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hnstory May 10. 2024

친절함은 죄가 없습니다

퇴사한 은행원의 스무 번째 인터뷰

애써 노력했던 한 가지, 신경 썼던 한 가지를 꼽으라면 나의 주위에 있는 이들을 친절하게 대하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일을 하면서, 특히나 조직의 위계성이 강하고 빠른 실행을 요구받는 팀의 특성상 이러한 저의 지향점에 대해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다양한 구성원들을 관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죠. 조직의 규모가 커질수록 관리와 통제가 중요해지기 때문인데 저 역시도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다만 억압과 강요의 언어의 비중이 높은 조직일수록, 통제되고 제한된 관계일수록 진정성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고 이런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적인 포용성을 표방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나 우리 모두는, 어느 누구나,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존중받아야 하며 더군다나 그 대상이 나와 함께하는 이들이라면 저는 더더욱 이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친절함을 중요시하게 된 이유 가운데 몇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저는 제가 만나는 이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모두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것과는 좀 다른 것인데요.


후에 이들을 통해 덕을 보고자 의도한 것은 아니었고, 우선 그렇게 사람을 대해야 제 마음이 편했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상대는 보통 저의 친근한 반응에 긍정적으로 화답하기도, 무표정으로 일관하기도 했지만 저는 크게 개의치 않았어요. 좋은 마음을 갖는 것에 대해 가장 큰 만족감을 느낄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었으니까요. 상대가 누구인지, 지위가 무엇인지에 상관없이 늘 한결같은 태도로 대하려 애썼습니다. 그렇게 남은 좋은 인상과 기억들로 잠시나마 따뜻함을 느끼길 바랐어요.



또한 이 생각에는, 어디선가 각자만의 이유들로 힘겨운 시간과의 전투를 벌이고 있는 우리 각자의 삶을 존중하고 아주 작지만 편안한 친절이 그들의 일상에 좋은 활력이 될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직장생활 초반 저의 친절은 사실 인위적인 것에 가까웠습니다. 누구를 봐도 동기를 제외하면 죄다 저보다 윗사람들 뿐이었으니 친절보단 서열순위에 따른 예의바름 이었던 것 같아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기도 했거니와 유독 붙임성 좋았던 성향 덕에 살가운 태도가 저에겐 편했습니다. (물론 이런 성향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당시 저의 태도를 좋게 봐주셨던 분들께서, 은행에 있을 때가 아마 최고조였을 것으로 생각 듭니다만, 업무적으로 저를 찾아주셨고 새로운 일에 대한 제안도 해주셨어요. 비단 태도만으로 이런 기회들이 다가온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봐요. 따뜻한 응대와 소통에 거부감을 갖는 이들은 없을 테니 말이죠. 그리고 그러한 친절은 신기하게도 자꾸 생각이 납니다. 특정 상황, 음성, 분위기, 표정 등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앙상블이 되어 이미지를 형성하게 되고 당시 느꼈던 감정들과 섞이게 되죠. 좋은 것들이 계속해서 좋은 것들을 낳게 되는 겁니다.




저는 제가 만나는 이들을 대하는 모든 방식과 방법들이 결국 내게 돌아온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것으로 대하면 좋은 결과가 따라오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거죠. Garbage in, garbage out 이 틀린 말이 아니라 생각하기에 늘 좋은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하루를 보냅니다. 성서에도 "다른 사람들이 네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들에게 해주어라"라고 하죠.


그럼에도 오늘 만나는 모든 이들이 저와 같은 마음으로 저를 대하지 않을 것임을 압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조금 더 친절해지자, 생각해요. 이 친절이라는 것은, 전형적으로 생각하고 떠올려지는 이미지보다 훨씬 광범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뢰의 기다림이 포함되어 있고, 상대에 대한 배려도 있습니다. 협업의 관계라면 재촉과 닦달함 대신 필요한 지원과 신뢰를 보내는 것이 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늘 빠른 실행과 결과에 익숙해져 있는 조직에서 이는 쉬운 것이 아니지만 그럴수록 더 노력해야 한다고 봐요. 우리가 목표하는 지점과 결과는 분명할 테고 그 여정은 늘 쉽지 않을 텐데 하루 24시간 동안 함께하는 관계에서의 존중과 신뢰, 편안함과 친절은 정신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칠 테니 말이죠.



 친절한 태도를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태생적으로 이런 친절함이 타고나는 것이라고도 생각지 않아요. 다만 친절함이 가진 힘을 아는 이들은 이에 대해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환경과 사람의 화답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은행을 퇴사한 후 지금까지 감내한 셀 수 없는 실패들 끝에 저에게 힘이 된 존재는 언제나 이런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전 20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에 대하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