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흐르듯 유려하게. 그렇지만 달달하게.
지금껏 나를 규정해왔던 생각과 규칙들이, 사실은 얼마나 나를 옥죄고 있었는지를.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얼마나 오래 살아왔는지를. 내가 따라가던 그 모습이 ‘나'와 얼마나 다른 모습이었는지를. 얼마나 모순된 삶을 살고 있었는지를.
세상 혼자라고 생각했고, 내 편이 없다고만 생각했었다. 그 부분을 채워야만 한다고, 그것이 나의 결핍이라 믿고 살았었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2년을 함께 했으며, 결국 헤어졌다. 또한 세상 혼자 남겨졌다고 믿었다. 어떤 관계에서 약간의 실마리라도 보이면, 적당한 속도를 알지 못한 채, 세게 끌어당기고는 했다. 그러나 그 또한, 내 착각이었다. 나를 옥죄고 있었던, 생각과 규칙일 뿐이었다. 나는 나 그대로 괜찮았다. 사실은 그랬다.
‘참 좋다, 맘에든다’는 느낌 속에 숨어있던 서사를 읽게 되었다. 보여지는 것들을 투영하는 그 배경을. 너무나 논리적이고, 확실한 인과응보가 있는 이야기이면서도, 한 문장 한 문장 숨죽여 곱씹게 되는 그런. 하루, 이틀에 쌓인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는 각자의 시간을, 각자의 서사를, 일평생 쌓아온 존재들이니까. 스물이 넘어서 누군가를 새로 만났다면, 20년치 일기장이 함께 온 것과 마찬가지다.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고 해도, 서사를 한 책에 쓰게되는 건 아니다. 하나의 이야기로, 서로가 각자의 이야기를 써내려갈 뿐. 몇 페이지쯤 내 이야기가 실리고, 몇 페이지쯤 상대의 이야기를 쓰게 되겠지만, 서로의 책에는 다른 방식으로 기록될 거다. 그러나, 그 또한 의미있는 건, 그 서사에 서로가 특별한 의미로 등장하기 때문이 아닐까. 두 개의 이야기가 기록되기 때문에, 더 풍성해지는 건 아닐까.
결말까지 꽉 짜놓고 쓰는 글은, 결말을 이미 알기에, 그 방향으로만 쓰여지지 않을까? 이리저리 종잡을 길 없이 튀어다니는 그 이야기들은, 예고된 결말이 없어야만 나오는 것이 아닐까? 결말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그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힘 빼고 편히 써내려가다가 보면, 발단도 전개도, 절정과 결말도, 자연스레 쓰여지지 않을까? 물 흐르듯, 유려하게. 그렇지만 달달하게.
요즘, 햇살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