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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ny Kim Apr 26. 2018

#14_무언가를 누린다는 것은

뿌듯하기도 하면서, 씁쓸하기도 한.

가끔은, 참 과분하다 싶을 정도로 무언가를 누리게 될 때가 있다. 내가 많이 올라왔음에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론 라면 하나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날들이 떠오르며 씁쓸해지기도 한다. 참 어찌나 복잡미묘한지. 얼마 전엔 외국계 대기업이 주최한 행사에 초청되어 출장을 다녀왔다. 좋은 비행기를 타고 출국했고, 이전이라면 상상도 못 했을 객실에서 잠을 잤다. 숙소도, 일정도, 식사도. 모든 것이 참 완벽했고, 일정 내내 참 즐거웠다. 그렇지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던 순간들도 있었다. 짧게 지나가기는 했지만, 분명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자격'에 대한 생각 때문은 아니었을까.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던 바닥에서부터 내 손으로 하나씩 쌓으며 올라와서일까. 내가 정말 이 자리에 있기에 충분한지를 항상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한 계단씩 처절하게 싸워 온 그 순간들을 욕되게 하고싶지 않다는 마음이랄까? 느리게 올라가더라도, 확실한 자리에 서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욕심이 없는 건 아니다. 그려놓은 큰 그림 중 대부분이 아직 밑그림으로 남아있고, 항상 더 멋진 자리에 앉아있는 나를 꿈꾼다. 그리고, 이런저런 도움을 받으며 효율적으로 앞서가는 친구들을 보며 부러울 때도 참 많다. 그렇지만, 내실 없이 올라간 자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하루에도 몇번씩 되뇌이며 내 실력에 속도를 맞춰가고 있다.


베트남은 참 좋았다. 큰 회사 사람들과 명함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눈 것도,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여러 전문가를 만나본 것도. 내가 서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는지를 확실히 깨닫고 왔다. 아,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이정표를 본 느낌이랄까. 온 길이 보였고, 가야 할 방향이 잡혔다. 어딜 가나 제일 어리지만, 어리다는 것을 존중하고 젊음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라서 즐거웠다. 어딜 가나 나쁜 사람은 있다지만, 품위있고 멋진 어른들을 만난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그래 참 많이 왔다. 고생이야, 질리도록 더 하겠지만. 그래도 좋은 것들을 누리며, 잠시 멈춰 돌아보는 시간이 이렇게 주어져서 참 좋았다. 어쩌면 그래서, 돌아오자마자 매일 새벽 네시까지 글을 쓰고 전략을 세우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의 성취에 뿌듯해하면서, 달려온 길을 돌아보는 여유로운 누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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