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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story Oct 09. 2022

활어(活魚)와 같은 글을 꿈꾸며

 한 가지 생각에 빠져있다 보면 그것과 관련된 생각들이 일상 곳곳에서 떠오른다. 그것은 지금, 현재, 오늘에 집중할 수 있도록 나에게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기도 하는데 오늘 새벽이 그러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이며 계속 고민한다. 세상에 내어놓았을 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로 성장하기 위해 부족함을 쌓아가는 것은 진정 설레는 일이다. 그렇기에 실패에 가까운 부족함이 하루, 이틀, 그렇게 일 년이 쌓이면 어제보다 오늘이 나을 것이고 내일은 더 희망적인 상태에 다다를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두 시간 가까이 이런 생각을 나름의 뼈대를 갖추고 써내려 갈 수 있었던 생각의 등장에 감사한 아침이다.



1. 몰입하여 쓰기


 영화 ‘소울’에서 주인공 조(Joe)가 피아노를 치며 오직 이 우주에 혼자만이 존재하지만 꽉 채울 무언가를 뿜어내며 중력을 무시한 듯 피아노와 혼연일체 되어 연주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진정한 몰입 상태이며 영화에서는 이를, 육체와 영혼 사이의 공간(the Zone)이라고 한다. 단순한 집중과는 차이가 있다. 물론 몰입을 위해 집중은 필수적인 단계이지만, 최상위 단계인 무아지경의 상태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집중만으로는 불가능하다.

 8년 여(1999~2006)에 걸쳐 장기간 시즌7까지 이어진 미국 NBC의 ‘웨스트 윙(the West Wing)’의 시즌5의 4화, ‘한(Han)’이라는 에피소드의 중심에는 한 북한인 피아니스트가 있다. 미국 공연을 앞두고 백악관에 초청받아 공연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피아니스트는 자신의 CD에 망명을 원하는 메시지를 수행원(사실상 감시원) 눈치 채지 못하게 미 대통령에게 전달하지만 외교적 현안 문제로 거절을 당하는 에피소드이다. 이 스토리 가운데 에피소드의 제목인 한()과 관련된 장면이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남아있다.



적절한 영어 번역이 없더군. 마음의 상태랄까, 영혼의 상태지. 어떤 슬픔이야. 눈물조차 안 나올 깊은 슬픔이지.



 피아니스트의 연주에는 어떤 슬픔이 서려 있었고 한국에서는 그것을 ‘한()'이라고 부른다. 그게 개인적인 것이든 국가사회적인 것이든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기에 사전에서조차 명확히 그것을 표현하는 영어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대화가 이어지는 장면이다. 망명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 피아니스트의 눈빛에서도 그것이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피아노 연주에서 ‘한’이 느껴지기 위해서는, 그것도 연주자 본인이 아닌 관객들 모두가 그 감정을 느끼고 빠져들기 위해서는 연주자의 집중 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삶의 세월 동안 마주했던 아픔, 고통 그리고 슬픔을 아우르는 영혼이 건반 위를 넘나 들어야 하고, 그 정점이 연주자의 손 끝에 결집되어 있을 때 진정한 ‘몰입’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생각의 깊이가 있는 글과 그렇지 못한 글을 독자는 명확히 구분해낸다. 어제 읽은 손원평의 <<튜브>>가 나에게는 전자에 해당하는 작품이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의 삶으로 내가 빨려 들어가 몇 번을 훌쩍였는지 모른다. 내 삶이 허구인 주인공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는 모든 존재가 경험하는 희로애락에는 공통분모가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기에 나는 김성곤 안드레아에 흡수되었고 아내 란희의 절규에 가까운 울부짖음에 나의 아내가 떠올랐던 것이다. 내가 그 공간, 그 상황, 바로 그 인물이 되었던 짧은 순간이었다. 작가가 묘사한 공간의 이미지, 주인공의 표정과 행색 이 모든 것이 생생하게 나의 머릿속에 그려졌고 난 소설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몰입하여 읽은 주체는 나이기에 스스로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작가의 혼이 담겼을 창작물의 완성이 그 시작이라고 믿는다. 피아니스트의 연주처럼 말이다.




