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짜여진 드라마같았던, 신기한 하루
그냥, 그렇게, 모든 것이, 완벽한 날이 있다. 아니 완벽하다기보다, 그리도 신기할 수 없었달까. 일상적인 플로우를 넘어서는 잘 쓰여진 새로운 드라마처럼. 예상치 못한 일이 도처에서 펼쳐졌지만 아기자기하게 모든 일들이 부드럽게 흘러갔다. 웃을 일이 참 많은 하루였다. 약간 더운 듯하다가도, 바람이 살짝 불어 시원하다가도, 이내 쌀쌀해지는 요즘 날씨처럼.
사람을 새로 만나는 게 참 많이 망설여졌었다. 어떤 종류의 관계이든 상관없이. 잘 맞지 않는 사람과 잘 맞는 척을 해야 할 때도 많았고, 참 좋았던 사람들과 틀어지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랄까. 만나고, 친해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틀어지기도 하는 것.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일어나는 변화지만, 아직 우울증을 겪고 있는 내게는 그런 변화들이 큰 부담으로 느껴질 때가 있었다. 사실, 공포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나와 심각하게 안 맞는 사람은, 그저 쌍욕 한 번 시원하게 날리고 끊어내면 그만이다. 그치만, 정말 무서웠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괜찮은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었다. 그냥 친구로서의 감정이든, 그보다 깊은 감정이 드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운 건, 좋음의 크기에 비례해서 틀어졌을 때의 후유증이 커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미 내 편이 된, 매우 편한 사람들을 빼고는 소통은 온라인을 주로 이용하곤 했다. 호감과 비호감 스펙트럼의 한계를 좁게 가져가고 싶었으니까. 일부러 덜 좋아하거나, 덜 미워하려 노력하기도 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이별의 두려움 때문에 상대와 틀어지지 않기 위해서 괜히 뭔가 더 하려다가 관계를 오히려 해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친구가 되었든 연인이 되었든, 서로가 서로의 있는 그대로의 어떤 모습에 끌려서 어떤 관계를 맺게 된 것일 텐데, 그것을 편하게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내 그대로의 모습이 어찌 괜찮아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곤 했다.
참 오랜만에,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사이. 같이 소고기 먹는 사이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 이번에도 무서웠냐고? 그랬다. 많이.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연신 손을 떨었다.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울기도 했다. 어제는 몇 개월간의 금기를 깨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러 밖으로 나간 날이었다. 그렇게도 완벽했던 하루가, 그것으로 끝나버리는 것인가 해서. 혹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에 대한 마음이 바뀌는 건 아닐까. 친구 하자고 했는데, 돌아서서 갑자기 나를 끊어내지는 않을까 해서. 복잡한 마음이 떠나지를 않았다. 걱정하는 티는 내지 않았지만, 아니, 티가 났는지도 모르겠지만. 하루를 더 살아내며, 그것이 괜한 걱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공포에 대한 치료는, 사실은 그 공포의 대상이 괜찮고 안전하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겪어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것이 새 한 마리든, 높은 곳이든. 어쩌면 내가 겪은 어제의 사건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렇게 두려움을 조금씩 걷어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만큼 신기한 날이라서, 참 좋았다.
나는 글을 써 내려가고, 번호를 붙여 엮어내면서 내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내 마음도 괜찮아질 수 있을까, 라고. 음. 대답의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
그래서, 소고기는 언제나 옳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