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게요, 많이 힘들었지만,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잡힐 듯했던 모든 것들이 잡히지 않는 한 해였다. 손대는 것 하나하나가 모두 실패하거나, 늦어지거나, 기대했던 만큼 제대로 되지 않았다. 곱게 사용하던 물건들이 이유도 없이 하나둘씩 망가졌고, 가지고 있던 돈이란 돈은 다 흩어져 없어졌다. 아주 가까웠던 사람 하나를 잃기도 했고 말이다. 내가 하는 모든 것들에 신이 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잘못될 수 있는 단 한 가지의 가능성만 있어도, 그 유일한 방법으로 일이 잘못되곤 했다. 도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며 윷을 던졌는데, 깔끔하게 도가 나와버리는 것 같달까. 이유를 따져보면 딱히 내 탓이 아닌 것 같다가도, 다 내가 부족해서 그랬던 것만 같기도 하다. 돌아보면, 참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거의 모든 일이, 꼬일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로, 다 꼬여버렸다.
그것이 운이었든 실력이었든, 그냥 거기까지가 내 한계였으리라 생각하기로 했다. 한계를 봤으니 이제 그 선을 밀어 올리면 된다고 믿기로 했다. 2017년은 그랬다. 지난 몇 년간 쌓아 온 힘을 모아서 큰 도약을 꿈꾸고 있었는데 말이다. 모든 것이 어딘지 모르게, 어디서부터 인지도 모르게, 이상하게 어그러졌다. 어쩌면, 농사가 그렇듯이 쉬어가야 했던 해에 욕심을 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생각한 모든 일을, 시작조차 못했다면 차라리 나았을까. 이제 막 시작했는데 허무하게 끝나버리거나,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곤 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다 꼬여버릴 필요까지 있었을까 하는, 약간은 억울한 마음도 든다. 사실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특히 같이 일을 진행하던 사람들에게. 혹시 내 타이밍이 좋지 않았던 것 때문에, 손해를 끼친 것은 아닌가 해서. 더 잘할 수 있었고, 더 잘 될 수 있었는데, 내가 걸림돌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얻은 답보다 남은 질문이 더 많은 한 해였다. 몇 번인가 닿을 듯 말 듯 스쳐 지나간 인연도. 두 번쯤, 가까이 머물다 간 죽음도. 스르르 나타났다가, 그저 의문만 남기고 사라질 뿐이었다. 어느 한쪽이 막히면, 또 다른 쪽으로 길이 열리곤 했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미로 찾기 하듯, 이리저리 달려보니 열린 방향은 딱 하나였다. 철저한 고립과 자아성찰. 사실 나를 찾는 사람이 많아서, 일이 쏟아져 들어오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얼마든지 큰돈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었고, 얼마든지 새로운 인연이 넝쿨째 굴러들어 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2016년은 순조로운 상승기류를 타면서 기분 좋게 마무리했으니, 2017년에 대한 기대도 컸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지겨울 정도로 오래 머물렀던 제주도에 다시 내려왔고, 옛 멘토님을 다시 뵈었다. 그리고는, 불안함과 두려움에 단 한 번도 시도한 적 없었던, 한 템포 쉬어가는 연습이 시작됐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은 덕분에 여유를 가지는 방법을 배웠다. 처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길게 쉬어도 봤다.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먹고 싶은 것 다 사 먹고, 필요한 건 다 사서 쓰기도 해봤다. 일을 놓고, 바쁨도 놓고, 스스로를 불필요하게 채찍질하던 습관도 많이 버렸다. 항상 달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끔은 걷고, 가끔은 걸터앉아 쉬어도 된다는 것을 배웠다. 사실, 아쉽다. 많이 아쉽다. 많이 배웠고, 조금 더 큰 어른이 되었고, 안정감을 찾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잘 풀릴 것만 같은 기대감으로 시작한 한 해였는데, 이리도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마무리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일이 그냥 그렇게 된 것을 어쩌겠는가. 그저, 조금 잃고 많이 배운 것에 감사하는 수밖에. 설렜으니 됐고, 후회 없이 달려도 보았으니 됐고, 건강하게 잘 살아있으니 됐다. 아쉬움은 새해에 더 힘차게 달려야 할 이유로 기억하면 되는 것이고. 홀가분하다. 손대는 모든 것마다 다 망하는 것만 같았던 한 해가 지나갔으니. 다행이다. 이렇게 잘 지나가서.
올해는, 작년 몫까지 살아내는 한 해였음 좋겠다. 좋은 기운, 많이 가지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