2. 말하듯이 쓰기


 이건 비단 나의 생각만은 아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말하듯이 써야 한다고 강원국 작가가 이야기했다. 이런 글쓰기가 중요하다 생각했기에 그는 <<나는 말하듯이 쓴다>>라는 책도 썼다. 말하듯이 쓴다는 것은, 말 그대로 작가가 내 옆에서 지금 읽고 있는 페이지를 직접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도록 쓰는 것이다. 말이라는 것이 현재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가정할 때 글보다 생동감이 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글을 읽으며 이런 팔팔한 생명력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상대적으로 말하듯이 글 쓰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던 책은 (주)바이브컴퍼니(구 다음소프트) 송길영 부사장의 <<그냥 하지 말라>> 였는데, 읽는 내내 송길영 부사장의 화법과 말투가 지속적으로 오버랩되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글을 보며 작가의 실제 목소리가 입혀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작가가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었고 방송을 비롯한 매체에 자주 등장하였으며 독자인 내가 그러한 매체물 전반에 다수 노출되어 있었으니 그렇게 느끼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본 이들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전반에 걸친 문체에서 작가의 호흡이 느껴진다. 글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끝맺음을 하기 전까지 만연체로 주욱 이어나갈 수 있다. 내가 처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반복되었고 고치기 힘들었던 실수였다. 중요한 사실은 언제 끝맺어야 할지 그 시점을 판단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중언부언은 피할 수 없고 형식적인 글쓰기에 다름 아니며 써지는 대로 생각하게 되니 글은 결국 중심을 잃는다. 글이야, 방귀야? 하는 상황에 이르고 나서 나는 원점으로 돌아와 모든 것을 지우고 새로 시작했다.

 말은 다르다. 호흡이 있고, 호흡이란 것은 한계가 있으니 어느 순간 맺어야 한다. 그래서 말하듯이 쓰게 되는 글은 긴 문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고 독자의 입장에서는 수월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다. 짧은 호흡이지만 생명력이 있는 글은 머릿속에 더 오래 남는다. 작가도 실제로 아무도 없는 집필실에서 혼자 중얼중얼 떠들어 가면서 한 자 한 자 써내려 가지 않았을까 하는 재밌는 상상도 해봤다. 독자의 여운이라고 하는 것은 말하듯이 쓰기의 값진 결과물일 것이다.




3. 수정하며 쓰기


 수정을 거듭하는 글의 지향점은 단순 명료함이다. 누구든 읽기 쉬워야 한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념에 비추어봐도 우리 글은 쉬운 것이고 그래야 한다. 적어도 우리 민족에게는 말이다. 작가의 유능함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활어와 같은 글은 나아가는 방향과 목적이 분명해야 하고, 읽는 이들도 유사한 지점에 다다를 수 있어야 한다. 읽은 후의 소감은 별개의 것이지만 읽는 순간 글에서는 작가의 생각이 어떤 형식으로든 묻어나야 한다.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생각이라면 읽는 이들로 하여금 유추해 나갈 수 있을 정도의 내용들로 쓰여야 한다. 간단명료하다는 것은 쓰는 이의 생각이 이미 정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 때를 떠올려보면 꼬인 매듭을 풀기 위한 부수적인 설명들을 덧붙이느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글’ 이 된 상황이 많았다.


 무엇을 쓰고 싶은지 방향이 서지 않은 상황에서 글을 쓰다 보면 이런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쓴 글을 계속 읽어가며 수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나의 생각도 정리된다는 사실이다. 기본 바탕이 되는 글을 쓰기 위한 생각들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상태라면 일단 써 내려간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나에게는 그렇다. 새벽 5시 33분, 내가 쓰고 싶은 주제에 대한 생각들이 떠올라 눈도 채 다 뜨지 못하고 방으로 달려왔다. 이러한 생각들은 휘발성이 있기에 일단 주욱 써 내려간다. 문법적으로 맞는지 여부를 생각할 시간이 없기에 일단 쓰고 본다. 수정은 언제든 가능하기에 걱정 없이 써 내려갈 수 있고 이는 쓰는 이들에게 가장 안도감을 주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생각의 정리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수정 작업은 진척 없이 답답함만 안겨줄 가능성이 크기도 하다.



 생명력 있는 글쓰기를 위해서 필요한 능력은 사실 이보다 많을 것이다. 읽기의 단계에서부터 시작한다면 어떻게 읽어야 살아있는 글을 쓰는가 라는 주제에서부터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이 글은 지금 내가 집중해서 개발해야 하는 나의 영역에 대한 것 위주로 간단하게 세 가지로 정리한 것이다. 하고 보니 소름 돋게도 우리의 인생도 이 틀과 유사하다.

 살아있는 진짜 나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현재 나의 영역에서 집중과 몰입을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그것들을 누군가에게 생생하고 진실된 언어로 전달하여 깊이와 감동을 주며, 그 과정에서 필요한 피드백을 반복하여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보완하며 나아가야 한다.


 글쓰기의 과정과 삶의 과정은 다르지 않으며, 쓰는 사람은 글이 아닌 인생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크나큰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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