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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story Oct 11. 2022

잃어버린 몰입의 추억: 음악

Love Poem 이 불러온 이승환의 'B.C 603'

 중학교 1학년 무렵, 당시 구경하기도 힘들었던 AIWA 워크맨을 선물 받았다. 전부 금장으로 디자인된 신상품이었고 반질반질한 가죽 케이스로 덮여 있었는데 더 중요한 건 이 물건이 할아버님의 일본 출장길에 딸려온 유일한 선물이었다는 것이다. 자기 전에도 침대 옆에 두고 잘만큼 난 음악과 가까이 있었다. 비슷한 시대를 지나온 이들은 공감할 법한 이야기일 텐데,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돌려 듣던 테이프가 늘어날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다. 혼자 걸으면서, 밤에 잠들기 직전까지, 듣고 싶은 노래를 원도 없이 들으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아마도 무언가에 몰입했던 첫 번째 대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의 첫사랑을 제외하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1991년도, 그러니까 국민학교 5학년 당시 극기훈련이라는 다소 과장된 제목으로 포장된 수련회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친구의 워크맨을 빌려 무한 반복했던 이승환의 'B.C 603'


출처: Melon 이승환 1집 앨범 B.C 603


89년도에 발매된 이 앨범을 꽤 시간이 지난 후에 듣게 되었고, 수록곡 중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에 매료되어 한동안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초등학교 때 첫사랑이었던 친구는 가사의 주인공이 되었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갖은 폼은 다 잡으며 창밖을 내다보고 음악에 취했다. 난 늘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거나 라디오를 듣는 학생이었다.


덕분에 많은 영향을 받은 나의 감수성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짤막한 사랑 글들을 끄적일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당시로보면 진귀한 이런 능력 탓에 친구의 고백 편지를 대필해 주기도 했고 고등학교 1학년 무렵부터 인기를 끌었던 A5 크기의 6공 다이어리 속지 안에 하나 둘 그런 글들을 늘려가기도 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동안 즐겼던 따뜻한 습관들은 오래된 서랍장 속으로 들어가 이사 가기 전까지 빛을 보지 못하였다.



 그동안 난 충분히 이성적인 사람이 되었고, 가끔씩 술 한잔을 해도 지난 시간들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다. 철없지만 순수했고 오직 내가 원한 것들만을 가까이에 둘 수 있었던 그때가 비현실적인 삶의 찰나 같은 한때라 단정짓게 된 어른 아닌 어른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단조로워지고 메말라가는 감정은, 많은 시간 숫자를 들여다 보는 나의 일을 더욱 능숙하게 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도와주었고 그렇게 난 40이라는 숫자에 친숙한 시간들을 여러 해 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가끔은 그때가 그립다. 그리고 B.C 603을 무한 반복해도 스며드는 처음의 감정 대신 지난날의 회상뿐이라는 사실이 서럽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도 나이 들지 않는 감수성을 지키며 살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회상이 불러온 지난 기억들과 지금의 나와의 괴리로 인해 흐르는 눈물은 '아직은 괜찮아'를 연신 외쳐주고 있기에 지금의 감정에 새로운 몰입을 시도해 본다. 


30여 년 전 어느 가을 날, 버스 뒷 좌석 구석에 앉아 바라보던 가을 풍경과 여전히 철들지 않고 성장할 열두 살의 나를 가슴 속에 간직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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