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브런치북 대상, 떨어졌다.
아쉬운 마음 크지만 어쩌겠어
계속 글쓰기 멈추지 않고 도전할거야.
반드시 두들기면 열릴거라 믿으면서!
무엇부터 할 지 막막, 그것도 잠시
2년이라는 복무기간, 길다. 그 기간 동안 아직 병역의무를 마치지 않았거나 마칠 필요가 없는 동기들의 경우 졸업까지 순탄하게 가겠지. 하지만 난 남들보다 2년은 뒤쳐져 출발하는 셈이니 무엇이든 해놓아야 마음이 편했다. 그럼에도 '복무하면서 다른걸 어떻게 해'라며 스스로를 옥죄었었지. 무엇부터 해야 할 지 많이 막막했었거든.
이번에 경험한 '2박 3일 캠프' 후기 작성과 중증 장애인 어르신 대상 '재활운동기구 펀딩'은 나의 막막함을 자신감과 추진력으로 바꿔주었다. 복무하는 동안 퇴근 시간이나 주말 등을 활용하여 내 역량을 갈고 닦자, 이건 애초부터 갖고 있었거든. 천천히 생각해보니 선택지는 정말 많았다. 어학 공부나 운동, 봉사 및 대외활동에 공모전까지. 구체적인 목표나 방향만 잘 잡아 시간을 안배하면 소기의 성과를 거둘 것만 같았다.
걸리는 점이 있다면, 현재 몸담고 있는 주간보호센터의 경우 그럴 여유 부릴 틈조차 없다는 거다. 평일 쭉 근무하고나면 저녁이나 주말은 뻗거나 이를 보상받고픈 마음에 놀거나 그랬거든. 20대 초반이었으니 그럴만도 하겠다는 생각, 이 글 보면서 들 수 있겠다. 그러나 나에게는 조급함과 불안을 넘어 절박함이 내재되어있었다. 제대로 이 시간을 자기계발로 활용하겠다는 의지. 복무한 지 1년이 지나 새로운 팀으로 배치받으면서 현실화되었다.
사회문화팀으로 배정받은 건, 나에게는 복무 중 가장 큰 선택의 기로였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해당 팀에서 크게 신뢰를 받지 못했었다. 처음 시설관리팀에 배치받았을 땐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내가, 주간보호센터로 이동되고나서는 나름 이미지 회복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사회문화팀에 적응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참여자들 출석체크나 강사 혹은 참여자들의 요청에 따라 움직이는 '프로그램 보조'가 중심이긴했다. 그러나 정확히 내 과업은 안내데스크였다. 당시 함께 근무하던 여자 선생님의 지시아래 여러 세밀한(?)일들을 처리했던 듯 하다. 주차관리부터 시설안내, 전화 연결 등. 선임들로부터 이 자리는 나름 꿀이라 이야기 들어왔건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였다. 수시로 불려나가고 민원 처리하기를 반복, 그 자체였으니까.
나름 집중한다고 했는데, 빠릿하게 일을 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는 여자 선생님이 많이 답답해하셨나보다. 오죽하면 복무 담당자에게 나를 다른 요원과 바꿔달라 요청하겠다 말할 정도였으니까. 아차 싶었다. 나도 모르게 은연 중에 내 과업에 대해 안일한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어떻게든 2년만 참자'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몸으로 전이된 것이다. 그러니 행동이 굼뜨는 건 물론이요, 스스로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싶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당장 행동부터 바꿨다. 가장 먼저 했던 건, 여자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바로 실행에 옮기는 일이었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대답도 "네!"라며 짧고 크게 했다. 마치 안내실 업무가 내 업무인양 동화되기위해 아무 생각없이 몰입했던 듯 하다. 뭐, 자기계발이니 나의 시간을 갖겠다니 이런 마음은 잠시 접었다. 우선 동료 직원에게 인정부터 받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을 일이었다.
긴장도 했었다. 그럼에도 조금씩 몸에 익숙해지니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고 하찮게 보였던 이 업무가 사실은 기관의 얼굴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음을, 작은 톱니바퀴처럼 매우 중요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자 여자 선생님이 지시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일어나 다음 행동을 예측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본 루틴이 내게 체화되자 알아서 때되면 움직여 과업을 처리했다.
그랬더니 여자 선생님도 날 다시 보기 시작했다. 딱딱한 말투, 날카로운 경계에서 온화하고 부드러운 어조와 태도로 대한 것이다. 잠깐의 티타임이라도 가질 때면, 소집해제 후 나의 미래에 대해 조언도 해주면서 종종 본인의 가정사나 근무하면서 겪은 애로사항 등을 털어놓기도 한다. 원래대로라면 1개월도 안 되어 쫒겨났을 터다. 근데 6개월을 지나 소집해제 전까지 안내실에서 계속 근무하였다. 이제 신뢰는 물론, 여자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바쁘지 않을 때면 짧지만 개인공부라든지 글쓰기 등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이러한 배려는 나를 몇 단계 더 성장함에 기폭제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다른 직원들과도 교류하며 그토록 원했던 사회복지 현장을 미리 경험하고 정보나 지식 등을 습득하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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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사회복지사로의 길,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