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상한 부분을 도려내야 할 때다.
자랑스러운 날이다.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있어 큰 도약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이 글자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 확인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라는 것 자체가 원래 시끄럽고, 오래 걸리는 과정이다.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의 성숙도는 개개인의 시민의식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물론 임시정부 때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때의 헌법에도 국민주권에 관한 조항이 있었지만, 한국이 민주주의의 구색을 제대로 갖추게 된 건 90년대 초반 김영삼 대통령 시절부터였다.
길게는 70여 년, 사실상 30년 정도밖에 안 되었으니, 수백 년간 민주주의를 유지해 온 프랑스, 영국과 미국에 비하면 아주 짧은 것은 사실이다. 정치계는 물론 국민적 공감대가 제대로 형성될 수 있는 기간 자체도 길지 않았고, 180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백 년이 조금 넘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역사적 사건들을 겪어 왔다.
조선의 쇠퇴, 식민지배, 전쟁, 두 번의 쿠데타와 민주화 운동 그리고 오늘의 대통령 파면 결정까지 말이다. 그러다 보니, 한 세기를 지나올 동안, 아버지와 아들 세대가 살아가는 세상은 항상 달라서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으며, 이전의 적폐를 청산하기 힘들었다. 특히 식민지배가 끝나고 이제 막 나라를 복구하던 시점에 터진 3년간의 전쟁은, 적폐 청산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고 생각한다. 식민지배 때의 전력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 총을 들고 전선으로 나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일본 제국군 군대의 장교들이 국군 장교로 대거 편입됐고, 그중 다카키 마사오는 전쟁 중 소위에서 장군으로 진급해, 결국 민주주의를 파탄 내게 됐다.
헌법 재판소의 탄핵 선고문에는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 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로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해서 파면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대목이 나온다. 사실, 이제 시작이다. 1945년에 진행되었어야 하는 일들이 미뤄지고 미뤄지다 이제야 터져 나온 것이다.
국민들도 더 이상은 지켜보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했고, 헌법 재판소에서도 같은 내용의 선고문을 발표했다. 대통령 하나 자른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교육, 주거, 경제, 사회의 모든 면에 만연한 악습들을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 한 번 시작하는 게 어렵지, 시작하고 나면 흐름을 탈 것이라고 본다. 이전처럼 당장 살 갈이 급하다고 넘어간다면, 같은 일은 또다시 반복될 거다. 잘라내야 하고, 고쳐야 하고, 새로 만들어야 한다.
그게 주권자인 국민의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