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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ny Kim May 19. 2018

#_19 좋은데, 좋으며, 좋다.

내일을 기다리게 되었다는 것

밤새 비가 내렸지만, 어제처럼 습한 날은 아니었다. 사흘째 연신 비가 내려서일까, 날이 참 시원해졌다. 이래저래 얇은 봄코트를 살 타이밍을 놓친 게 참 아쉬운 날씨였다. 서울이 약간 쌀쌀하던 봄엔, 제주도와 다낭을 바삐 오가느라, 추울 새가 없었다. 코트값도 비싼데, 돈 굳었다고 생각하면 되려나.


날씨는 참 신기하다. 습도가 높을수록 시원할 때 더 시원하고, 더울 땐 훨씬 더운 것처럼 느껴진다. 또, 같은 온도라도 덥다가 시원해지면 많이 시원한 것처럼 느껴지고, 춥다가 따뜻해지면 많이 따뜻한 것처럼 느껴진다. 초등학생 때, 따뜻한 물과 차가운 물에 각각 순서를 바꿔서 손가락을 넣어보는 실험을 아마 다들 기억할 거다.


행복감도 날씨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똑같이 평온한 상태이더라도 불행하다가 평온해진 것과, 행복함에서 평온함으로 내려온 건 다르게 느껴진다. ‘과거에 비해 상대적’이라는 관점도 그렇지만 또, 한 가지 중요한 건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다. 설레는 주말의 약속을 기다리며, 한 주를 잘 지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사람을 무너지게 만드는 건 오늘의 고통이 아니라, 나아지지 않을 거라 믿는 절망이다. 그렇게 무기력을 자주 느끼게 되면, 그것은 학습된 무기력으로 바뀌게 된다고 한다. 사람은 참 이상하면서도 신기하다. 현재를 살면서 과거와 미래만을 바라보는 것 같다. 내일을 미리 힘들어하거나, 그때보다 낫다면서 행복해하니까.



It's all relative



사람은 상대적 변화엔 민감하지만, 절대적 측정엔 젬병이라는 심리학 연구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뇌는 어느 한 지점에 닻을 내리고(앵커링) 그것을 기준으로 짐작하기를 좋아해서라고 한다. 30년 경력의 부동산 전문가조차 어떤 집을 딱 보고서는 그 실제 가격을 비슷하게라도 맞추지 못했다. 게다가, 그룹을 나누어서 그 인근의 평균 집값을 각각 10억 원과 5억 원이라고 소개하고 같은 집을 보여주면, 더 높은 금액을 제시받았던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산정했다고 한다. 누군가 심어놓은 기준에 사로잡혀버린 거다.


행복을 느끼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 지금의 실제 감정보다, 기준을 어느 쪽에 잡느냐가 행복감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나의 작년이 처절하리만치 힘들어서였을까, 올 봄은 참 좋다. 불행했던 순간에 앵커링이 되어있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하고싶던 일들,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 작년에는 그리도 안 되던 일들. 어떻게 이렇게 한번에, 좋은 일만 잔뜩 생기나 싶을 정도다. 좋은 기회가 왔으니, 충분히 누려보려고 한다. 일 많을 때 신나게 돈도 모으고 사람도 만나보려고 한다. 돈 여유 좀 있을 때, 맛난 거 잔뜩 사먹으려고 한다. 불행한 날들이 다시 찾아와도 좋았던 시절을 기억하며, 다시 힘낼 수 있게. 과거에도 좋았으니, 앞으로도 좋을 거라고 믿을 수 있게.


그래서 난 좋은데, 좋으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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