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hnny Kim Sep 11. 2016

멋지지 않아도 돼

 내가 나에게 쓰는, 애정어린 편지

항상 뭔가 제대로 된 글을 써야만 한다는 부담. 그러니까, '줄거리의 구성과 글의 길이가 알맞아야 하고 소소한 재미를 줄 수 있으면서 오탈자가 없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빡빡한 기준에 맞추려다 보니 가끔은 글을 쓰는 것이 즐겁지 않을 때가 있었다. 물론 글을 통해서 내 여행 이야기와 사는 이야기를 많은 사람과 나누고, 소통하고 또 그 이야기들로 수입을 만들며 살고 있는 것이 나의 삶이기는 하지만, 난 어디까지나 아마추어 글쟁이일 뿐인데 스스로에게 너무나 가혹한 조건을 달았었는지도 모르겠다. 


글과 사진, 여행 이야기로만 나를 접한 사람들은 잘 모를 수 있겠지만(글에 그렇게까지 자세한 이야기를 담고있지는 않으니) 사실 난 두려움으로 가득한 사람이다. 멋지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 누군가에게 밀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무언가 잘못하거나 실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말이다. 그 기저에는 부모로부터의 여러 영향이 많이 깔려있지만, 하나로 종합해보면 실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이런 강박적 성격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데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분명 꽤나 많은 부분에서 나를 옭아매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조금 더 놀았어도 괜찮았을 거고, 어쩌면 야간자율학습 때 몰래몰래 도망쳐 나왔어도 괜찮았을 것이며, 교복 단추 한두개쯤은 푸르고 다닌다든지, 염색을 한다든지, 지루한 수업시간에 좀 더 졸았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또 중요하게는, 그깟 석차순위에 찍힌 숫자 정도는 조금 무시해도 괜찮았을지 모른다. 이제서야 조금씩 드는 생각이고, 이제는 성인이 된 지금조차도 그렇게 내 자신을 풀어주는 데에 너무나 인색하지만 말이다. 그땐 조금 풀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것을 억제하도록 교육받고 훈련받았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 안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용기조차 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어쩌면 부모의 일그러진 보상심리가 만들어낸 족쇄였을지 모르겠지만, 집안 어른들의 학력이나 경력을 따져볼 때 내가 자라오며 그런 관점을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7-80년대 종로/대성학원의 국어 스타강사셨던 할아버지와, 서울 소재 대학 교수님이신 작은할아버지로 스타트를 끊은 우리 집안의 교육자 분위기는 과학선생님인 당숙과 수학 선생님인 어머니, 그리고 미술 선생님인 고모로 이어져 내려온다. 모아놓고 봐야 세 집밖에 안 되는(친가쪽은 두 분의 할아버지 내외와 우리 가족이 전부다) 가족들인데, 서울대에 고려대, 카이스트에 한국외대, 홍익대까지. 각 분야의 탑클래스 대학 졸업자들이 빽빽히 모여 있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는게 꽤나 조심스럽기는 하다. 위로의 글이랍시고 시작한 글이 가족 자랑으로 도배된 건 아니냐는 비난을 받을 법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건, 내가 살아온 환경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에게도 좋은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없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진실, 그리고 진실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그런 솔직하고 담백하고, 언제 다시 읽어도 애정이 가는 글을 남기고 싶다.


사실, 그런 족쇄를 차고도 잘 해내고 있다는 것은 내가 가진 가장 큰 자랑이었고, 그렇게 하지 않는 주변 사람들보다 우월한 존재가 된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대대로 엘리트 코스에 가까운 '한국적 정석' 루트를 밟아 오며 만들어진 가풍이 내게 전달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족쇄라고 표현하고있기는 하지만, 어렸을 땐 그게 족쇄인지도 몰랐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고, 또 그런 요구사항들을 충족시키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내가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고  그 요구사항들이 내게 부담으로 다가오면서부터 시작됐다.


너무나도 잘 해왔기에, 계속 잘 할수있을것만 같았고, 부모도 가족들도 그러한 가정에 대해 손톱만큼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실패한 적이 없었기에 실패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고, 성적이 떨어져본 적이 없었기에, 떨어진 성적을 다시 끌어올리는 방법도 몰랐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는, 실패에 대한 용납과 이해가 없었던 부모의 잘못이 가장 컸다. 말 그대로, 일그러진 보상 심리로부터 비롯된 잘못된 교육 방식이었다. 그들은 어쩌면 학교가 재미없고,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도 열어두지 않았고,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표현하면 안되는, 절대 금기라고 믿고 있었다.


학교가 힘들다는 이유만으로(사실 그 중학교는 동네에서 유명한 저질 학교였다) 허벅지와 종아리가 터지도록 구두주걱으로 맞아야만 했고, 그 폭력은 나날이 정도를 더해 갔다. 주먹질과 발길질이 이어졌고, 몽둥이의 모서리에 잘못 스친 오른손 검지의 살이 터지고 인대가 반쯤 끊어진 적도 있었다. 그 흉터는 아직도 선명하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뭘 하든 남들보다 멋져야 하고, 잘 해야한다는 그 강박은 그렇게 내 뼛속 깊숙히 박히게 됐다. 그래서 그 강박을 넘어서려는 노력은 사실, 핏줄이 다 터져서 검붉은 색이 됐던 내 종아리보다 더 아프다. 그보다 깊숙한 곳에서 아려 오고, 사실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함께 터져나오기도 한다.


사실 통장에 잔고가 흘러 넘친다면, 당장 전문가에게 심리상담을 받으러 가고 싶다. 물론 그 사람이 모든 걸 낫게 해줄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본인의 쓴뿌리와 상처들을 극복하곤 하니까 말이다. 사실 내가 내 아픔과 어려움을 담은 글을 쓰는 이유는, 이것이 심리치유 전문가들이 권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굉장히 이기적인 이유라고 할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런 글짓기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브런치나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보면 느끼겠지만, 작년 이맘때에 비해 내 글은 굉장히 부드러워졌고 따뜻해졌다. 글을 막 쓰기 시작했던 그 시절의 내 글들은 독과 한을 한가득 품은 문장들로 가득해서, 가끔은 다시 꺼내읽기 불편할 때도 있다.  다행히 이제는 내가 지닌 아픔을 통제하고 정제해서 표현하는 기술이 성숙해졌고, 문장 자체도 유려해졌으며 조금 더 깊은 이야기들을 담아낼 수 있게 됐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강박. 앞으로 한두달 안에 이겨낼 수 있는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최소한 내가 그 문제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그리고 내년 이맘때쯤엔, 이 글을 다시 읽어보며 담담하게, 이젠 아프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을 할 수 있었음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와 비슷한 부담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만은 꼭 하고 싶다. 기억했음 좋겠다. 당신은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란 사실을, 굳이 옭아매거나 더 멋져보이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멋지지 않아도 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