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이 혼란스럽다.
어떻게든 일상에 집중하려하지만
나도 시민 중 한 사람인걸, 그래서 조심스레 지켜보는 중이다.
내 역할은 무엇인지 계속 되새김질하면서.
그렇게 모인 칠십 몇 만원
주변에 열심히 공유했다. 당시 SNS가 그렇게 활성화되지 않았던 때고 카카오톡도 아직 쓰는 사람만 쓰는, 뭐 그런 시대지. 체감이 안된다면..한번은 경품으로 받았었던 아이팟 터치 2세대인가 3세대를 센터로 가져왔더니 담당 사회복지사가 신기해하며 만지작거렸을 정도다.
그럼에도 온라인 모금 및 후원의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같았다. 기부액에 제한은 없었기에 한 달 내지 두 달 기간을 잡고 준비했던 기억이 난다. 이걸로도 모잘라 지역 내 유관기관들에게 보낼 모금편지도 작성하여 보냈을 정도니, 센터에서 얼마나 진심으로 어르신들을 위한 재활운동기구 마련에 집중했는지 피부로 체감될 정도였다.
목표했던 150만원은 채우지 못했지만 그 절반인 칠십 몇 만원이 모였다. 딱 한 대 정도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인데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어르신들도, 직원들도 좋아했지만 나에게는 큰 성과이자 소중한 경험이 된 건 물론이고. 예비 사회복지사로서, 그것도 실습도 하지 않은 햇병아리가 기관 후원 및 모금 프로젝트를 서포트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이외에도 주간보호센터에 있으면서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자연스레 맡아서 했었다. 한번은 부여로 어르신들을 모시고 2박 3일 캠프를 떠났었다. 가을로 기억하는데 센터 전 직원은 물론, 타 부서 사회복무요원까지 지원받아 갔을 정도로 대규모 원정대였다.
날씨도 선선하고 맑아 캠프 진행에는 딱 맞아 떨어졌었다. 별 다른 사고 없이 즐거운 추억 만들고 돌아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복지관 홍보팀 직원이 내게 제안 하나를 했다.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사회복무요원들 중 전공 또한 유일하게 사회복지였었기에 그랬나보다. 기관 소식지에 실릴 캠프 후기를 한번 써보겠냐며 추천한 것이 오늘날 내가 브런치에 사회복지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만든 화톳불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기관 소식지에 내 글이 실린다는 기쁨도 잠시, 급 몰려오는 긴장과 부담은 순간 움찔하게 만들었다. 당연히 2박 3일 간의 여정을 있는 그대로 담아낼 거다. 그러나 외부에, 그것도 전국적으로 소식지가 나가는 만큼 잘 써야한다는 압박감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사진 포함, 2P분량이었는데 며날 며칠 초고를 썼다 지웠기를 반복했지 뭐야.
어떻게 잘 완성하여 홍보팀 직원에게 제출하였다. 그리고 몇 주후, 멋지게 편집해주셨더라고. 후기 잘 썼다며 직원에게 칭찬 받은 것도 기분 좋았지만, 더 기뻤던 건 주간보호센터 어르신과 보호자들의 반응이었다. 그때의 추억이 생생히 떠오른다며 감사해하는 모습을 보고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들떴지.
그때 문득 든 생각 하나.
사회복지 현장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다.
그것이 내가 '사회복지 스토리텔러'라는 퍼스널 브랜드를 만들게 된 계기와 <사회복지 100인의 인터뷰>를 기획 및 정기 연재하게 된 시발점이었다. 2년의 사회복무요원 복무 기간 동안 예비 사회복지사로서 갖출 수 있는 역량은 다 갖추고자 남몰래 노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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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사회복지사로의 길,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