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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story Oct 05. 2022

무엇이 되기 위해 애쓰는가

나는 무엇이 될 상(相)인가

 열여섯,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막연한 관계가 된 친구가 있다. 

그로부터 이십칠 년이나 친구라는 이름으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지만 더러 싸우기도, 그로 인해 한동안 연락을 안 한적도 꽤나 있었다. 그런 친구는 이제 나의 생활기록부 같은 존재로 함께 나이 들어가지만 한편으론 오랜 기간 담백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기도 하다. 얼마 전 그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앞으로의 삶의 방향과 바람을 이야기하던 도중 대뜸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넌 지금 뭐가 되어 있는 것 같냐?"

"무엇이 되었느냐고?"

"경제활동을 시작하고 나름의 성장은 한 것처럼 보이는데, 정말 뭐가 된 거냐?"

"....."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이 질문을 오늘에서야 정리를 해본다. 그래서 무엇이 되었느냐고? 


진정한 내 삶을 사는 주체적인 사람이 되었다. 


 이보다 더 큰 자유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성공한 존재가 되어 국가와 사회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라온 시간은 많은 부분 나의 삶에서 유용과 효율을 선물했다. 다만 힘들게 느껴졌던 당시 어느 한 시점에, 내게 충분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누군가가 '무엇이 되기 위해 애쓰고 싶은가'라는 질문과 함께 삶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태도와 방향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물어봐 줬더라면 나는 지금 무엇이 되어있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그런 아쉬움이 너무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그때의 나와 같은 이들을 한 명이라도 대면할 때마다, 난 전력을 다해 그들의 삶과 성장을 위해 조력하는 시간들을 보내왔다. 때로는 이 또한 소극적인 열변에 불과할 때도 있었겠으나, 궁한 마음으로 구석에 몰려있다고 여기는 소중한 젊은 이들에게는 분명 위로와 위안과 작은 힘이나마 되었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양한 진로의 방향이 있고 가끔은 그것이 나의 색깔과는 다소 다른 옵션이라 하더라도 좋은 연을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다. 이에 대해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을수록, 두려움의 크기는 커질 수밖에 없다. 가능성에 대한 유연한 사고가 나를 지키기도, 때로는 다시 못 올 좋은 기회의 문으로 인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택지가 줄어들수록 제한적인 사고를 할 수밖에 없고 성급한 선택과 합리화로 자신의 가치를 퇴화시키는 안타까운 선택을 하기도 한다.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여유가 있다면, 지금 내가 괴로운 이유를 생각보다 쉽게 날려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의 노동이 특정 기업에 소속되고 응당 급여의 반대급부로 행하는 일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해왔다. '일을 해서 안정적인 급여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의심 없이 받아들이던 시대를 지나온 나로서는 이만한 진리가 없다고 여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다양해지면서 근로소득만이 유일한 우위를 점했을 시기는 역사 속에서나 기억될 과거가 되었다. 

 나의 강점을 적극적으로 찾고 그것을 통해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부각할 수 있어야 오랜 시간 지치지 않고 즐기며 의미도 찾는 노동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건 몇 번의 이직을 두고, 언제까지 이런 패턴이 반복될 것인가를 고민하던 바로 그 무렵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함은 존재한다. '생각대로' 되지 않을 경우를 생각하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긍정적인 판단에 힘을 실었다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되는 방법'은 반드시 찾게 된다. 내가 먼저 내려놓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다가오지 않을 내일에 대한 걱정도 마찬가지다. 일어나지도 않은, 정말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에 대한 우려와 근심에 우리는 스스로를 당연하게 내어준다. 그러다 보니 방법을 찾는 것보다, '더러운 똥'을 피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일면 현명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나의 '걱정'대로 사건이 전개될 개연성이 있는 선택지는 늘 회피의 대상이다. 기회를 품고 위기의 탈을 쓴 회피의 대상이 얼마나 우리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멀어졌는지를 알게 된다면, 어제보다 지혜로운 선택을 하기 위해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진정한 내 삶을 사는 주체적인 사람이 되어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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