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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ny Kim Aug 18. 2018

친구의 영정 앞에 서다

그래, 내가 기억하는 그 친구가 맞았다.

그래. 방 안의 코끼리부터 꺼내야겠지. 나는 얼마 전에 15년 넘게 알았던 친구를 잃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녔었고, 내가 살던 아파트 바로 앞동에 살던 친구였다. 아팠다는 얘기도, 떠났다는 얘기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들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1년에 한두번은 꼭 얼굴을 보는 사이였는데. 딱 올해만, 모든 것이 겹치며 바빴던 올해만, 연락을 하지 못했었다.


햇살이 참 예쁜 일요일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밝은 날. 오전에 잠시 외출을 했다가 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길이었다. 가끔 연락하던 다른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대뜸 내게 물었다 그 아이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냐고. 찰나였지만, 기분이 묘했다. 말로 표현못할 어떤 직감이었다. 안다고 대답했고, 설마, 설마 아니겠지 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 친구가 전해준 건 장례식장 위치와 날짜. 소식을 전해듣기 12시간 전에, 이미 모든 일이 벌어진 후였다. 멍한 기분이 이어졌다. 눈물이 터져나온 것도, 온몸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멍하니 창문에 기대 긴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몇 년 전부터, 내 옷장 한 켠에는 줄곳 남색 넥타이가 있었다. 교복은 다 버리면서도 그 타이만은 남겨두었었다. 만일을 대비해서 가지고는 있었지만, 사용할 일은 없었으면 했던 그 타이였다. 그날 저녁에는, 매우 중요한 업무상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다. 같은 시간에 모이기 힘들만큼 바쁜 분들이라 일요일 저녁을 쪼개서라도 만나기로 한 자리였다. 


갈색 구두, 검은 바지, 검은 자켓. 흰 셔츠, 남색 타이, 그리고 주머니 속에는 다른 넥타이가 있었다. 그마저도 너무나 미안했다. 친구의 죽음을 겪은 그 날에, 멀쩡한 모습으로 업무미팅 자리에 나타나 협상을 해내야만 하는 내 처지가 참 아이러니했다. 시간이 잠시라도 멈췄으면 했다. 


내가 알고,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보았던 사람을 잃은 건 처음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아는 바가 없었다. 이상하리만치 멀쩡했지만, 그리도 멍할 수 없었다. 택시를 타고 달려갔다. 내가 이전에 살던 동네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사를 온 이후로는 가볼 일이 없는 동네였는데, 참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엘레베이터가 있었지만, 왠지 타면 안될 것 같았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내려가야할 것만 같았다. 폭염이 떠나지 않은 날이었지만, 그 안의 공기는 이상하리만치 차가웠다. 무거웠다. 알 수 없는 긴장감, 숨 소리도 내지 않아야할 것만 같은 적막이 흘렀다. 지하 2층, 계단과 복도 사이를 막아선 문 앞에 서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문 손잡이 하나를 돌려 여는 것뿐인데, 그리도 긴장될 수 없었다.




그리고는, 친구의 영정 앞에 섰다.



그래, 내가 기억하는 그 친구가 맞았다. 여전히 말을 걸면 대답을 해줄것만 같고, 내 앞에서 두 팔을 크게 흔들며 나를 반길것만 같았다. 맛있는 거 많이 준비해놨다고, 얼른 앉아서 먹고 가라고, 그렇게 신나게 그 안을 뛰어다니고있었을 것만 같았다. 아니 어쩌면, 진짜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눈에 보이진 않았겠지만. 그 친구가 거기 있었다면 초등학교 선생님 이야기부터, 요즘 하고있는 일 얘기까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거다.


참 당차고, 쿨하고, 건강한 친구였다. 그 어떤 남자아이들보다 빠르게 달렸고, 여자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던 축구 경기에도 당당하게 끼어서 놀 정도로 운동을 잘 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으레 하는 장난들- 등짝을 때리고 도망간다든지- 하면, 그 아이는 내가 따라갈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이미 저 멀리 도망가있곤 했다. 마음이 참 따뜻한 친구였다. 내가 세계를 돌아다니고, 사진을 찍던 날들에, 아무도 내가 하는 일이 멋지다고 칭찬해주지 않았던 그 때에도, 그 친구만큼은 내 편이었다. 멋진 일 하고 있는거라고, 대단하다고. 나와 오랜만에 만났던 날이면 집에 가서 내 자랑을 그렇게 했다고 한다. 어머니께 전해들은 말이다.


루푸스라고 했다. 면역력이 스스로를 적군이라고 생각하고 공격하는 병. 그렇게도 건강하고 당차던 그 친구를 결국 죽음까지 몰고간 녀석은, 다름아닌 그 친구 자신이었다. 그리도 당차고 건강한, 독감이 와도 의지로 찍어눌러버릴 것만 같았던 그런 친구였으니까. 아주 드문 병이면서도, 열에 아홉은 10년 넘게 건강하게 산다는데, 유독 그 친구에게만은 그리도 독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 감정을 어떻게 분류하고 처리해야할지를 전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커다란 돌덩이가 내 가슴 한 구석을 짖누르는것만 같았다. 생각도, 감각도, 모든 게 멈춰있는 하루였다. 감정이 처리되지를 않았으니, 어떤 감정도 아직은 느껴지지 않은 날이었다. 눈물을 많이 흘린 건 그 다음 날이었다. 너무나 마음이 무거워서, 다시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옛날 친구들을 보았다. 그저 멍하니, 덤덤하게 같이 밥을 먹고 일어섰다.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영정 앞에 다시 섰다.



갈게, 잘 있어



그래. 그때, 하염없이 눈물이 터져나왔다. 나 올해 돈 많이 벌었는데, 밥이라도 얻어먹고 가지 그랬냐고. 아팠으면 아프다고 연락이라도 하지 그랬냐고. 내가 바빠서 못 챙겼다고. 미안하다고. 내가 사진 찍어준 여권 가지고 어디 여행도 많이 못 다니지 않았냐고. 그 친구의 오빠와 어머니가 나를 옆에서 꼭 잡아주셨다.






일주일이 지났다. 제대로 인사를 전하고 나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이제는 그 감정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도 알 것만 같다. 내 친구에게, 그리고 남은 가족에게 내가 다해야 할 최선을 다했다. 어디까지가 최선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자리를 묵묵히 지켰고, 손을 꼭 잡아드렸다. 이제는 멍하지도, 먹먹하지도 않다. 물론 가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치고 들어오겠지만.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편히 쉬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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