벽난로를 치우고 불필요하게 어질러진 물건들을 다시 서랍 속에 넣는 행위에서 죽은 이에 대한 감정의 매몰에서 벗어나기 위한 처절함마저 보였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 시인은 heart(심장) 와 hearth(난로)가 유사 발음 단어라는 점을 이용해서 장작이 다타버린 벽난로를 부지런히 쓸어내는 모습과 슬픔을 감추려는 사람의 마음을 단 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
내세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사랑도 넣어두고 자신의 심장도 치워버린 채 바쁜 일상에 몰두하는 엄숙한 행위를 통해 슬픔을 극복해 나가는 여느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살아있는 한 살아야 한다는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이며, 죽음은 먼저 간 이를 다시 만나는 통로가 되리라는 오래 된 믿음을 바탕으로,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마저 전하고 있는 시이다.
에밀리 디킨슨
죽음을 마주한 아침
바쁘게 지내는 것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일 중에서 가장 엄숙한 일 -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은
심장을 쓸어 올리고
사랑을 넣어두네
다시 만날 때까지 -
BY EMILY DICKINSON
The Bustle in a House
The Morning after Death
Is solemnest of industries
Enacted opon Earth –
The Sweeping up the Heart
And putting Love away
We shall not want to use again
Until Eternit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