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스토리가드닝 모음집]

복지단상① - 조직 및 현장에서 나를 나답게 만든 에피소드(2편)

위 모음집은 필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하는 6명의 사회복지사들이 2023년 7월부터 12월까지 참여한 챌린지 내용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4가지 주제와 관련하여 주1회 올린 글들을 2~3편씩 나눠 올릴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피드백이 저희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복지단상] - 복지현장에서 종사자로서 느낀 개인적 성찰 혹은 경험담 공유
[복지이슈] - 최근 거론되고 있는 복지계 이슈와 관련한 자유로운 생각나눔
[복지수다] - '만약에 OOO이었다면?'라는 식으로 역발상 형태로 가정
[자유주제] - 사회복지 외 다른 주제 선택




"사회복지조직 또는 실천현장에서 나를 나답게 만든 에피소드(경험)이 있다면?"


[필명: 아무개김씨(사회복지 oo년차)]


첫 수업에는 살금살금 뒷자리에 앉아 그대들을 만났습니다. 평소 낯선 사람을 마주하는 상황을 즐거워하는 성격입니다만, 첫날의 어색함을 무심함과 긴장한 티를 감추려는 명분으로 삼았죠. 지인들에게 자주 오해를 받을 만큼 사람을 바라보는 일에 몰두하는 저였거든요. “씨익” 웃으며 자리한 한 분 한분을 바라봅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거울 속 ‘나’의 얼굴을 한참을 마주했습니다. 주름살과 잡티 가득한 우울한 표정 그리고 웃는 모습이 복잡하게 뒤엉켜있었습니다. 나이를 성실하게 먹어가는 한 아주머니의 얼굴이 저를 보고 웃고 있더군요.


신기하게도 수업에 참여한 선생님들의 얼굴에서 보았던 모든 표정들 또한 제 얼굴에도 떡하니 자릴 잡고 있는 겁니다. 저도 모르게 안심하고 “껄걸” 크게 한 번 더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와 그 분들이 다르지 않음과 또 앎을 통하여 좀 더 가까이 선생님의 희로애락을 곁에서 나누고자 하는 활동가가 되겠다고 다시 다짐합니다.


4평밖에 안 되는 배움의 공간이 선생님들에게는 온전한 누움의 자리이고 또 온 삶의 기쁨의 원천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로 결속된 “그것”의 기쁨은 현장에 있지 않음 절대 모를 우리만의 폭소이자 농담이고 진실이니까요. 이러한 자유를 꿈꾸는 인문학도로 변모한 선생님들을 바라보는 저는 그래서 기쁩니다.


첫날의 제 내숭은 이제 기억에도 없습니다. ‘나’의 방식이나 선생님들의 방식도 아닌, 어우러짐으로 진행되어질 남은 수업들에 대한 기대감만 있었습니다. 마주보며 편하게 헤르만헤세와 햄릿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서로를 다독일 테지요?


상처받은 이에게만 필요한 게 위로인가요? 매순간 상대에게 자신의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 위로라는 어느 정신과 의사의 말처럼, 위로 받고 싶은 만큼 매순간 ‘나’의 시간을 내어 줄 마음과 자세를 갖고 있으려합니다. 이렇게 “마주봄이 위로”라는 말을 참 길게도 하지요? 선생님들과 인문학수업에 참여하게 되어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던 제의 마음풀이였습니다.



[필명: 폴레폴레(사회복지 13년차)]


10년 넘게 사회복지현장에서 일하면서 나를 키운건 8할 이상이 “엄마”였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들”이다. 나를 낳아주신 엄마는 서울에 살고 계신다. “엄마들”이란 복지관에서 만난 수많은 이용자들이다. 나이, 성별을 무관하고 나를 사회복지사로써 살게 해준 고마우신 분들. 그런 수많은 엄마들이 나를 키워왔다고 할 수 있다. 그분들의 보살핌과 위로, 응원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현장에 남아 일을 할 수 있는게 아닌가 싶다. 현장에서 만난 수 많은 엄마들이 있었지만 첫사랑이 무섭다고 했던가. 오늘은 현장에서 처음 만났던 ‘엄마’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한다.


열정과 패기로 무서울게 없었던 신입 시절에 만났던 첫번째 엄마는 30대 초반에 근위축병이 발병하여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40대 중반의 A아저씨이다. A아저씨는 틈만나면 복지관에 와서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행패를 부렸다. 나는 A아저씨의 사례관리자가 되었고 아저씨는 젊은 선생이 뭘 아냐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의 인생이 불쌍하게 여겨진다면 후원금이나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아저씨는 기분이 나쁘면 나와 통화하다가도 끊어버리고 핸드폰을 받지 않았다. 그러고는 자신을 무시했다며 기분 나빠하기 일쑤였다.


그럴 땐 사례관리의 목표가 그저 아저씨의 비위 맞추는 일이 되어버린건 아닌가 싶어 허탈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수퍼바이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저씨를 포기하지 말 것을 나에게 주문했다. 그날도 아저씨는 무엇 때문인지 기분이 나쁘다며 전화를 끊어버렸고, 나는 왜때문인지 오기가 생겨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다. (훗날 아저씨가 말하길 부재중전화가 42통이나 왔다며 ‘선생 참 대단하네’ 라고 말했다.) 수화음이 한참 울리고 짜증이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왜요” “내일도 복지관 오실거죠? 오렌지주스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을께요.” 대답 없이 전화는 끊어졌다. 그리고 다음날 복지관에 온 아저씨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이게 뭔 소리인가 싶어 두눈 동그랗게 뜨고 있자 아저씨는 말을 이어갔다. “아프고 난 이후로 모든게 다 원망스러워서 짜증이 많이 났어. 내가 왜 이럴까 싶고.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걸었는데 갑자기 휠체어를 타야 한다잖아. 그러니까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더라고. 그게 너무 싫었어. 그래서 나 하고싶은대로 다 하고 죽겠다 생각하고 마음대로 했어. 그러다 수틀리면 화를 냈고. 사람들이 화를 내면 다 들어주더라고. 그래서 그랬는데 선생님은 내가 화를 내고 전화를 끊어버렸는데도 다시 전화를 하고 내일도 복지관에 오라고 하고 내가 좋아하는 주스 사놓고 기다린다고 하더라고. 갑자기 눈물이 났어. 창피하게..”


그 날 이후로 아저씨는 세계 최강 슈퍼악당이 나타나도 무섭지 않을 정도로 나의 든든한 응원군이 되었다. 복지관에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미력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발벗고 나섰고, 사춘기로 방황하는 청소년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말하는 나에게 “선생이 잘하는 방식으로 하면 돼”라며 위로를 건네기도 하였다. 사회복지사들의 고비가 온다는 3년차가 되었을 때에도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퇴사를 결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저씨는 그 때에도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 후회가 되지 않을 것 같다면 그만두어도 된다”며 나의 멘토가 되기도 하였다. 이후로 지역 내 장애인복지관이 설립되면서 보다 전문적인 서비스를 위해 사례관리는 종료했지만 아저씨는 종종 자신의 소식을 전하였고, 소식이 끊긴 이후에도 휠체어를 타고 재래시장을 누비는 아저씨를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다.(이전보다는 휠체어 속도가 느려져서 마음은 아팠다.) 그렇게 첫 번째 엄마가 되었던 A아저씨. 아저씨가 있어 아직까지 현장에서 잘 버티고 있음에 감사한 오늘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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