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의 운동 제 1 법칙, 관성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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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하고 있는 듯 하지만 잘 안 되고. 현실은 답답하니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도피처 삼아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곤 한다. 어딘가에 잠시 다녀오면 그다음엔 지루했던 일상이 갑자기 신나게 바뀔 것만 같고, 그 여행이 큰 터닝포인트가 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서. 물론 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2년 전 필자가 열아홉 꼬맹이였던 시절, 고졸 검정고시를 2주쯤 남긴 시점엔(이미 준비는 학교를 자퇴하기 이전부터 끝나 있었으니) 괜히 답답하고 해서 일주일간 제주에 다녀왔다. 어느 날 갑자기 문득 답답하다 싶었는데 지갑에 돈이 좀 있어서였다. 스무 살에 엽서 팔이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긴 여행은 없었지만, 가끔씩 밤새 차를 타고 무박 2일로 국내 어딘가에 다녀오곤 했다. 그리고는 20만 원과 편도 티켓만을 들고 해외 무전 여행길에 올랐고, 어느 정도 유명세를 탄 지금은 이렇게 여행 관련 에세이를 쓰며 지내고 있다. 물론 꼬박꼬박 돈 들어오는 본업과 부업 다 따로 있다.
세계일주에 성공한 사람도 아니고, 나이를 엄청 먹어서 인생을 꿰뚫는 통찰력을 가지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레벨도 아니다. 다만,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확실히 빡센 여행을 성공하고 돌아온 터라, 그간의 경험에서 한 가지는 확실하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
돌아온 이후의 삶을 풍성하게 채우기 위한 탐험, 그게 진짜 여행이다.
여행은 그 어느 곳에서도 가르치지 않는 것들을 배워올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또, 여행만큼 본인 하기에 따라 얻어가는 것의 차이가 큰 활동도 드물다. 여행이 너무나 가벼워지고 쉬워진 요즘이라 그런지, 여행의 트렌드 자체도 변화하고 있다. 남들이 갔던 곳, 나도 가서 눈도장 찍는 것, 인증샷 찍는 것. 그 자체가 여행이 되어 버렸다. 물론 넓은 식견을 가질 기회가 이전보다 균등하게 주어지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변화이긴 하지만, 여행자라면 응당 어떤 곳을 방문하는 것 그 이상의 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술은 한국에서도 취해볼 수 있지 않은가(물론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들은 적당히 즐기고 오자). 페이스북은 한국에서도 하루에 두어 시간씩 하지 않는가. 쉽게 떠나는 배낭여행의 결론은 결국 현지의 클럽과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밤과, 눈탱이 맞은 가격이란 건 참 아이러니한 진실이다.
서두에도 언급했듯이, 보통은 여행을 다녀온다고 해서 돌아온 후의 현실이 크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오게 되는 것도 아니다. 여행이라는 행위 자체의 의미는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세계에 나를 던져놓음으로써 새로운 것을 보고 느낄 기회를 부여하는 것, 그것 뿐이다. 당신이 방문하기 수천, 수만 년 전부터 그곳엔 사람들이 있었고, 삶이 있었다. 당신이 방문해도 그들의 삶은 바뀌지 않으며 그 이후에도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갈 거다. 그런 현실 속에서 여행을 떠난 당신이 며칠 혹은 몇 주동안 할 수 있는 것은, 가능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듣고 얘기하고 맛보고 기록하는 것뿐이다.
여행은 당신을 숨겨주지도 않을 것이며, 당신의 상사와 동료와 업무에서 벗어나게 해 주지도 않을 것이다. 당신이 태국에 놀러 가서 태국요리 수업을 들었다고 해서 태국요리 전문점을 오픈하게 될 가능성도 거의 없고, 에티오피아의 커피농장에 방문한다고 해서 커피 무역을 시작하게 되지도 않을 거다. 운명의 여자 혹은 남자를 만나게 될 가능성도 거의 없으며 누군가를 꼬실 생각으로 바에 간 99.99퍼센트의 남자들은 혼자 비틀거리면서 숙소에 돌아가게 될 거다. 여행은 당신의 마음을 자극하는 파워 인스타그래머의 사진과 짧은 영상을 보고 옅은 환상만을 가지고 덤빌게 아니다. 물론 그렇게 가볍고 쉽게 떠나는 여행도 좋기는 하다. 끝나고 나면 허무해서 그렇지. 그 안에서 무언가 발견하고 당신의 인생을 바꿀 계기를 찾는 건 당신에게 달렸다. 그럴만한 기회는 도처에 널려 있으며(필자가 잘나서 엽서를 팔았고 유명세를 탔을까?) 그것을 기회로 알아보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건 본인에게 달렸다.
종속적인 존재들과 지배하는 존재들. 그 엄격하고 매정한 구분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당신이 살고 있는 그 아파트에도. 집 앞 상가에도. 그리고 삶에도. 그러나 그것을 뛰어넘을 기회도 어디에나 존재한다. 다른 곳에 가면, 감각과 생각이 긴장해서 더 민감해진다. 기회를 발견하기 더없이 좋은 계기라는 말이다. 여행을 당신 삶의 터닝포인트로 만들어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여행을 지배하고, 기회를 지배해야 한다. 당신이 방문하는 모든 곳엔, 당신의 인생을 바꿔 줄 무궁무진한 기회들이 널려있다. 다만, 당신이 여행이라는 것을 현실에서 잠시 끄집어내 주는 마약으로 생각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당신은 평생 그 자리에 그렇게 머무르게 될 거다.
그게 여행에 관한 처절하고 잔인한 현실이다.
숨다 보면 숨기밖에 못 한다. 멈춰있다 보면 가만히 있으려는 관성이 작용한다.
무서워도 뚫어봐야 한다. 한 번 두 번 뚫다 보면, 뚫고 나아가는 관성이 작용한다.
미안하지만, 여행은 피난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