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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ny Kim Apr 10. 2018

#11_호의, 그리고 호의에 대한 도리

그치만 뭐 어쩌겠는가. It is what it is.

참 오랜만에 글을 쓴다. 몇해 전, 함께 영어학원에서 강의하던 동료 선생님이 결혼을 하셨고, 내게 일주일간 수업을 맡기셨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여유를 즐기러 내려간 제주도에서 우연한 기회로, 생각지도 못한 큰 계약을 따버렸고, 내 계획은 그대로 휴지조각이 됐다. 제주도 온 구석을 택시 타고 날아다녀야 할 정도로, 정신없는 일주일 반을 보내고 왔다. 그렇게 돌아오고 나서도 주말을 한 번 더 보내고 나서 쓰는 글이다. 일할 수 있을 때 바짝 일하는 것만큼 좋은 일도 없다. 그렇지만, 여유롭게 영화도 몇 편 보고, 커피 마시며 책도 읽으려 했건만, 그렇게 하지 못한 건 참 아쉽다. 어차피 일은 찾아서 따 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지금도 충분히 턱끝까지 차올라 있다. 


제주에선 새로운 사람을 만났고, 또 알던 사람과 틀어지기도 했다. 꽤 오랜 시간 틀어져있던 사람과 화해를 하기도 했고 말이다. 일도 일이지만, 사람과 관계에 관련된 일이 참 많이 일어났던 것 같다. 날씨도 따스하니, 꽃들도 고개를 드는 계절이라 그런지. 아니 가끔은, 따스함을 시기한 추위가 투정을 부리곤 하는 계절이라 그런지. 나와 내 주변의 관계에도 계절의 변화가 훅 들어온 건 아닌가 싶다. 계절들이 때가 되면 서로 자리를 내주듯, 관계에 변화가 오는 것도 참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마음을 써서 챙겨주던 사람의 말실수 한마디로 큰 배신감을 느낄 때도 있고,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던 사람의 작은 행동으로 친한 사람이 되기도 하니까. 아직 따스하지만은 않은 봄처럼, 그렇게 꽃샘추위를 지나는 일이 있다.  


올 사람은 알아서 붙고, 갈 사람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간다. 어쨌든 남을 사람은 알아서 남는다. 사실, 이렇게 생각할 여유를 가지게 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신경이 곤두서다 보니, 정작 잡아야 할 사람은 놓치고 쳐내야 하는 사람을 그냥 둔 적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고, 조금 더 어른이 되어가고 하니, 조금씩 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을 골라 만나고싶은게 아니라, 피차 편하지도 않고 도움도 되지 않을 바에야 얼른 정리하는게 서로에게 이롭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서 요즘엔 새 사람이 왔을 때, 그가 어떤 이인지 알아보기 위해 무조건 잘 해준다. 최선을 다해 있는대로 퍼준다. 대부분의 경우에 2주 안에 결론이 난다. 슈퍼 호구로 보거나, 매우 고마워하거나. 어느정도 호감이 가고, 말이 통하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판단이 드는 사람에겐 어김없이 그렇게 한다. 기대를 가지고 하는 행동이다. 내가 느끼고 파악한 이 사람의 모습이 실제로는 어떤지, 내가 짐작한 것만큼 좋은 사람인지 알고싶으니까 말이다. 사람 가지고 테스트하는게 도의적으로 맞냐 틀리냐 생각하지 말고, 좀 솔직해지자. 훌륭한 사람 곁에 두기만도 바쁘다. 코흘리개 시절에 친해진 사람도 아니고, 다 커서 만난 사람이면 당연히 서로가 서로에 대한 손익계산을 하는 게 정상이다. 나는 그 과정을 단축시키고 싶은 거고 말이다. 


최근에 호의를 호구로 받는 사람을 만났다. 참 멋진 일을 해 온 사람이고, 나처럼 사회에 일찍 나온 사람이라 마음이 끌렸다. 가끔 커피한 잔 하는 친구로서도, 프로젝트를 같이 뽑아내는 동료로서도 괜찮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훌륭한 아군이 될 법한 사람이었다. 자신만의 스토리도 충분한 사람이었고 말이다. 그래서 내가 그 이야기를 살려낼 수 있는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부터, 기획, 실행까지 다 맡아서 진행해줬다. 판은 내가 다 깔아놓고, 숟가락만 얹어도 되도록. 같은 일을 외주 계약으로 땄으면, 일곱 자리 넘어가는 금액을 청구해야 할 정도였다. 사람을 얻기 위해, 호구를 자처했지만 돌아오는 건 없었다. 본인은 이름만 얹은 프로젝트에서도 콜라보레이션 or 피처링으로 소개하고 자랑해달라는 요청도 이런 저런 이유로 거절. 점점 부탁하는 게 늘어났고, 나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돌아온 호의는 없었고,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왜 내게 이득이 될 만한 메시지에만 빨리 답장하냐고. 제주도에서 숨도 못 쉬고 날아다닐 때 꽂힌 메시지였다. 그리고는 결국, "이런 의도(홍보, 팔로워 유치 등)를 가지고 접근한 거냐"는 말로 선을 넘었다. 그 마음 속에 고마움은 없었고, 억울함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호의는 호의로 예쁘게 받고, 

호의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것. 

그게 멋진 거다. 


단칼에 잘라냈지만, 마음은 아팠다. 아쉽기도 했고, 내가 이 사람을 이렇게 잘못 봤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쓰고있는 이 방법이 참 효과적이라는 것도 다시 한 번 증명됐다. 그치만, 내 생각이 어느정도는 맞았는데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실망이 크다. 그치만 뭐 어쩌겠는가.  


It is what it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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