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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story Jan 21. 2024

나를 위해 일한다는 것

1. 금요일 오전, 팀원과 잠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본인이 가고자 하는 커리어의 방향에 지금의 조직이 도움이 되는 곳인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누가 봐도 성실하고 열심이었던 그였기에 이런 생각이 조금은 놀라웠다. 오랜 시간의 고민으로 힘들었던 속내를 내비친 그는 어린 나이였지만 미래에 대한 뚜렷한 생각과 계획을 갖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일에 대한 로열티는 스스로를 향해 있었다.

 


2. 오후에 외근이 있어 업체의 팀장과 만났다. 업무적인 미팅이 끝나고 비슷한 연배에 있던 그와 '라테' 시절의 첫 직장 얘기를 나누게 됐다. 나의 퇴근시간은 팀장이 퇴근하는 시간이었고, 팀장의 말은 곧 법이었다. 조직의 결정에 개인의 생각과 취향은 고개 들지 못했으며, 나의 영업적 성과는 언제나 팀장의 업적이 되었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문화였지만 당시에는 의리가 있었고 정이 넘쳤음을 인정했다. 그런 끈끈함이 있었지만 스스로를 희생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일에 대한 로열티는 철저하게 조직을 향해 있었다.

 


3. 집으로 돌아가는 길, 4호선 서울역 지하철 3-2 칸에 함께 탑승했던 많은 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들도 어느 곳에서든 자신의 역할들을 해나가고 있을 텐데 어떤 관점으로 자신의 일을 정의하고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을까. 한동안 깊이 생각하다, 저만치 떨어져 있던 20년 전의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순수했으나 생각이 깊지 않았고 부모님의 말씀과 안정을 중요시했으나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던 그 시절의 나와 오늘의 나 사이에 채워진 불편한 진공상태에 과거의 기억들이 부유했다.

 


4. 현재 내 나이를 기준으로 60세까지 조직에 소속되어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앞으로 남은 시간은 17년. 환경의 해체와 변화의 속도를 감안하면 현실성이 매우 떨어지는 가정이긴 하다. 긴 인생의 관점에서 볼 때 90세까지 생존해 있다는 희망찬 가정을 하게 되면 47년의 시간, 즉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이 남아있는 셈이다. 17년을 조직에 몸담고 있다 해도 이후 30년을 '무언가'를 하며 가계경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소리다. 국민연금이 일부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물가상승률과 앞으로의 생활비에 견주어 봤을 때 손자 손녀들의 용돈 정도의 수준에 수렴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누구든, 언제든 홀로 설 수밖에 없다. 매월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조직에서의 소속감은 끝이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를 위해 일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5. 이러한 태도를 갖는 순간, 일의 의미가 달라진다. 내가 조직에 존재하는 이유가 분명 해지며 개인의 성장과 조직의 목표달성을 연결시키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완벽한 직장', '신의 직장'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개인과 조직의 성장이 교집합을 이루는 범위가 넓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확장된다면 그곳은 내게 있어서 '신의 직장'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매월 급여를 받고 개인의 아이템을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할 기회의 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관점에서 오늘, 그리고 미래에 어떤 역량을 개발하고 적용하여 조직과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고, 무엇보다 스스로의 성장에 공헌할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또한 조직은 이러한 개인의 역량 개발과 조직의 성장을 연결해 주기 위한 관심이 필요하다. 20년 전, '라테'의 정이 넘치는 조직의 문화를 기대하고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기에 사회는 너무 많이 진화했다.

 


6. 그래서 직업도 중요하지만 직장도 중요하다. 잔류 혹은 이직을 고민한다면 신중해야 한다. 유연하게 생각하되 이곳이 스스로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고 최소한 그런 방향으로 건강하게 성장해 가고 있는지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내가 애써 살피지 못한 곳에 궁극의 기회가 있을 수 있고 관점에 따라 새로운 기회 또한 포착해 낼 수 있다. 의미는 부여하기 나름이고 나의 태도는 성과와 성장으로 흐른다. 그럼에도 내 꿈이 담길 수 없는 그릇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떠나는 것이 스스로와 조직을 위해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내가 지금 이곳에서 잘하고 있는 것인지 묻기 이전에, 나와 조직이 동반성장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물을 수 있어야 한다.

 


7. 유시민 작가의 인생은 짧고 덧없다는 말을 인정하는 나이가 되었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지난날과 오늘의 모든 나의 모습이 어느 순간 내일의 나와 연결(connecting the dots)될 것임을 인정하나, <<1만 시간의 재발견>>과 <<그릿>>에서 언급한 의식적인 연습(deliberate practice)을 하는 자신과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홀로서기를 위한 준비가 지금의 일과 연결되고 이것이 끊임없이 나의 팀과 조직의 성공경험에 스며들 수 있도록 분투하는 역사가 나를 지탱해 줄 것이고 온전한 주도권을 갖는 삶이 가능하게 도울 것이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만난 20년 전의 내게 해주고 싶었던 얘기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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