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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데 오늘 Mar 07. 2021

달은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BY EMILY DICKINSON

달은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에밀리 디킨슨     


달은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

여전히황금빛 손길로 

아이처럼 순진한 그를 이끄네 -

늘어선 백사장을 따라서 -    

 

그리고 제 분수를 아는 바다는 -

그녀의 눈길에 순종하여 

마을 앞으로 아주 살짝 왔다가 -

살며시 사라지네 -     


세뇨르당신의황금빛 손길 

그리고 나의 – 멀리 떨어진 바다 

사소한 지시조차 따르게 하는

나를 압도하는 당신의 눈빛 -




The Moon is distant from the Sea     


BY EMILY DICKINSON     


The Moon is distant from the Sea 

And yet, with Amber Hands 

She leads Him – docile as a Boy 

Along appointed Sands      


He never misses a Degree 

Obedient to Her eye 

He comes just so far – toward the Town 

Just so far – goes away      


Oh, Signor, Thine, the Amber Hand 

And mine – the distant Sea 

Obedient to the least command

Thine eye impose on me 




The Moon is distant from the Sea, 달은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제목만으로는 어떤 내용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이 시는, 시쳇말로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명제를 주제로 한 시인 것 같다. 이 주제는 "사랑에도 엄연히 갑을의 관계가 존재하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은 땀을 흘려야 한다"라는 철학자 강신주의 말과도 같은 맥락으로써, 사랑하기 때문에  달에게 운명적으로 순종하고 있는 바다의 모습에서 그런 모습이 엿보인 것이다.  

이 시는 달의 인력이 바다의 조수를 만든다는 천문학적 원리에 착안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의 관계를 이에 비유해 적은 시로써, 19세기도 과학이 발전된 시기였고 에밀리 디킨슨도 그녀가 7년간 다녔던 Amherst Academy에서 고등교육과정의 과학을 배웠기 때문에 누군가와의 사랑에 있어서 일방적으로 약자의 입장에 처해있는 자신의 처지를 달과 바다의 관계라는 메타포를 이용해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첫 번째, 두 번째 스탠자에서 달과 바다라는 자연의 이치를 설명하고, 세 번째 스탠자에서 현실 세계의 자신을 되돌아보는 형식을 지닌 이 시는, 연인의 작은 몸짓이나 눈빛 하나에도 가슴 떨리고 숨죽였던 에밀리 디킨슨의 사랑의 밀도와 그녀가 가진 사랑의 깊이만큼이나 작은 신호 하나 놓칠 수 없었던 그녀의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아름다운 시이다.

시를 적을 당시 아직은 어린 나이였을 시인에게 있어서 그녀를 힘들게 했던 사랑은 달과 바다처럼 멀리 떨어져 있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해 있던 것 같다. 게다가 시에서 "달은 바다에 드리운 금빛 손길로 파도를 만드는 것이고, 달을 사랑하는 바다는 달이 이끄는 데로 따라야만 하는 숙명 때문에 마을로 갈수도 없는 삶을 반복하며 살아간다."라고 말하고 있는 걸 보면, 사랑에 깊이 빠져버려서 그녀 스스로는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 그녀가 파도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얼마나 큰 무기력감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A Moonlight View of the Bosphorus_Ivan Aivazovsky_보스포루스의 달빛_이반 아이바좁스키

이 시는 에밀리 디킨슨의 리즈시절인 이십 대 후반과 삼십 대 초반(1858년~ 1864년) 사이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는 이 시가 5개의 주제로 나누어진 시집 "The Complete Poems of Emily Dickinson" (1924)의 세 번째 파트인 사랑 편에 실렸다는 점과도 무관하진 않을 것이며, 또한 이 시가 보여주는 애증이 어느 러브레터 못지않게 농밀하고 자극적이며, 특히 남북전쟁(1861년~1865년)이 한창이던 어지러운 시절에 사랑 시를 적을 만한 나이는 누구나 사랑에 민감할 나이인 이십대와 삼십대 그 시절뿐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이쯤 되면 과연 에밀리 디킨슨을 그토록 애태우게 했던 그 대상이 누구였는지 궁금해지는데, 이는 미국인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 역시 사랑이란 주제가 가지는 파급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실로 대단한데, 그것이 혹여 불륜이라면 이야기의 소재로써 더욱 가치가 생긴다. - 그래서 에밀리 디킨슨 박물관의 학자들은 이 시에서 달(Moon)로 비유되고 있는 그녀의 세뇨르(Signor)가 누구였는지 연구하였고 그 결과 그녀의 아버지 에드워드 디킨슨(Edward Dickinson)의 오랜 친구였던 오티스 필립스 로드(Otis Phillips Lord) 판사가 지목되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친구인데다가 유부남이며 무려 18살 이란 나이 차이를 뛰어넘는 사랑이 그 당시로써도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이에 대한 근거로 에밀리 디킨슨 사후에 발견된 그와 주고받았던 편지를 제시하고 있었는데, 이는 편지에 적힌 존경의 표현이 달리 보면 사랑의 표현으로 읽힐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 확실한 건 아닌 것 같다.

이처럼 정통한 학자들의 연구를 부정하는 이유는 다음 두 가지 관점 때문인데,

첫째, 로드 판사는 1843년부터 1877년 그녀의 아내가 죽을 때까지 원만한 결혼생활을 해왔고 그가 에밀리 디킨슨의 부친 사망 후에는 그녀의 정신적 조언자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가족과도 같은 존재였을 거라는 점에서 그에게 보내는 편지에 적힌 존경의 표현이 가족 간의 사랑 표현처럼 거침없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는 점이며,

둘째, 이 시를 적었던 이삼십 대의 에밀리는 그 당시 유부남 목사를 짝사랑하기도 했었고 오빠의 아내인 시누이와 사랑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 대상이 누군지는 본인 외에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지만 그 시절 그녀의 관심사로서 적절해 보이는 인물은 늙은 로드 판사보다는 동갑내기인 오빠의 아내 수잔 길버트(Susan Huntington Gilbert)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만일 연구자들이 단지 세뇨르(Signor)란 단어의 남성성으로 인해 그녀 주변에 있던 남성 중에 그 대상을 찾으려 한 것이라면, 이는 동성 간의 애정행각에 있어서도 남녀 역할 구분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처사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이 시의 특징 중 하나는 그녀의 시 "I Felt a Funeral in my Brain"등과 함께 노래로 만들어진 몇몇 시중에 하나라는 점인데, - 많은 가수와 합창단들이 이 시를 즐겨 부르고 있다. - 이처럼 이 시가 노래로까지 만들어지게 된 이유는 그만큼 이 시가 시인의 천재적인 서사와 감수성을 엿볼 수 있는 시이기도 하지만 시의 배경에 깔려있는 달과 파도와 바다 등 판타지적 요소와 마법의 세계를 보는 듯한 분위기, 게다가 그녀의 애절한 짝사랑이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후세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가사로 한 노래

"The Moon is distant from the Sea"

Song by Westlake Girls' & Boys' High Schools

https://sbmp.com/SR2.php?CatalogNumber=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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