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지능 청년들도 자립하고 싶어요(25.12.07일자)
상반기 디지털 시민광장 [빠띠]에서 기획한 <쓰다:재난상황> 프로젝트.
우리 주변의 장애 그리고 재난에 대한 글을 쓰며 활동했었습니다.
하반기에는 소수자를 비롯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약자 혹은 이웃들의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글쓰기 프로젝트 형태로 진행되었는데요.
자유양식으로 총 2편의 글을 공유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
2021년으로 기억한다. 경계선 지능(느린학습자)에 대한 관심과 그들을 직접 만났던 첫 기억이. <기부걷기 프로젝트>를 통하여 그들과 한강을 배경으로 20Km를 완주했고 기관 탐방을 통하여 보호자와 당사자의 설움 및 고충을 두 눈과 귀로 목격하고 또 들었다.
아동부터 청소년 그리고 청년 및 중장년에 이르기까지. 생애 주기별 스펙트럼에 따른 경계선 지능을 바라보는 관점은 분명 바뀌어야 할 것이다. 본격적으로 얘기하기에 앞서, 하나 이해를 구하고자 한다. 당사자가 아닌, 조력자의 입장이기에 모든 걸 대변할 수도, 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일경험”에 대한 사회적 자립을 꿈꾸는 이들의 목소리를 오롯이 전달하는 차원으로 작성한다. 실제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편견과 차별은 무엇인지 하나씩 살펴보겠다.
서울시에 경계선 지능 청년에 대한 일경험 관련 정책 제안을 할 때로 기억한다. 같은 팀의 멤버 중 한 명이 당사자였는데 평소 느꼈던 점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본인이 희망하는 직무는 따로 있는데 자신들을 위한 취업 혹은 고용 연계 프로그램들을 보면 이미 정해진 직무에 대해 반강제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말이다. 우리들도 원하는 직무나 배우고 싶은 교육 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데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답답해하면서 말이다.
들으면서 공감되었다. 굳이 장애나 비장애 관점으로 보지 않더라도 맞춤형 직무보다는 최근 트렌드나 이슈와 연관된 취·창업 연계과정이 보편화되어있다. 애초에 개개인별로 개성과 특기 등을 고려하여 직무 개발 혹은 맞춤형 고용 연계는 한계점이 존재한다. 이를 전제로 매년 1~2개 혹은 2~3개의 신규 직무를 장애인고용공단이나 한국장애인개발원 등에서는 개발하고 또 관련 제도나 사업 등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는 15가지 장애유형에 포함되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다. 사회적 장애로의 범주에 속하느냐, 속하지 않느냐에 대해 여전히 뜨거운 감자인 “경계선 지능”의 경우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여 비장애인으로 치부한다. 또 3년 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주최한 [제15차 청년정책포럼]에서 발표된 내용도 그렇다. 경계선 지능 청년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현재 일을 하고 있거나 일을 하고 싶은 욕구가 많음을 말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준비나 역량 강화에 더 시간이 걸리는 이들을 무작정 채용 경쟁에 내몰리는 게 맞는 것인가. 이에 대한 물음에 정답은 없지만, 집단지성으로 이에 대한 토의나 보완 및 발전할 방향 설정 등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다행히도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청년재단 및몇 민간단체에서는 “잠재성장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일경험 시범사업을 비롯한 여러 시도를 시범적으로 시행 중에 있다. 하지만 단기나 중장기 성격이 강하여 장기적인 안목으로 컨설팅이나 가이드를 받기에는 잦은 어려움이 있음을 실제 사업에 참여한 이들과 교류하며 확인할 수 있었다.
경계선 지능 청년들의 경우 한 가지 유형으로 규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행동 양상을 보인다. 근데 공통점까지는 아니지만 비슷한 결은 보인다. 그들도 크든 작든 구성원으로서 경제활동이나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전한 자립을 이루어 먹고 싶은 것도 자유롭게 사 먹고 갖고 싶은 것, 원하는 활동 참여하며 권리와 혜택을 누리고 싶어 한다.
의도치 않은 불합리한 처우를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보기에는 환경 등 구조적 측면에서 이들이 방치 혹은 방관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이러한 낙인과 배제, 차별 등의 반복적인 행위는 원치 않음에도 스스로 고립 은둔의 길로 몰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얼마 전 진행한 당사자 대상 인터뷰에서도 한 당사자의 호소가 이어졌다. 일은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 아닌, ‘나’라는 사람을 세상에 보이는 표현 수단이라고 말이다. 경계선 지능 청년 당사자도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제반이 구축된다면? 잠재력을 가진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바라봐 준다면? 작금의 문제점들이 부분적으로는 자연히 해결되리라 믿는다.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서야 경계선 지능 관련 실태조사와 맞춤형 사업 및 프로그램들이 성과도 그렇고 진척이 되어가고 있다. 세간의 관심과 민관 거버넌스를 토대로 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경계선 지능 청년의 일할 수 있는 권리와 보통의 삶을 살 수 있는 참여 기회 보장도 연결되면 좋겠다는 심정이다.
어느 문제든 한 가지 이상, 칡뿌리처럼 엉켜있다. 이를 분석하고 풀어내는 작업은 특정 전문가 혹은 당사자만이 할 수 있진 않다. 국민 누구나, 언제든 옹호와 견해 등을 낼 수 있다. 더불어 사는 사회 실현에는 노동자 보호 및 고용보장도 포함된다. 최근 고용노동부에서 모두를 위한 근로기준법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들었다. 경계선 지능 청년 대상 조례 제정 확산 및 기 관련 조례 개정 그리고 미담이나 협력 모델 등도 꾸준히 발굴하여 지역사회에 알려야 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시도가 경계선 지능 청년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으로 대하는 이들에게도 관점과 발상의 전환이 될 것이다. 멀리 있지도, 어렵지도 않다. 있는 그대로 경계선 지능 청년을 대하고 지지와 격려로 포용하면 된다. 자립의 대상자에서 또 다른 대상자의 자립을 돕는 파트너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그런 문화, 흐름이 2026년에는 이어지길 힘껏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