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네가 그걸 지적할 건 아니야. 아니라고.
1. 어플리케이션 기반 서비스로 돈 좀 버는 대표라는 사람한테 연락이 왔다.
2. 새로운 프로젝트를 런칭하고 있단다.
3. 무례하다. 무례하다.
4. 나와 같이 일을 해보고 싶단다.
5. 앱과 서비스에 대한 피드백을 줬다.
6. 이미 그건 다 생각해놓고 그렇게 만들었단다.
7. 즉, 내 말은 다 틀렸단다.
8. 가르친다. 가르친다.
9. 근무조건? 3개월은 월 100 받고 근성 있게 일하란다.
10. 미쳤구나. 미쳤구나.
11. 같이 일 못 해주겠다고 하니까 키보드 어택을 시작한다.
12. 나보고 그릇이 작단다. 그릇이 크면 돈 얘기 안 묻는단다.
13. 좋은 사람을 많이 못 만나 본 것 같아서 안쓰럽단다.
14. 띠동갑 위인 사람이 그릇이 나보다 커서 좋겠다.
15. 통장을 딱 까 보란다
16. 통장에 찍히는 돈이 니 실력이란다.
17. 그렇구나. 그렇구나.
18.18.18.18.18! 실력도 안 되는 게 깝친다고 짜증낸다.
19. 음 내 실력은 잘해봐야 월 250쯤인가.
20. 내 실력이 미천해서 어쩐댜...
21. 띠동갑 위인 사람이 나보다 돈 많이 벌어서 좋겠다.
22. 어렸을 때 자기를 보는 거 같단다.
23. 그래서 안쓰러워서 얘기한단다.
24. 군대 안 가서 그렇단다.(난 군 면제다. 오해 마시라, 아버지 빽은 아니다.)
25. 꼰대구나. 꼰대구나.
26. 암 그렇고말고.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지.
27. 프리랜서지만, 서비스직에 오래 있어봐서, 사람은 한두 마디 들으면 대충 읽힌다.
28. 이번엔 내가 틀렸다. 처음 파악한 거보다 더 저질이었다.
그냥 저는 근성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냥 참고로 말씀드리면요. ^^
나이가 어리고 나이가 많고를 떠나서요
본인이랑 우리는 그릇이 달라요.
본인이 떳떳하게 내 능력이 이 정도다~라고하면..
통장 공개해서 보여주면 되요. 저도 보여줄수 있거든요. ^^
그게 딱 사회가 생각하는 본인과 나의 능력이에요.
전 스물두살에도 본인보다 많이 벌었어요ㅋㅋㅋㅋㅋㅋ
본인은 삼년뒤 한달에 삼천씩 벌어야 저랑 동급이네요?
지금 중요한건 본인 실력을 너무 과대평가하는게 아닌가요?
그런데 본인 나이떄쯤 외국에서 생활을 하면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아마도 제가 조금은 잘컸나봅니다. ㅋ
ㅋㅋ본인은 자꾸 본인 수준에 사람들만 만나다보니깐
본인 기준에서 말을 하니 답답하네요. ^^
올 한 해 동안 들었던 말 중 가장 충격적이고 경악스러운 발언을 그와 두 시간가량 나눈 대화에서 들었다. 잔고는 풍족하나 인격은 어찌 이리 곤궁한지. 그는 이길 수밖에 없는 상대를 앉혀놓고 희롱하고 농락하며 우월감을 즐겼다. 비웃으며 그의 추락을 묵묵히 지켜보는데, 혹시 저 말이 사실이고, 내가 아무것도 아닌가.. 하는 의심이 스쳐갔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란 게 너무나 명백한데도 말이다. 그 의심은 꽤 강렬했다. 긴장될 정도로. 그래서 말이 무서운 것인가 보다.
그러나, 그는 나를 조롱하면서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그에게 있어 '좋은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이고, '그릇의 크기'는 벌어들이는 돈의 크기다. 그런데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지나서 그가 성공이라고 여기는 지점에 도착한 방법을 '돈 많은 사람을 잘 만나서'로 설명했다. 난 그에게서 두려움을 보았다. 그는 자기 손으로 된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것을 인정하지 못할 거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그가 믿어왔던 모든 세상이 무너질 테니까. 그래서 고통스러운 깨짐과 인내의 시간을 선택하는 대신, 블러핑으로 위안을 얻는 쪽을 택했다.
그는 블러핑을 통해 본인의 작음을 감추고, 그 내용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으로 안정감을 찾는다. 온전히 자신의 손으로 일군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거나 들키는 것은, 그를 좀체 놓아주지 않는 악몽이다. 그래서 그는 월 백~수백 단위의 수입으로 사는 사람들의 사고 회로를 답답하고 우습게 여긴다. 아니 그렇게 여겨야만 한다. 그래야 본인이 겪은 고통의 이유, 그리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할 수 있으니까. 열등감 많은 자아를 지키기 위해 남을 공격하는, 전형적인 우월 콤플렉스였다.
사람을 채용하고자 해서 대화를 이어갈 때, 근무와 급여조건을 먼저 공개하고 협의하는 건 상식이고 논리다. 그러나, 구직자가 자발적으로 무보수를 자처할 때가 있다. 그건 급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비전, 성장 가능성을 알아보았을 때다. 로켓에 자리가 있으면 올라타라. 최근 페이스북 COO인 쉐릴 샌드버그의 졸업식 축사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잘 알려진 말이기도 하다.
나도 어디가 로켓인지는 파악할 줄 안다. 지금껏 무보수를 자처하며 일한 적도 많고. 그러니까 나한테서 이런 글 [열정페이를 지배하라] 도 나왔고. 그러나, 이건 매우 당연하고 중요한 사실인데, 무보수는 자처하는 것이지,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여기는 것.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그게 갑질이다. 내가 존경하는 한 목사님의 말씀인데, 3년 전에 메모장에 적어 둔 이 문장이 문득 떠올랐다. 이 짧은 한 문장보다 이 상황을 적절하게 설명할 말이 있을까.
나이를 돈으로 먹으면 갑질한다
그는 내게 돈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언정, 좋은 향기를 풍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물론, 나는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잔을 함께 마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를 곁에 두면 나 또한 서서히 그를 닮아갔을 거다. 잔고는 풍족하나, 자아는 곤궁한 모습으로.
숲은 나무의 깊이를 알지만, 나무는 자신의 키밖에 모른다. 그러니 못난 숲일지언정, 숲이 나무에게 하는 이야기는 들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내게 그릇이 작다고 했다. 그리고 실력이 없다고 했다. 그것은 비교우위에 있는 그의 수입을 자랑하는 이야기였지만, 난 그의 말을 반성의 메시지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가끔은 찬물을 끼얹어야 정신을 차릴 수 있는 법이니까.
물론, 그의 말은 천박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가 돌을 던졌어도, 내가 떡으로 받으면 그만이다. 결국 말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것이니까. 돈을 더 벌기보다, 깊이와 넓이 한 뼘을 더 늘려야겠다.
더 배워야겠다. 더 겸손해야겠다. 난 그를 이렇게 이기려고 한다.
유려하게, 흐르는 물과 같이.