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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ny Kim Mar 25. 2018

#10_스무스하게, 하나씩

제주에 내려오는 길은 참 이상하리만치 덜컹거렸다. 매우 사소하지만, 거슬리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침에 공항버스 정류장까지 택시를 탔는데, 단말기 오류로 결제가 잘 되지 않았다. 공항 체크인때는 예약된 비행기의 기종이 바뀌는 바람에 모바일 체크인 오류가 나서, 카운터에 가야만 했다. 보안구역으로 입장할 때, 내 앞의 일행 네 명이 모바일 탑승권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바람
옆 줄에서 열댓 명이 통과하는 걸 바라만 봐야 했다. 비행기에 탑승할 땐, 내 앞사람의 탑승권 바코드가 도무지 찍히지 않아서 또 잠깐을 기다려야만 했다. 예식장 근처라서 고른 호텔은, 계단이 참 많았고 말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 결혼식 사회자석에 섰을 때, 난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영어학원에서 같이 수업을 하던 동료 선생님의 결혼식. 내게 직접 찾아와 참석을 부탁하신 자리였다. 결혼식 진행을 부탁한다는 것. 그건 나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말이었다. 실수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어제의 일들이, 큰 사고로 이어지는 전조는 아니었을까 하는 괜한 생각도 들었다.

참 다행히, 자리가 자리였기 때문이었을까, 나쁜 기운을 전날에 다 털어놓았기 때문이었을까. 흐름은 그보다 부드러울 수 없었다. 직접 쓴 원고를 한 글자도 실수하지 않고, 깔끔하게 읽어냈고, 아무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잘 하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실수하면 모두 알아차리는 게 사회자다. 모든 순서를 끌고 가면서도, 드러나지 않아야만 하는, 어려운 자리이기도 하다.

이상하게 모든 게 삐걱대더니, 오늘은 이상하게 모든 게 참 순조로웠다. 시작이 좋다. 남은 한 해도 스무스하게, 하나씩. 이렇게 잘 지나간다면 참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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